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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로 갈라지는 골목입니다.
아저씨는 오늘도 드럼통 속에서 구름처럼 포근한 솜사탕이 자꾸만 만들어져 나옵니다. 아저씨의 손놀림은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움직여졌습니다.
아이는 맞은편 담벼락에 기대앉아 아저씨의 손놀림만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벌써 며칠째 계속 보는 일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시커먼 통 속에서 어떻게 뽀얀 솜사탕이 만들어져 나올까?˝
˝나도 하나 가져 봤으면......˝
그러나 아이에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얘, 몇 개 줄까?˝
아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습니다.
´한 개만......´
아이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속으로 중얼거린 것보다 더 빨리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 개 주셔요.˝
기다란 머리를 뒤로 모아 빨간 리본으로 묶은 소녀 하나가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래라. 세 개, 옛다!˝
소녀는 솜사탕 세 개를 받아 쥐더니 팔짝팔짝 뛰어 갔습니다. 긴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소녀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세 개씩 사 가면 한 개쯤 나누어 줘도......´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습니다.
땡, 땡, 땡, ----.
점심 시간을 알리는 고아원 종소리가 아이의 귀까지 팔팔 날아와 앉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원장님의 매서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얼른 사라졌습니다.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무토막으로 땅바닥에 그린 그림은 커다란 솜사탕이었습니다. 그 옆에 솜사탕이라고 글씨를 썼습니다.
˝얘, 솜사탕 하나 줄까?˝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는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누가 또 사러 온 모양이구나.´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얘, 너 솜사탕이 몹시 먹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저씨의 눈빛이 유난히 부드러웠습니다. 아저씨의 눈과 마주친 아이의 눈빛도 별빛처럼 빛이 났습니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아저씨가 손에 들고 있던 솜사탕을 아이에게 내밀었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솜사탕을 받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습니다.
˝솜사탕 주셔요.˝
어떤 소년이 솜사탕을 사러 왔습니다.
˝그래, 기다려라.˝
아저씨가 아이를 보고 씨익 웃고는 솜사탕 만드는 기계쪽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솜사탕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얀 솜사탕이 안개가 내리는 것처럼 하늘거렸습니다.
아이는 솜사탕을 들고 골목을 벗어났습니다. 입술 근처에까지 가져갔지만 덥석 깨물지는 못했습니다. 선뜻 먹기가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으로 솔솔 흘러 들어왔습니다.
˝어? 어어?˝
아이가 들고 가던 솜사탕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아이의 머리만큼이나 커지더니 곧 한 아름 이상이나 커졌습니다.
문이 하나 열렸습니다.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문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들어가자마자 문이 저절로 닫혔습니다. 솜사탕 안에는 푹신한 의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주 푹신했습니다.
창문에 드리워져 있는 하얀 커튼을 열었습니다. 바깥 경치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솜사탕이 공중을 날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차차 작아져 갔습니다.
˝히야!˝
아이는 입을 따악 벌렸습니다.
어느 새 솜사탕은 구름 위에서 날고 있었습니다.
옆자리를 보았습니다. 텅 비어 있던 자리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탔는지도 모릅니다.
아빠, 새엄마의 어렴풋한 얼굴도 보였습니다. 원장님도 있었습니다. 고아원에서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곧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바로 옆자리에 살그머니 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솜사탕 아저씨였습니다. 솜사탕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사라지지 않고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아저씨와 같이 가게 되어 참 좋아요.˝
아저씨는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아이와 아저씨를 태운 솜사탕은 쉬지 않고 자꾸만 날았습니다.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게 둥실둥실 날아갔습니다.
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송이뿐이었습니다.
아이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지?˝
아저씨가 약간은 상기된 낯으로 물었습니다.
˝글쎄요, 어디에라도 좋아요.˝
솜사탕은 계속 더 날았습니다.
솜사탕이 날아가 내려앉은 곳은 아늑한 숲 속이었습니다.
숲 속에 아담하고 예쁜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은 아이의 키만큼 자란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대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글씨를 쓴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부자인 자만이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자세히 보니 꽃들은 단단하게 어깨를 짜고 있어서 꽃사이로는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대문을 열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어디에선가 아빠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대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탔습니다.
얼마만인지도 잘 모릅니다. 아빠와 이렇게 다정하게 같이 나서는 것이 말입니다.
새엄마가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따스한 말을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뒤에 태운 오토바이는 바람을 가르면서 신나게 달렸습니다. 차들이 휙휙 뒤로 밀렸습니다. 길가에 선 가로수들도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 갔습니다.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이제는 써늘해졌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등에 찰싹 기대었습니다. 아빠의 냄새가 흠뻑 났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하고 다정한 냄새였습니다.
아이는 포근한 아빠의 냄새를 날마다 맡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달렸습니다.
오토바이는 길 옆에 있는 어느 공원 앞에 멈추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숭이가 재주를 넘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타조도 있었습니다.
부채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도 보았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나란히 벤치에 앉았습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솜사탕을 사 주었습니다.
˝맛 있니?˝
아빠가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솜사탕을 한 입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구름을 먹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새엄마가 들어오기 전에 보던 다정하고 따스한 눈빛이었습니다.
˝여기 잠깐만 앉아 있을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빠는 근처에서 파는 솜사탕 한 개를 더 사 주었습니다. 티 하나 없이 뽀얀 솜사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주머니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자, 이 솜사탕 다 먹을 때쯤이면 올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빠가 조금은 서두는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눈앞에 펼쳐지는 원숭이들의 재롱을 보며 솜사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오지 않았습니다. 새로 사 준 솜사탕을 다 먹고도, 한참 있었지만 아빠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그래도 얌전하게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공원이 비좁도록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공원을 빠져 나갔습니다.
아이는 갑자기 겁이 더럭 났습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갔습니다.
