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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납고 심술궂은 임금이 살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새 궁전을 지었습니다. 궁전은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바위고 벽돌을 만들어 쌓고......
벌써 궁전을 짓기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지은 궁전이 하늘을 찌를 듯이 까마득하게 높아져 갔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원하는 별을 딸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은 날마다 신하들을 재촉했습니다.
신하들은 공사장 감독을 하는 병사들을 몰아쳤습니다.
병사들은 백성들은 못 살게 달달 볶았습니다.
뚝딱뚝딱----.
망치 소리, 정 소리가 나날이 피로에 지쳐 갔습니다.
슥삭슥삭----.
나무를 켜는 톱, 대패 소리도 하루하루 허덕입니다.
감독을 하는 병사들 손에는 언제나 채찍이 들려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기운이 없어 움직임이 느려지는 백성들에게 사정없이 채찍질을 했습니다.
백성들의 신음 소리, 비명 소리, 한숨 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공사장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돌이나 나무에 깔려 병신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빨리 빨리 완성시키란 말이야. 저 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별을 따다가 내 방에 걸어 두어야겠어.˝
임금은 날마다 닥달을 했습니다.
´원 세상에 말이나 될 법한 소리야?´
´하늘 나라 임금님이 다스리는 별을 따겠다고 궁전을 짓다니, 장차 그 벌을 어떻게 감당하려구 하누?´
´벌도 벌이지만 하늘 나라까지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인데 거기에 닿는 궁전을 지어? 다 쓸데없는 헛일이지.´
그러나, 백성들은 시키는 대로 꾸벅꾸벅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을 속으로만 꿀꺽 삼킬 뿐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잘못 입을 떼었다간 귀신도 모르게 어떻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니까 인심은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각박해져 갔습니다. 물 한 모금 나누어 먹지 않는 메마른 세상이 되어 갔습니다.
하늘의 별을 다스리는 하늘 나라 임금님은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무릇 인간들이란 어쩌다가 저렇게 욕심이 많을꼬? 죽으면 한 치 가져 갈 수 없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 따위를 일으켜 죄 없는 목숨 숱하게 잃도록 하더니 이젠 그것도 부족해 이 하늘 나라에 있는 별을 따겠다고? 가소로운 것들......˝
하얀 구름마차를 타고 하늘을 한 바퀴 돌아본 임금님은 걱정이 되어 중얼거렸습니다.
˝아버님, 무슨 수를 써야겠습니다. 저러다간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 나겠습니다.˝
언제 나왔는지 왕자가 곁에 다가와서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였습니다.
˝너 나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다. 벌을 내릴까?˝
˝...........˝
˝벼락을 내려 궁전을 깨뜨린다?˝
임금님이 무서운 얼굴을 하며 말했습니다.
˝글쎄올시다.˝
˝화산 불을 내려 모조리 쓸어버릴까?˝
˝글쎄요.˝
˝지금 저 나라꼴을 좀 봐. 저들이 원래는 어질고 착한 마음씨를 갖고 태어났었느니라. 욕심, 욕심 때문에......, 왕자야, 어떻게 할까?˝
임금님이 다시 왕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습니다.
˝아버님,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왕자가 활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뭐냐?˝
˝제 생각 같아서는 우선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을 전부 거두어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별을 거두어들여?˝
˝예, 지금 저 나라에서 궁전을 짓는 것은 별을 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 하늘 나라에 있는 별을 모조리 거두어들이면 그들도 뭔가 깨닫는 것이 있어 자연히 궁전 짓는 것을 중지할 것입니다. 또한 저에게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이 진정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왕자가 또박또박 설명을 했습니다.
˝별빛을 없앤다?˝
하늘 나라 임금님은 잠시 머리를 숙여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왕자야, 네 생각이 참 좋구나. 별빛을 없애도록 하자.˝
하늘 나라 임금님은 별빛을 모조리 없앴습니다.
그 날부터 하늘 나라에 있는 별은 모두 빛을 잃었습니다.
땅 나라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밤하늘에 별빛이 모두 없어졌다.˝
˝큰일났다.˝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낮 동안 공사장에서 죽어라고 일을 하던 그들에게 밤이 되면 그나마 피로를 씻어 주고, 지친 마음을 달래 주던 별. 그 별이 전부 없어진 것입니다.
˝이게 모두 벌을 받아서 그런 거야.˝
˝아무렴, 하늘의 별을 따려고 마음을 먹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 소린가?˝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모두들 한숨 섞인 목소리로 걱정을 했습니다.
대궐 안에 있던 임금님에게도 별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뭐라고?˝
마침 궁녀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던 임금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별이 없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글쎄요, 직접 밖에 나가서 보십시오.˝
보고를 하던 신하는 그게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양 허리를 더 굽혔습니다.
