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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이번 한 번만

창작동화 김향이............... 조회 수 1784 추천 수 0 2008.03.17 21:10:08
.........
˝봉우야아, 우리 강아지 문 좀 열어래이.˝

시골 할머니 목소리예요.

후닥닥 달려나갔더니 할머니가 머리에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계셨어요.

˝우와! 할머니다! 엄마, 할머니 오셨어요.˝

엄마가 달려나와 보따리를 받아 내리며 말했어요.

˝마중 나오라고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괴안타. 안직까진 다리 힘 안 풀렸데이.˝

할머니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아 양말부터 벗어 놓았어요.

보따리를 이고 오시느라 얼마나 힘이 드셨는지 저고리가 흠뻑 젖었어요.

˝할머니,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오야, 내 새끼. 어디 얼마나 컸나 보재이.˝

나는 다리도 주무르지 못하고 할머니 품에 안겼어요.

할머니는 쪼글쪼글 주름살 많은 얼굴을 내 얼굴에 대고 비볐어요. 세수 수건같이 껄끄러운 할머니 얼굴이지만 나는 기분이 좋아요.

엄마가 보따리를 풀면서 말했어요.

˝어머니도 참, 이 무거운 걸 어떻게 이고 오셨어요?˝

보따리 속에는 고추. 호박. 가지. 오이. 감자가 잔뜩 들어 있어요. 비닐 끈으로 꽁꽁 동여맨 스치로폼 박스도 있어요. 그 속에 무엇이 있나 무척 궁금했는데 글쎄,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들어 있겠죠.

˝웬 잉어예요?˝

엄마가 할머니한테 물었어요.

˝봉우 야가 감기를 달고 산다캐서 막내한테 잉어 좀 잡아 오라캤다. 요놈 한 마리 푹 고아먹이면 일 년 내내 감기 모르고 살 끼다.˝

나는 얼음물 속에 있는 잉어를 들여다보았어요.

잉어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돌렸죠.

˝엄마, 나 저거 먹어야 돼?˝

나는 할머니 몰래 엄마 귀에 대고 물었어요.

˝툭하면 감기 걸려서 주사 맞는 것보다 백 번 낫지 뭘 그래?˝

엄마는 눈치도 없이 큰 소리로 말했어요.

˝봉우야, 이놈 고아먹고 감기 뚝 띠어내래이.˝

나는 할머니가 왜 잉어를 잡아 오셨는지 알아요.

여름에 시골 큰 집에 갔을 때예요.

봉구 형과 봉미를 따라 윗샘이로 물놀이 갔는데요. 윗샘이에는 고기가 아주 많았어요.

봉구 형이 쉿! 쉿! 쉿! 물고기를 몰아 주면 봉미랑 나랑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어요. 잡은 물고기는 모래 웅덩이를 파고 그 속에 집어 넣었어요.

물 속에 있는 바위를 손으로 더듬으면 다슬기가 잡혔어요. 우리는 다슬기 잡는 게 재미있어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물 속에 있었어요.

할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겨우 물 속에서 나왔는걸요. 젖은 옷을 꾹 짜서 입고 왔더니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어요. 저녁을 먹는데 자꾸 콧물이 나오면서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아팠어요.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물놀이 좀 했다고 사내 대장부가 콧물을 질질 짜!˝

큰아버지 말을 받아서 할머니가 걱정을 하셨어요.

˝봉우가 감기를 달고 산다카더라. 등짝이 얼룩덜룩하고 뱃가죽이 뻘건 깨구리를 고아먹이면 직통인데. 지금은 그런 깨구리 안 보이더냐?˝

할머니가 큰아버지더러 개구리를 잡아 오라고 할까 봐 가슴이 덜렁덜렁했어요.

˝할머니, 내일은 개구리 사냥 해야겠네요.˝

봉구 형이 나를 돌아보고 큰 소리로 말했어요.

˝으윽, 할머니. 나 그딴 거 안 먹어도 돼요.˝

˝봉우 오빠는 좋겠다. 개구리탕 먹게 되어.˝

봉미까지 킥킥 웃으며 거들었어요.

큰아버지가 등이 얼룩덜룩하고 뱃가죽이 뻘건 개구리 씨가 말랐다고 해서
개구리탕은 먹지 않았죠.

그런데 할머니는 뻘건 개구리 대신 잉어를 잡아오게 하셨나 봐요.

할머니가 잉어를 손질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할게요, 어머니. 어떻게 하는지만 가르쳐 주세요.˝

옆에서 지켜 보던 엄마가 말했어요.

˝손댄 김에 내가 하꾸마. 약은 정성이 들어가야 약발이 받는 기다.˝

잉어가 꼬리를 탁탁 치면서 자꾸만 달아나려고 했어요. 잉어가 말을 할 줄 알면 살려 달라고 막 울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쌍했어요.

˝엄마, 정말 잉어 먹는다고 감기 안 걸려?˝

˝그럼, 할머니는 아빠도 그렇게 키우셨어.˝

˝봉우 니는 구경할 거 없다. 그만 나가 놀그래이.˝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잉어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 보았어요.
할머니가 커다란 냄비에 잉어를 넣고 가스불 위에 올려 놓더니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하시겠죠. 냄비에 대고 굽신굽신 절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아이고, 하느님요. 지가 오늘 큰 죄 짓습니더. 한 번만 용서해 주이소. 손주 약 해 먹이려고 이래 죄를 짓슴니더. 잉어야, 니한테도 미안하데이.˝

나는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코끝이 시큰해졌어요.

나 때문에 할머니가 죄를 짓는다니까 더욱 미안했어요. 나는 엄마에게 귓속 말을 했어요.

˝엄마, 나 저거 안 먹을래. 할머니 죄 짓게 안 할래.˝

˝네가 병치레할 때마다 할머니 마음이 아프실 텐데?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먹으렴. 그래야 할머니 마음이 편해지신다.˝

이번엔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그래서 나도 할머니처럼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했어요.

˝하느님, 저거 안 먹으면 우리 할머니 속상해하시니까 이번 한 번만 먹을래요. 그 대신 우리 할머니 혼내지 마시고 용서해주세요.˝

할머니가 내 궁둥이를 투덕투덕 두드리며 웃으셨어요.

난 할머니가 참 좋아요. 할머니가 큰집에 가시지 않고 우리 집에 오래오래 계셨으면 정말 좋겠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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