˝아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아빠의 그림자는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군데군데 서 있는 가로등에서는 불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등 불은 깜깜한 하늘에다가 금방 화려한 꽃밭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벤치 근처의 가게 쪽으로 갔습니다. 주인이 가게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아빠!˝
아이는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공원의 숲 속으로 힘없이 빨려들어 갔습니다.
˝또 길 잃은 아이가 생겼군.˝
가게 주인이 힐끗 보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공원은 썰물이 밀려 간 바닷가처럼 썰렁했습니다.
수없이 찍혔던 발자국도 바람에 모두 지워져 버리고, 손님들이 버린 휴지조각들만이 쓸쓸하게 굴러다녔습니다.
낮동안 잔칫집처럼 와글거리던 공원이 갑자기 한산해지니까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빠, 아빠!˝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아이의 울음이 점차 섧게 바뀌어졌습니다.
가게 주인은 문을 자물쇠로 잠그더니 총총걸음으로 바삐 걸어 나갔습니다. 가게 주인마저 나가니까 아이는 더욱 무서워졌습니다.
아이도 가게 주인이 나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병신 같은 새끼, 어디 가서 콱 죽어 버리지 않고......˝
새엄마의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자꾸만 따라오는 것만 같아 더 겁이 났습니다.
˝얘, 너희 집 어디니?˝
표 파는 근처에 있던 공원 관리소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너희 집이 어디냐니까?˝
˝서, 서울이에요.˝
아이가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서울에서 누구랑 같이 왔었니?˝
˝우리 아빠하고요.˝
˝그럼 길을 잃었니?˝
˝..........˝
˝울지마, 우리가 너희 집을 찾아 줄게.˝
그래도 아이는 자꾸만 울었습니다. 낯선 공원 아저씨의 말이 선뜻 믿기지 않았습니다.
˝주소 아니?˝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화는?˝
또 다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잘 되었다. 얘야, 걱정 마. 우리가 꼭 찾아 줄게.˝
아이는 관리소 아저씨와 같이 차를 탔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길가에는 차에서 나온 불빛들이 어지럽게 움직였습니다.
아이는 분수처럼 쏟아져 흩어지는 불빛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을 땐 아이네 집 문간방이었습니다.
˝아빠!˝
빼꼼하게 열린 문 틈으로 아빠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이는 반갑게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직도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흐느끼던 울음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은 어제 솜사탕을 사 주며 다정하게 웃어 주던 그런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새엄마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보던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는 다시 서러워졌습니다.
˝원, 하는 일이 도무지 칠칠치 않으니까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성공 못하지.˝
가시 돋친 새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 왔습니다.
아이의 두 눈에 이슬 같은 눈물이 핑그르르 맺히더니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열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해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삐이걱 삐이걱 소리만 요란했습니다.
´아빠는 열 수 없을 거야.´
아이가 고개를 옆으로 가로저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아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엄마가 나타나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새엄마도 그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문은 역시 쉽사리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대문 옆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점심은 아예 굶었습니다.
새엄마가 들어온 이래로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늘 배가 고팠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배가 고픈 것 같았습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흙이라도 주워 먹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눈동자에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푹 꺼져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대문 기둥에 슬그머니 기대어 앉았습니다. 힘이 없어서 그런지 온몸에 진땀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슬며시 들어보았습니다. 하늘 한가운데로 하얀 구름송이가 흘러갔습니다. 그 구름송이에 엄마의 동그란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지우기라도 하듯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아이가 여섯 살 때인가 어느 여름날 교통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엄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울기는 얼마나 울었던가? 그래도 엄마는 한 번도 다정하게 불러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발등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떠서 발 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발등을 타고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개미를 잡아 땅바닥에 내려 주었습니다. 개미가 부리나케 기어갔습니다. 아이는 심심해서 개미가 기어가는 곳으로 눈길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개미들이 커다란 비스킷 조각을 밀고 당기면서 끌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손에서 놓여 난 개미도 거기에 가서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비스킷이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움직여졌습니다.
아이는 힘없는 얼굴로 피식 웃었습니다.
˝너희들이 나보다 낫구나. 그렇게 큰 먹이를 구했으니......˝
아이가 힘없이 중얼거릴 때였습니다.
갑자기 개미 떼 위에 커다란 발이 덮쳤습니다.
˝앗!˝
아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발의 주인공을 쳐다보았습니다.
˝앗, 어, 엄마!˝
아이가 비실비실 일어났습니다.
새엄마였습니다.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구나. 왜 대문간에 나와서 궁상맞게 쪼그리고 앉아 있니?˝
새엄마는 긴 속눈썹을 매섭게 치뜨면서 날카롭게 외쳤습니다.
˝엄마, 개미가 죽어요. 개미가......˝
아이는 새엄마의 발 빝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뭐? 개미? 이게 이젠 미쳐서 헛소리까지 하는구나.˝
새엄마는 아이를 거칠게 떠다밀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힘없이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아이는 슬금슬금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면서 개미가 있던 곳을 보았습니다. 넘어진 아픔보다도 개미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비스킷은 부서져 가루가 되어 있었고 그 둘레에 개미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꼼지락거리는 개미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에 비로소 눈물이 어렸습니다.
˝아, 뭣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날카로운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습니다. 아이는 대문을 닫으며 비실비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유, 저런 꼬락서니 하고...... 원, 내가 빨리 죽든지 해야 저 꼴을 안 볼 텐데, 내가 이게 무슨 팔자람. 어서 밥 먹어.˝
아이는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찬밥에 신 김치였지만 아이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막 먹었습니다.
´전에 엄마가 있을 땐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이런 밥은 먹지 않았었는데......´
아이는 새엄마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밥을 막 퍼먹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도록 앓았습니다. 배가 쥐어 뜯는 듯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배를 꽉 움켜 쥐면서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를 꽉 물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점점 더 심하게 아팠습니다. 아마 급히 먹었던 밥에 체했나 봅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아이는 배를 움켜 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 엄마야, 아이구 배야.˝
아이는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진땀이 바작바작 났습니다.