임금님은 급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보고를 하던 신하가 그 뒤를 총총걸음으로 따라 나갔습니다.
바깥에 나온 임금님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뒤따라온 신하도 임금님처럼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은 먹물을 쏟아 놓은 듯이 깜깜했습니다. 반짝거리며 빛나야 할 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멍청이.˝
임금님이 고개를 바로 하며 말했습니다.
˝네에?˝
신하도 따라서 고개를 내렸습니다.
˝구름이 낀 것이야. 구름이 끼었으니까 안 보이는 거라구.˝
임금님이 단정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마는 소인의 눈에는 구름이 낀 것이 아니라 별빛이 없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하가 임금님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소리, 생각해 보시오. 갑자기 별이 없어지다니, 그럴 리가 있나?˝
˝저어 마마, 혹시......˝
신하가 허리를 굽히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뭐요?˝
신하는 임금님이 다그치며 묻는 말에 움찔했습니다.
˝뭐냐고 묻지 않소?˝
임금님이 다시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저어, 마마께옵서 별을 따는 궁전을 짓는다고 하늘 나라 임금님이 노하신 것은 아닐까요?˝
˝이런 멍텅구리 같은......, 이 세상에는 내가 왕이야. 하늘 나라 임금? 나 말고 더 높은 사람이 있다니 그건 말도 안 돼. 저건 구름이야, 틀림없는 구름이라구.˝
˝...........˝
신하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구름을 뚫어라! 그러면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빨리 서둘러 구름을 뚫고 별에 닿도록 궁전을 지어라. 어떠냐? 별을 따다 방 안에 걸어놓고 구름을 타고 다니리라. 더 신나는 일이 아니냐?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임금님은 더욱 재촉을 했습니다.
궁전을 짓는 백성들은 별이 없어지던 날부터 더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성벽을 쌓기 위해 커다란 바윗돌을 들어 올릴 때였습니다.
돌은 밑바닥에서 반듯하게 다듬어 굵은 밧줄에 매어 주면 위에서 도르래로 들어 올립니다.
영차, 영차!
힘을 모으는 장단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비록 기운이 없어 겨우겨우 일하는 백성들이었지만 이럴 땐 작은 힘이라도 모아야 일이 쉬워집니다.
바윗덩어리는 천천히 위로 올라갑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힘을 합치는 장단 소리도 높아져 갑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가던 바윗돌 하나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돌을 들어 올리던 밧줄이 끝내 무거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툭 떨어진 것입니다.
˝앗! 비켜라!˝
누군가가 소리쳤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밑바닥에서 돌을 다듬던 인부들이 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무거운 바윗돌에 깔려 버린 것입니다.
근처는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목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오히려 감독을 하는 병사들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졌습니다.
한 마디 가슴 아파하거나 눈믈을 흘릴 만한 틈도 주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 일꾼 중에 노인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다행히 바윗돌에 바로 깔리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노인은 다른 인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쬐끄만 손자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노인과 단둘이 사는 손자입니다.
˝할아버지.˝
아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방 안에 눕혀졌습니다.
방이래야 비바람을 겨우 피할 정도의 다 찌그러져 가는 오두막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무리 불러도 할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 소리만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콧물도 흘러 내렸습니다. 아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씩 닦고는 노인의 상처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피를 수건으로 싸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인은 끝내 대답이 없었습니다. 가끔 가다가 ´억, 어억!´ 하는 비명을 지르고는 금방 까무라쳐 정신을 잃곤 하였습니다.
거리에 거지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온 거지인지 모르지만 새 궁전을 짓는 도성 거리거리를 동냥하면서 다녔습니다.
˝원 세상 꼴이 안 되려니까 별 재수 없는 것이 다 생기네. 요즈음 같으면 내 목숨 연명하기도 힘드는데 거지 줄 게 어디 있어.˝
집집마다 한 마디로 내쫓았습니다.
점잖게 말로만 내쫓는 집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궁전 짓는 공사장에서 맞은 화풀이라도 하는지 온갖 악담을 퍼부어 댔습니다.
침을 탁 뱉는 집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거지는 생김 자체도 흉칙했습니다. 꼽추에다가 한 쪽 다리를 절었습니다.
한쪽 팔은 불에 데어 찌글찌글한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두 눈동자가 모두 흰자위로 덮여 있고 코도 비뚤어져 있습니다.
유난히 큰 입에는 다 썩은 이빨이 말을 할 때마다 보기 흉하게 드러났습니다.
˝며칠 전 부엌에 놓아두었던 밥이 없어졌더니 바로 네 녀석 짓이구나, 요 도둑놈의 새끼.˝
어떤 집에서는 도둑의 누명까지 썼습니다. 몽둥이며 돌이며 마구 던지는 바람에 온몸은 더욱 상처가 많이 생겼습니다.