얼마나 울며 뒹굴었는지 모릅니다. 온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한참만에야 아빠와 새엄마가 방문을 열였습니다.
˝원, 꼴보기 싫다니까 꾀병까지......˝
새엄마의 말을 듣고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빠가 사다 준 약을 먹고 아픔은 겨우 가라앉았지만 서러움은 더했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눈이 붓도록 울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새엄마의 손에 끌려 만두집에 앉았습니다. 새엄마의 갑작스러운 친절이 오히려 겁이 나고 두려웠지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만두를 보니 침이 저절로 꼴깍꼴깍 넘어갔습니다.
아이는 만두를 실컷 먹었습니다.
˝.........?˝
새엄마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새엄마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엄마 요 앞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으니까 얼른 만나고 올게.˝
새엄마가 슬쩍 자리를 떴습니다.
아이는 새엄마가 만두를 사 주신 까닭을 알았습니다.
´친구 만나고 오긴 뭘 와. 이제 그냥 어디론가 가겠지.´
지난 번 공원에서 아빠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맞아, 그 때도 아빤 나를 버리려고 했던 거야. 내가 집을 찾아갔을 땐 그깐 일도 성공 못했다고 새엄마는 아빠에게 쏘아붙였지.´
아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눈물 방울 사이로 접시에 남은 만두 몇 개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아이는 남은 만두를 먹었습니다. 눈물도 함께 삼켰습니다.
아이의 생각대로 새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뒤 아이는 지금의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자꾸만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힘껏 밀었다가 튕겨 나오는 대문에 부딪혀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콧등이 딸기처럼 빨갛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가 콧등을 문질렀습니다.
˝아유, 아파.˝
아이는 새엄마의 그 모습을 보니 통쾌해졌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보고 있노라니,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는 새엄마의 얼굴이 측은해 보였습니다.
´새엄마도 열 수 없을 거야.´
아이가 힘없이 중얼거렸습니다.
새엄마 대신 원장님이 자가용을 몰고 나타났습니다. 원장님은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자가용에서 내리자마자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덜컹덜컹 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원장님의 이마에서 진땀이 뻘뻘 흘렀습니다.
˝원장님,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합니다. 소질도 대단하구요.˝
고아원 총무를 맡은 이 선생님이 애원하듯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요?˝
원장님은 푹신한 회전의자에 몸을 담고 쌀쌀하게 되묻습니다.
˝원장님, 원장님이 하시는 이 사업, 누구나 할 수 없는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왕에 어려운 마음 잡수시고 하시는 이 사업 조금만 더 아이들을 위해서......˝
이 선생님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허어, 또 그 얘기로구먼, 이 선생. 이 선생도 잘 알지 않소? 우리가 하는 사업은 돈 쓰이는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줄을 말이오.˝
˝예, 압니다. 하지만......˝
˝그만두시오. 알면 됐지 뭐 또 할 말이 있소?˝
원장님은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끊어 버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원장님, 원장님이 하려고 하는 사업으로 돈 좀 덜 빼돌리면 우리에게 나오는 지원금만으로도 충분히 애들의 요구조건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원장님은 아이들 입혀주고 먹여 주고 학교에 보내 주는 것이 이 사업의 전부라고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입혀 주고 먹여 주는 것보다도 더 먼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꿈을 주는 것입니다. 소질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음악을 하고 싶은 아이에게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총무 이 선생님은 입 안에서 뱅뱅 도는 말을 끝내 하지못하고 원장님 방에서 나왔습니다.
파아란 하늘이 오히려 서글펐습니다.
˝아무도 문을 열지 못하는군요.˝
끝내 문을 열지 못한 원장님이 사라지자 아이가 솜사탕 아저씨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습니다.
˝글쎄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데 전부 마음이 어질지 못한 모양이구나.˝
아저씨도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렇지만 나도 안 될 거야.˝
아저씨가 자신 없다는 투로 고개를 가로 흔들었습니다.
˝왜요?˝
˝나도 마음이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없단다.˝
˝아녜요. 아저씨라면 할 수 있어요. 어서 해 보셔요.˝
아이가 아저씨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안 된대두. 네가 해 보렴.˝
아저씨가 아이에게 떠밀려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아저씨가 대문을 밀었습니다.
삐이걱.
대문이 조금 열렸습니다.
열린 틈 사이로 집 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더 이상은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열린 문 틈으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너도 좀 거들어 주렴.˝
아저씨가 아이를 돌아보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네, 아저씨.˝
아이가 대문에 매달려 문을 밀었습니다. 대문은 아이가 힘을 준 데 비해 너무나 쉽게 열렸습니다.
˝역시 네가 최고 부자로구나.˝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안을 들어갔습니다.
집은 꽃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꽃으로 덮여 있는 게 아니고 꽃이 모여 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붕도 벽도 기둥도 모두 아름답고 예쁜 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창문도 마루도 방바닥도 전부 꽃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집은 처음 보아요.˝
아이가 깡충깡충 뛰어 보았습니다.
˝나도 처음이란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이런 곳에서 살면 참 좋겠다.˝
˝아저씨, 저하고 이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이가 아저씨의 다리에 기대며 말했습니다.
˝너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안 될 거야.˝
아저씨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왜요?˝
˝난 여기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이런 곳이라면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야 할 거야. 난 그렇지 못하단다.˝
˝아녜요. 아저씨는 이 대문을 열었어요.˝
˝조금 열었을 뿐이야. 이 대문을 연 사람은 내가 아니야. 너야.˝
˝그래도 아저씨, 우리 같이 살아요. 아저씨가 없이 저 혼자는 싫어요. 자, 어서 방으로 들어가 봐요.˝
아이는 아저씨의 손목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꽃을 밟아도 괜찮을까?˝
아저씨가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밟힌 곳의 꽃들은 금방 일어났습니다.
흡사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 것처럼.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은 푹신했습니다.