공사장 감독하는 병사의 집에 모르고 들어갔다가 채찍으로 숱하게 맞기도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별 따는 궁전인가를 짓기 전에는 인심이 이렇게 사납지는 않았었는데......´
거지는 그래도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을 해야 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목도 말랐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물 한 모금 밥 한 술 따스하게 주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어느 집 담장에 기대어 밤을 새운 거지는 새벽이 되자 언덕을 넘었습니다.
딴 마을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언덕마루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며칠 전 공사장에서 다리를 다쳤던 노인의 손자였습니다.
아이의 손에는 물병이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얘!˝
거지가 아이를 불렀습니다.
˝네?˝
˝들고 가는 게 물이지? 나 미안하지만 물 한 모금만 줄래?˝
거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습니다.
˝물을요?˝
아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안 되겠니?˝
˝며칠 전에 할아버지께서 공사장 일을 하다가 다치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 드리려고 약수를 길어 오는 길인데......˝
˝그렇다면 안 되겠구나. 어서 할아버지 갖다 드려라.˝
거지는 몹시 피로한 기색을 지었습니다. 사실 피로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물 한 모금 못 얻어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셔요?˝
˝뭐 사방......˝
˝이 물 드셔요. 전 다시 가서 실어 오면 돼요.˝
˝약수터가 여기서 가깝니?˝
˝아뇨, 조금 멀어요. 그렇지만 빨리 뛰어가서 길어 오면 돼요. 전 뜀박질을 잘 하거든요.˝
아이가 물병을 거지 쪽으로 내밀었습니다.
˝정말 괜찮겠니? 할아버지 드릴 거라면서?˝
아이는 할아버지 생각을 했는지 금세 시무룩해지면서 고개만 힘없이 끄덕였습니다.
˝고맙다, 얘야.˝
거지는 아이에게서 물병을 받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어, 시원하다.˝
아이는 거지가 물을 마시는 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름송이가 막 솟아오르는 햇빛에 물들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꽃 같은 구름송이.
아이는 공연히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저씨, 저 아름다운 하늘 좀 봐요. 구름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어요. 그런데, 밤에는 별이 없어졌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천벌을 받았대요. 별을 따려고 궁전을 지었기 때문이래요.˝
아이는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아이는 거지가 손목을 잡으면서 물병을 건네 줄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 다시 약수 뜨러 가야지.˝
아이가 물병을 받으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던 거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아주 늠름하고 씩씩하게 생긴 젊은이가 서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입고 있는 옷차림은 땅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하늘 나라 왕자였던 것입니다.
˝누, 누, 누구세요?˝
아이가 한참 동안 멍하니 섰다가 겨우 입을 떼었습니다.
˝놀라지 마라. 이 땅 나라 인심 고약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려고 온 하늘 나라 왕자란다.˝
왕자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왕자님?˝
˝그렇단다. 얘야, 너에게 물 한 모금 얻어 마신 것이 내가 이 땅 나라에 내려온 지 꼭 보름 만이었단다. 원 세상 인심이 그렇게 고약해질 수가 있는지......˝
˝왕자님.˝
아이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처럼 얼떨떨했습니다.
˝네가 떠 온 약수터에서 불이 솟아난다.˝
˝불이요?˝
˝그래. 넌 나를 따라 하늘 나라로 가자.˝
˝그,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별을 따려고 하던 궁전은요?˝
아이는 얼떨결에 생각나는 대로 물었습니다.
˝물론 살아 남기 어렵지. 다 죄를 저지른 대가이지. 참으려고, 용서해 주려고 했지만 그 죄가 너무 커. 이미 하늘 나라 아버님께서는 땅 속 깊이 있는 불을 끌어올리고 있단다. 정말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그럼 이 일을 어떻게 한다지? 우리, 우리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고요?˝
˝이미 하늘 나라에 가 계시단다. 안전한 곳으로......˝
˝네? 할아버지께서 벌써 하늘 나라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왜?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니?˝
˝아, 아뇨.˝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자, 그럼 눈을 갑고 내 손을 잡아라.˝
왕자가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이의 손이 자석에 끌리는 쇳덩어리처럼 왕자의 손바닥에 잡혀졌습니다.
˝눈을 꼭 감아.˝
아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났습니다. 뭔가 발 밑으로 슥슥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됐다. 눈을 떠라.˝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구름 위였습니다. 하얀 구름 송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그 위로 아이가 날고 있었습니다.
왕자의 손을 꼭 잡은 채 몸은 위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하늘문´이라고 써 놓은 곳에 닿았습니다.
왕자와 아이가 닿자 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렸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전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궁전은 넓고도 으리으리했습니다. 갖가지 진기한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파란 빛, 노란 빛, 빨간 빛, 무지개 빛......
아이로서는 도무지 처음 보는 으리으리한 것들입니다.