아이는 방바닥에 앉았습니다. 누워도 보았습니다. 꽃에서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코 안으로 솔솔 들어왔습니다. 그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배고픈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어졌습니다.
˝아저씨, 좋지요?˝
아이가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며 방긋이 웃었습니다.
˝응.˝
아저씨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넘쳐 흘렀습니다.
아이는 아저씨와 함께 꽃으로 된 집에서 살았습니다.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뜨락 한 가운데에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옹달샘에서는 샘물이 퐁퐁 솟아 올랐습니다. 물은 분수가 되어 하늘을 향해 치솟다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떨어집니다. 떨어진 물은 집 안에 있는 꽃송이들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러고 보니 꽃집 속의 꽃들은 떨어지는 물 때문에 싱싱하게 피어나고 향기로운 냄새를 뿌려 줄 수 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면 물은 대단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을 주는 바탕이었습니다. 물이 꽃에게 행복을 주고 꽃은 아이와 아저씨에게 행복을 주고......
˝사람도 물일 수만 있다면......˝
분수가 되어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아저씨가 중얼거렸습니다. 햇빛을 받은 물방울들이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얼핏 보면 은빛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물방울 하나하나에 잔잔한 무지개가 생겨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네에? 사람이 물방울이라니요?˝
아이가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물처럼 남에게 행복을 주는 일 말이다.˝
˝그런 거야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너와 같은 아이들이야 쉽게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우리처럼 마음이 굳어 버린 사람들은 힘이 들어.˝
˝아녜요. 아저씨라면 할 수 있어요. 아저씨, 우리 같이 해요. 남에게 행복을 주는 일 말예요.˝
아이가 아저씨의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같이?˝
˝예, 아저씨가 만든 솜사탕을 타고 지금 당장 떠나요.˝
아이의 눈빛 속에도 물방울 속에 어렸던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지금 당장?˝
˝네, 지금 당장에요. 좋은 일이라면 빨리 할수록 좋다고 했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아저씨는 다시 하얀 솜사탕을 만들었습니다. 솜사탕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이와 같이 탈 수 있는 커다란 솜사탕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는 분수가 되어 흩어지는 물방울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물방울 속에는 행복이 들어 있었습니다.
행복은 꽃가루가 되어 아이가 벌려 놓은 자루 속에 채곡채곡 담겨집니다.
아이와 아저씨는 솜사탕을 탔습니다.
솜사탕은 공중에 붕 뜨더니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중에 높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공중에서 행복의 꽃가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꽃가루는 물결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노오란 꽃가루의 물결----.
주홍빛 꽃가루의 물결----.
보랏빛 꽃가루의 물결----.
하얀 꽃가루의 물결----.
물결은 출렁이며 날아갑니다.
아이는 꽃가루를 뿌리면서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 참 아름다워요.˝
아이가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저씨는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이 꽃가루가 모두에게 골고루 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 어두운 구석구석까지......˝
아이는 중얼거리며 쉬지 않고 자루 속에 채워 두었던 꽃가루를 뿌렸습니다.
˝아저씨도 같이 뿌리셔요.˝
˝그러자꾸나. 마음이 가벼워지는구나.˝
아저씨도 아이처럼 줄거워했습니다.
솜사탕이 둥실둥실 떠 가는 그뒤로 꽃가루의 물결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이의 생각처럼 불행한 아이들의 눈 속으로 들어가 눈물을 웃음으로 만들어 주고 미움을 사랑으로 녹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기분이 좋아 스르르 몸을 기대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가느다랗게 떠진 눈으로 하늘의 별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왜 갑자기 별이 보일까?´
그렇지만 아이는 눈을 크게 뜨지 않았습니다. 그대로가 좋았습니다. 가볍게 내려 감은 눈썹 사이로 별빛이 들어왔습니다. 별빛은 수만 갈래로 갈라지기도 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별을 모두 가슴에 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에 품고 있다가 아무 때고 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면서 환해졌습니다.
아이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앗!˝
눈 앞에 까만 승용차가 하나 서 있고 불빛은 승용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니? 지금 이 시간이면 전부 저녁 기도 할 시간인데......˝
차문을 열고 원장님이 내렸습니다. 금테 안경 속의 눈동자가 매섭도록 차가웠습니다. 아이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아이는,
´이제 곧 벼락이 떨어질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숙인 아이의 발 밑에는 아이가 콩당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새 밤이 되었는지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솜사탕 아저씨는 언제 들어갔는지 자리에 없었습니다.
원장님의 자가용에서 나온 불빛이 아이가 그린 그림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얘.˝
아이는 원장님의 목소리가 뜻밖에도 부드럽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언제 보아도 얼음장만큼이나 차갑던 원장님의 얼굴이 봄바람에 활짝 핀 개나리만큼 풀려 있었습니다.
˝얘, 이 그림, 네가 그렸니?˝
아이는 원장님에게서 이렇게 부드럽고 따스한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보자.˝
원장님이 아이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림을 들어 눈 높이로 가져가더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커다란 솜사탕, 꽃으로 만든 집, 솜사탕을 타고 다니면서 행복의 꽃가루를 뿌려 주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이 선생의 말이 맞았어.˝
˝네?˝
아이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장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니다. 너 오늘부터는 네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라. 필요한 건 총무에게 부탁하면 사 주도록 하마.˝
˝고맙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꾸뻑 숙였습니다.
˝고맙긴. 자, 들어가자.˝
원장님이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에 행복의 빛가루가 수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깜빡이는 별들이 뿌려 주는 빛가루입니다. *
아저씨는 오늘도 드럼통 속에서 구름처럼 포근한 솜사탕이 자꾸만 만들어져 나옵니다. 아저씨의 손놀림은 언제나 똑같은 속도로 움직여졌습니다.
아이는 맞은편 담벼락에 기대앉아 아저씨의 손놀림만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벌써 며칠째 계속 보는 일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신기했습니다.
˝저렇게 시커먼 통 속에서 어떻게 뽀얀 솜사탕이 만들어져 나올까?˝
˝나도 하나 가져 봤으면......˝
그러나 아이에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얘, 몇 개 줄까?˝
아이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습니다.
´한 개만......´
아이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속으로 중얼거린 것보다 더 빨리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 개 주셔요.˝
기다란 머리를 뒤로 모아 빨간 리본으로 묶은 소녀 하나가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래라. 세 개, 옛다!˝
소녀는 솜사탕 세 개를 받아 쥐더니 팔짝팔짝 뛰어 갔습니다. 긴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소녀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세 개씩 사 가면 한 개쯤 나누어 줘도......´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습니다.
땡, 땡, 땡, ----.
점심 시간을 알리는 고아원 종소리가 아이의 귀까지 팔팔 날아와 앉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원장님의 매서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가 얼른 사라졌습니다.
땅바닥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무토막으로 땅바닥에 그린 그림은 커다란 솜사탕이었습니다. 그 옆에 솜사탕이라고 글씨를 썼습니다.
˝얘, 솜사탕 하나 줄까?˝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는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누가 또 사러 온 모양이구나.´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얘, 너 솜사탕이 몹시 먹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저씨의 눈빛이 유난히 부드러웠습니다. 아저씨의 눈과 마주친 아이의 눈빛도 별빛처럼 빛이 났습니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아저씨가 손에 들고 있던 솜사탕을 아이에게 내밀었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솜사탕을 받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습니다.
˝솜사탕 주셔요.˝
어떤 소년이 솜사탕을 사러 왔습니다.
˝그래, 기다려라.˝
아저씨가 아이를 보고 씨익 웃고는 솜사탕 만드는 기계쪽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솜사탕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얀 솜사탕이 안개가 내리는 것처럼 하늘거렸습니다.
아이는 솜사탕을 들고 골목을 벗어났습니다. 입술 근처에까지 가져갔지만 덥석 깨물지는 못했습니다. 선뜻 먹기가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끝으로 솔솔 흘러 들어왔습니다.
˝어? 어어?˝
아이가 들고 가던 솜사탕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아이의 머리만큼이나 커지더니 곧 한 아름 이상이나 커졌습니다.
문이 하나 열렸습니다.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문으로 쑥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들어가자마자 문이 저절로 닫혔습니다. 솜사탕 안에는 푹신한 의자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주 푹신했습니다.
창문에 드리워져 있는 하얀 커튼을 열었습니다. 바깥 경치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솜사탕이 공중을 날고 있었던 것입니다.
땅에 있던 모든 물건들이 차차 작아져 갔습니다.
˝히야!˝
아이는 입을 따악 벌렸습니다.
어느 새 솜사탕은 구름 위에서 날고 있었습니다.
옆자리를 보았습니다. 텅 비어 있던 자리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탔는지도 모릅니다.
아빠, 새엄마의 어렴풋한 얼굴도 보였습니다. 원장님도 있었습니다. 고아원에서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곧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바로 옆자리에 살그머니 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솜사탕 아저씨였습니다. 솜사탕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사라지지 않고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아저씨와 같이 가게 되어 참 좋아요.˝
아저씨는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아이와 아저씨를 태운 솜사탕은 쉬지 않고 자꾸만 날았습니다.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게 둥실둥실 날아갔습니다.
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송이뿐이었습니다.
아이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지?˝
아저씨가 약간은 상기된 낯으로 물었습니다.
˝글쎄요, 어디에라도 좋아요.˝
솜사탕은 계속 더 날았습니다.
솜사탕이 날아가 내려앉은 곳은 아늑한 숲 속이었습니다.
숲 속에 아담하고 예쁜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은 아이의 키만큼 자란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대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문에는 작은 글씨를 쓴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부자인 자만이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자세히 보니 꽃들은 단단하게 어깨를 짜고 있어서 꽃사이로는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대문을 열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어디에선가 아빠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대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탔습니다.
얼마만인지도 잘 모릅니다. 아빠와 이렇게 다정하게 같이 나서는 것이 말입니다.
새엄마가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따스한 말을 들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뒤에 태운 오토바이는 바람을 가르면서 신나게 달렸습니다. 차들이 휙휙 뒤로 밀렸습니다. 길가에 선 가로수들도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 갔습니다.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이제는 써늘해졌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등에 찰싹 기대었습니다. 아빠의 냄새가 흠뻑 났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포근하고 다정한 냄새였습니다.
아이는 포근한 아빠의 냄새를 날마다 맡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달렸습니다.
오토바이는 길 옆에 있는 어느 공원 앞에 멈추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숭이가 재주를 넘는 우리가 있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타조도 있었습니다.
부채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도 보았습니다.
아이는 아빠와 나란히 벤치에 앉았습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솜사탕을 사 주었습니다.
˝맛 있니?˝
아빠가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솜사탕을 한 입 한 입 베어 먹었습니다. 구름을 먹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새엄마가 들어오기 전에 보던 다정하고 따스한 눈빛이었습니다.
˝여기 잠깐만 앉아 있을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빠는 근처에서 파는 솜사탕 한 개를 더 사 주었습니다. 티 하나 없이 뽀얀 솜사탕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주머니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자, 이 솜사탕 다 먹을 때쯤이면 올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빠가 조금은 서두는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눈앞에 펼쳐지는 원숭이들의 재롱을 보며 솜사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오지 않았습니다. 새로 사 준 솜사탕을 다 먹고도, 한참 있었지만 아빠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그래도 얌전하게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공원이 비좁도록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길게 늘어진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공원을 빠져 나갔습니다.
아이는 갑자기 겁이 더럭 났습니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갔습니다.
˝아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아빠의 그림자는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군데군데 서 있는 가로등에서는 불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등 불은 깜깜한 하늘에다가 금방 화려한 꽃밭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아이는 벤치 근처의 가게 쪽으로 갔습니다. 주인이 가게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아빠!˝
아이는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공원의 숲 속으로 힘없이 빨려들어 갔습니다.
˝또 길 잃은 아이가 생겼군.˝
가게 주인이 힐끗 보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공원은 썰물이 밀려 간 바닷가처럼 썰렁했습니다.
수없이 찍혔던 발자국도 바람에 모두 지워져 버리고, 손님들이 버린 휴지조각들만이 쓸쓸하게 굴러다녔습니다.
낮동안 잔칫집처럼 와글거리던 공원이 갑자기 한산해지니까 쓸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빠, 아빠!˝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아이의 울음이 점차 섧게 바뀌어졌습니다.
가게 주인은 문을 자물쇠로 잠그더니 총총걸음으로 바삐 걸어 나갔습니다. 가게 주인마저 나가니까 아이는 더욱 무서워졌습니다.
아이도 가게 주인이 나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병신 같은 새끼, 어디 가서 콱 죽어 버리지 않고......˝
새엄마의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자꾸만 따라오는 것만 같아 더 겁이 났습니다.
˝얘, 너희 집 어디니?˝
표 파는 근처에 있던 공원 관리소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너희 집이 어디냐니까?˝
˝서, 서울이에요.˝
아이가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서울에서 누구랑 같이 왔었니?˝
˝우리 아빠하고요.˝
˝그럼 길을 잃었니?˝
˝..........˝
˝울지마, 우리가 너희 집을 찾아 줄게.˝
그래도 아이는 자꾸만 울었습니다. 낯선 공원 아저씨의 말이 선뜻 믿기지 않았습니다.
˝주소 아니?˝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화는?˝
또 다시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잘 되었다. 얘야, 걱정 마. 우리가 꼭 찾아 줄게.˝
아이는 관리소 아저씨와 같이 차를 탔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길가에는 차에서 나온 불빛들이 어지럽게 움직였습니다.
아이는 분수처럼 쏟아져 흩어지는 불빛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을 땐 아이네 집 문간방이었습니다.
˝아빠!˝
빼꼼하게 열린 문 틈으로 아빠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이는 반갑게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직도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흐느끼던 울음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은 어제 솜사탕을 사 주며 다정하게 웃어 주던 그런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새엄마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보던 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는 다시 서러워졌습니다.
˝원, 하는 일이 도무지 칠칠치 않으니까 그런 것도 하나 제대로 성공 못하지.˝
가시 돋친 새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 왔습니다.
아이의 두 눈에 이슬 같은 눈물이 핑그르르 맺히더니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열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해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삐이걱 삐이걱 소리만 요란했습니다.
´아빠는 열 수 없을 거야.´
아이가 고개를 옆으로 가로저었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아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엄마가 나타나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새엄마도 그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문은 역시 쉽사리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대문 옆에 힘없이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점심은 아예 굶었습니다.
새엄마가 들어온 이래로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늘 배가 고팠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배가 고픈 것 같았습니다. 땅바닥에 떨어진 흙이라도 주워 먹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눈동자에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푹 꺼져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대문 기둥에 슬그머니 기대어 앉았습니다. 힘이 없어서 그런지 온몸에 진땀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슬며시 들어보았습니다. 하늘 한가운데로 하얀 구름송이가 흘러갔습니다. 그 구름송이에 엄마의 동그란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지우기라도 하듯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아이가 여섯 살 때인가 어느 여름날 교통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엄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울기는 얼마나 울었던가? 그래도 엄마는 한 번도 다정하게 불러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발등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떠서 발 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개미 한 마리가 발등을 타고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개미를 잡아 땅바닥에 내려 주었습니다. 개미가 부리나케 기어갔습니다. 아이는 심심해서 개미가 기어가는 곳으로 눈길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개미들이 커다란 비스킷 조각을 밀고 당기면서 끌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손에서 놓여 난 개미도 거기에 가서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비스킷이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움직여졌습니다.
아이는 힘없는 얼굴로 피식 웃었습니다.
˝너희들이 나보다 낫구나. 그렇게 큰 먹이를 구했으니......˝
아이가 힘없이 중얼거릴 때였습니다.
갑자기 개미 떼 위에 커다란 발이 덮쳤습니다.
˝앗!˝
아이는 고개를 번쩍 들어 발의 주인공을 쳐다보았습니다.
˝앗, 어, 엄마!˝
아이가 비실비실 일어났습니다.
새엄마였습니다.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구나. 왜 대문간에 나와서 궁상맞게 쪼그리고 앉아 있니?˝
새엄마는 긴 속눈썹을 매섭게 치뜨면서 날카롭게 외쳤습니다.
˝엄마, 개미가 죽어요. 개미가......˝
아이는 새엄마의 발 빝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뭐? 개미? 이게 이젠 미쳐서 헛소리까지 하는구나.˝
새엄마는 아이를 거칠게 떠다밀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힘없이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아이는 슬금슬금 일어나 옷에 묻은 흙을 털면서 개미가 있던 곳을 보았습니다. 넘어진 아픔보다도 개미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비스킷은 부서져 가루가 되어 있었고 그 둘레에 개미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아직도 꼼지락거리는 개미가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에 비로소 눈물이 어렸습니다.
˝아, 뭣해! 빨리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날카로운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습니다. 아이는 대문을 닫으며 비실비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유, 저런 꼬락서니 하고...... 원, 내가 빨리 죽든지 해야 저 꼴을 안 볼 텐데, 내가 이게 무슨 팔자람. 어서 밥 먹어.˝
아이는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찬밥에 신 김치였지만 아이는 배가 고파 허겁지겁 막 먹었습니다.
´전에 엄마가 있을 땐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이런 밥은 먹지 않았었는데......´
아이는 새엄마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밥을 막 퍼먹었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도록 앓았습니다. 배가 쥐어 뜯는 듯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배를 꽉 움켜 쥐면서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를 꽉 물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점점 더 심하게 아팠습니다. 아마 급히 먹었던 밥에 체했나 봅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아이는 배를 움켜 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구 엄마야, 아이구 배야.˝
아이는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진땀이 바작바작 났습니다.
얼마나 울며 뒹굴었는지 모릅니다. 온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한참만에야 아빠와 새엄마가 방문을 열였습니다.
˝원, 꼴보기 싫다니까 꾀병까지......˝
새엄마의 말을 듣고 아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빠가 사다 준 약을 먹고 아픔은 겨우 가라앉았지만 서러움은 더했습니다.
그날 밤 아이는 눈이 붓도록 울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이는 새엄마의 손에 끌려 만두집에 앉았습니다. 새엄마의 갑작스러운 친절이 오히려 겁이 나고 두려웠지만, 김이 무럭무럭 나는 만두를 보니 침이 저절로 꼴깍꼴깍 넘어갔습니다.
아이는 만두를 실컷 먹었습니다.
˝.........?˝
새엄마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새엄마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엄마 요 앞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으니까 얼른 만나고 올게.˝
새엄마가 슬쩍 자리를 떴습니다.
아이는 새엄마가 만두를 사 주신 까닭을 알았습니다.
´친구 만나고 오긴 뭘 와. 이제 그냥 어디론가 가겠지.´
지난 번 공원에서 아빠가 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맞아, 그 때도 아빤 나를 버리려고 했던 거야. 내가 집을 찾아갔을 땐 그깐 일도 성공 못했다고 새엄마는 아빠에게 쏘아붙였지.´
아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눈물 방울 사이로 접시에 남은 만두 몇 개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아이는 남은 만두를 먹었습니다. 눈물도 함께 삼켰습니다.
아이의 생각대로 새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뒤 아이는 지금의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새엄마는 자꾸만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힘껏 밀었다가 튕겨 나오는 대문에 부딪혀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콧등이 딸기처럼 빨갛게 되었습니다.
새엄마가 콧등을 문질렀습니다.
˝아유, 아파.˝
아이는 새엄마의 그 모습을 보니 통쾌해졌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보고 있노라니,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쓰는 새엄마의 얼굴이 측은해 보였습니다.
´새엄마도 열 수 없을 거야.´
아이가 힘없이 중얼거렸습니다.
새엄마 대신 원장님이 자가용을 몰고 나타났습니다. 원장님은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자가용에서 내리자마자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덜컹덜컹 문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원장님의 이마에서 진땀이 뻘뻘 흘렀습니다.
˝원장님,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합니다. 소질도 대단하구요.˝
고아원 총무를 맡은 이 선생님이 애원하듯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요?˝
원장님은 푹신한 회전의자에 몸을 담고 쌀쌀하게 되묻습니다.
˝원장님, 원장님이 하시는 이 사업, 누구나 할 수 없는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왕에 어려운 마음 잡수시고 하시는 이 사업 조금만 더 아이들을 위해서......˝
이 선생님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허어, 또 그 얘기로구먼, 이 선생. 이 선생도 잘 알지 않소? 우리가 하는 사업은 돈 쓰이는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줄을 말이오.˝
˝예, 압니다. 하지만......˝
˝그만두시오. 알면 됐지 뭐 또 할 말이 있소?˝
원장님은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끊어 버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원장님, 원장님이 하려고 하는 사업으로 돈 좀 덜 빼돌리면 우리에게 나오는 지원금만으로도 충분히 애들의 요구조건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원장님은 아이들 입혀주고 먹여 주고 학교에 보내 주는 것이 이 사업의 전부라고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입혀 주고 먹여 주는 것보다도 더 먼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꿈을 주는 것입니다. 소질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음악을 하고 싶은 아이에게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총무 이 선생님은 입 안에서 뱅뱅 도는 말을 끝내 하지못하고 원장님 방에서 나왔습니다.
파아란 하늘이 오히려 서글펐습니다.
˝아무도 문을 열지 못하는군요.˝
끝내 문을 열지 못한 원장님이 사라지자 아이가 솜사탕 아저씨를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습니다.
˝글쎄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데 전부 마음이 어질지 못한 모양이구나.˝
아저씨도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아저씨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렇지만 나도 안 될 거야.˝
아저씨가 자신 없다는 투로 고개를 가로 흔들었습니다.
˝왜요?˝
˝나도 마음이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없단다.˝
˝아녜요. 아저씨라면 할 수 있어요. 어서 해 보셔요.˝
아이가 아저씨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안 된대두. 네가 해 보렴.˝
아저씨가 아이에게 떠밀려 문 앞에 당도했습니다.
아저씨가 대문을 밀었습니다.
삐이걱.
대문이 조금 열렸습니다.
열린 틈 사이로 집 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주어도 더 이상은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열린 문 틈으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너도 좀 거들어 주렴.˝
아저씨가 아이를 돌아보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네, 아저씨.˝
아이가 대문에 매달려 문을 밀었습니다. 대문은 아이가 힘을 준 데 비해 너무나 쉽게 열렸습니다.
˝역시 네가 최고 부자로구나.˝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안을 들어갔습니다.
집은 꽃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꽃으로 덮여 있는 게 아니고 꽃이 모여 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붕도 벽도 기둥도 모두 아름답고 예쁜 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창문도 마루도 방바닥도 전부 꽃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집은 처음 보아요.˝
아이가 깡충깡충 뛰어 보았습니다.
˝나도 처음이란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이런 곳에서 살면 참 좋겠다.˝
˝아저씨, 저하고 이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이가 아저씨의 다리에 기대며 말했습니다.
˝너는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안 될 거야.˝
아저씨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왜요?˝
˝난 여기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이런 곳이라면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야 할 거야. 난 그렇지 못하단다.˝
˝아녜요. 아저씨는 이 대문을 열었어요.˝
˝조금 열었을 뿐이야. 이 대문을 연 사람은 내가 아니야. 너야.˝
˝그래도 아저씨, 우리 같이 살아요. 아저씨가 없이 저 혼자는 싫어요. 자, 어서 방으로 들어가 봐요.˝
아이는 아저씨의 손목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꽃을 밟아도 괜찮을까?˝
아저씨가 걱정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밟힌 곳의 꽃들은 금방 일어났습니다.
흡사 아니라고 고개를 흔드는 것처럼.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은 푹신했습니다.
아이는 방바닥에 앉았습니다. 누워도 보았습니다. 꽃에서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코 안으로 솔솔 들어왔습니다. 그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상쾌해졌습니다. 배고픈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어졌습니다.
˝아저씨, 좋지요?˝
아이가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며 방긋이 웃었습니다.
˝응.˝
아저씨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넘쳐 흘렀습니다.
아이는 아저씨와 함께 꽃으로 된 집에서 살았습니다.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뜨락 한 가운데에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옹달샘에서는 샘물이 퐁퐁 솟아 올랐습니다. 물은 분수가 되어 하늘을 향해 치솟다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떨어집니다. 떨어진 물은 집 안에 있는 꽃송이들 위에 내려앉습니다.
그러고 보니 꽃집 속의 꽃들은 떨어지는 물 때문에 싱싱하게 피어나고 향기로운 냄새를 뿌려 줄 수 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면 물은 대단한 힘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을 주는 바탕이었습니다. 물이 꽃에게 행복을 주고 꽃은 아이와 아저씨에게 행복을 주고......
˝사람도 물일 수만 있다면......˝
분수가 되어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며 아저씨가 중얼거렸습니다. 햇빛을 받은 물방울들이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얼핏 보면 은빛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물방울 하나하나에 잔잔한 무지개가 생겨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네에? 사람이 물방울이라니요?˝
아이가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물처럼 남에게 행복을 주는 일 말이다.˝
˝그런 거야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너와 같은 아이들이야 쉽게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우리처럼 마음이 굳어 버린 사람들은 힘이 들어.˝
˝아녜요. 아저씨라면 할 수 있어요. 아저씨, 우리 같이 해요. 남에게 행복을 주는 일 말예요.˝
아이가 아저씨의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같이?˝
˝예, 아저씨가 만든 솜사탕을 타고 지금 당장 떠나요.˝
아이의 눈빛 속에도 물방울 속에 어렸던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지금 당장?˝
˝네, 지금 당장에요. 좋은 일이라면 빨리 할수록 좋다고 했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아저씨는 다시 하얀 솜사탕을 만들었습니다. 솜사탕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이와 같이 탈 수 있는 커다란 솜사탕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이는 분수가 되어 흩어지는 물방울을 쓸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물방울 속에는 행복이 들어 있었습니다.
행복은 꽃가루가 되어 아이가 벌려 놓은 자루 속에 채곡채곡 담겨집니다.
아이와 아저씨는 솜사탕을 탔습니다.
솜사탕은 공중에 붕 뜨더니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중에 높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공중에서 행복의 꽃가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꽃가루는 물결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노오란 꽃가루의 물결----.
주홍빛 꽃가루의 물결----.
보랏빛 꽃가루의 물결----.
하얀 꽃가루의 물결----.
물결은 출렁이며 날아갑니다.
아이는 꽃가루를 뿌리면서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 참 아름다워요.˝
아이가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저씨는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이 꽃가루가 모두에게 골고루 뿌려졌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 어두운 구석구석까지......˝
아이는 중얼거리며 쉬지 않고 자루 속에 채워 두었던 꽃가루를 뿌렸습니다.
˝아저씨도 같이 뿌리셔요.˝
˝그러자꾸나. 마음이 가벼워지는구나.˝
아저씨도 아이처럼 줄거워했습니다.
솜사탕이 둥실둥실 떠 가는 그뒤로 꽃가루의 물결은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이의 생각처럼 불행한 아이들의 눈 속으로 들어가 눈물을 웃음으로 만들어 주고 미움을 사랑으로 녹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기분이 좋아 스르르 몸을 기대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가느다랗게 떠진 눈으로 하늘의 별이 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왜 갑자기 별이 보일까?´
그렇지만 아이는 눈을 크게 뜨지 않았습니다. 그대로가 좋았습니다. 가볍게 내려 감은 눈썹 사이로 별빛이 들어왔습니다. 별빛은 수만 갈래로 갈라지기도 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별을 모두 가슴에 품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슴에 품고 있다가 아무 때고 별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면서 환해졌습니다.
아이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앗!˝
눈 앞에 까만 승용차가 하나 서 있고 불빛은 승용차 헤드라이트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니? 지금 이 시간이면 전부 저녁 기도 할 시간인데......˝
차문을 열고 원장님이 내렸습니다. 금테 안경 속의 눈동자가 매섭도록 차가웠습니다. 아이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아이는,
´이제 곧 벼락이 떨어질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숙인 아이의 발 밑에는 아이가 콩당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새 밤이 되었는지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솜사탕 아저씨는 언제 들어갔는지 자리에 없었습니다.
원장님의 자가용에서 나온 불빛이 아이가 그린 그림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얘.˝
아이는 원장님의 목소리가 뜻밖에도 부드럽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언제 보아도 얼음장만큼이나 차갑던 원장님의 얼굴이 봄바람에 활짝 핀 개나리만큼 풀려 있었습니다.
˝얘, 이 그림, 네가 그렸니?˝
아이는 원장님에게서 이렇게 부드럽고 따스한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보자.˝
원장님이 아이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림을 들어 눈 높이로 가져가더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커다란 솜사탕, 꽃으로 만든 집, 솜사탕을 타고 다니면서 행복의 꽃가루를 뿌려 주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이 선생의 말이 맞았어.˝
˝네?˝
아이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장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니다. 너 오늘부터는 네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라. 필요한 건 총무에게 부탁하면 사 주도록 하마.˝
˝고맙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꾸뻑 숙였습니다.
˝고맙긴. 자, 들어가자.˝
원장님이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에 행복의 빛가루가 수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깜빡이는 별들이 뿌려 주는 빛가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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