´별을 가까이서 보면 저런 빛일 거야.´
아이는 색색의 빛을 뿜어 내는 보석들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저길 봐.˝
왕자가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넓은 풀밭이 보였습니다. 꽃사슴이 무리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어?˝
꽃사슴 사이에 할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아이가 소리쳐 불러보았습니다.
˝이 곳에서는 아무리 소리쳐 보았자 들리지 않는단다. 할아버지가 이 곳에 있는 줄 알았으니 자 어서 가자.˝
˝조금만 더 보고요.˝
˝소용 없어. 할아버지가 금방 사라질 테니까.˝
왕자의 말대로 할아버지는 안개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다리나 다 나았는지 자세히 볼걸.˝
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걱정 마. 여기서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여긴 구름을 타고 다니니까.˝
아이는 왕자가 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하늘 나라 임금님이 앉아 있는 곳까지 갔습니다.
˝이 아이냐?˝
˝네.˝
아이는 얼른 허리를 굽혀 절을 꾸뻑했습니다.
수염이 허연 임금님의 얼굴은 무척 인자해 보였습니다.
˝얘야.˝
임금님이 아이를 불렀습니다.
˝예.˝
˝원래 사람은 아주 착하게 태어난단다. 그런데 주위에 물이 들고 욕심이 생겨서 악해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지. 네가 살던 곳만 해도 처음에 태어날 땐 모두 어질고 순한 사람이었다.˝
˝.........˝
˝이제 그 사람들에게 벌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늘의 법이란 엄하고도 무서운 것. 몇 번이고 용서해 주려고 기회를 주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이젠 벌을 받아 마땅하지.˝
하늘 나라 임금님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아이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람의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지. 그러기에 널 용서해 준 것이야. 자, 보아라.˝
임금님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임금님은 천장에 늘어진 여러 가닥의 줄 가운데 빨간빛이 나는 것을 당겼습니다.
그 순간입니다.
˝쾅!˝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습니다.
아이는 왕자가 말없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 속에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불덩어리는 쉬지 않고 계속 솟아 나왔습니다. 솟아 나온 불덩어리는 분수의 물줄기처럼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저게 불의 산이라는 거란다.˝
왕자가 옆에서 말해 주었습니다.
˝아!˝
아이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입을 딱 벌렸습니다.
불덩어리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그 속에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힘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것을 모조리 삼켜 버렸습니다. 큰 나무가 휩쓸려 갔습니다. 바윗덩어리도 순식간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집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별을 따려고 짓던 궁전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사람들도 불 속으로 휩싸여 들어갔습니다.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모르고 울부짖는 모습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불을 피해 달아나려고 했지만 몇 발자국 못 가고 휩쓸려 버렸습니다.
궁전을 짓던 임금도, 신하들도, 병사들도 하나 둘 불 속에 삼켜졌습니다.
˝아!˝
아이는 너무 끔찍해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뻘건 불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눈을 감아도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으앙!˝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왜?˝
왕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겁이 나요.˝
아이가 몸서리치듯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 다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거야. 얘야, 넌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야 해. 죄를 지어선 안 돼. 알겠지?˝
˝예.˝
아이는 아직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느다랗게 떠진 눈으로 땅 나라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땅 나라를 온통 불바다였습니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물결처럼 혀를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하늘 나라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땅 나라를 완전히 쓸어 버렸던 불덩어리가 거의 식어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아이를 불렀습니다.
˝얘야, 이 끈들을 자세히 보아라.˝
아이가 임금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노란 끈, 파란 끈, 하얀 끈, 검은 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끈들이 바로 벌을 내리는 것이란다. 노란 건 가뭄으로, 파란 건 홍수로, 검은 것은 질병으로......˝
˝아직도 벌이 덜 끝났나요?˝
아이가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고, 앞으로 인간들이 또 죄를 짓고 인간의 착한 성질을 잃었을 때이지. 착하게 착하게만 살면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겠지.˝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얘야, 이 상자를 가지고 가거라.˝
임금님이 빨간 꽃무늬가 곱게 수놓인 예쁜 상자 하나를 주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이걸 가지고 가거라. 땅 나라에 가면 필요할 테니까. 이것만 있으면 너 혼자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절을 꾸뻑하고 상자를 받았습니다.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꽤 묵직했습니다.
˝땅 나라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로 상자 뚜껑을 열지마라.˝
임금님이 당부를 했습니다.
˝예, 안녕히 계세요.˝
아이는 상자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깥에는 왕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란히 구름을 타고 날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문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이는 임금님이 준 상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뭘까?´
´뭐가 들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열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꺼내 보고 싶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열지 마라.´
두 번 세 번 당부하던 임금님의 말이 아이 마음을 더욱더 궁금하게 했습니다.
´그냥 잠깐만 들여다보고 다시 닫으면 안 될까?´
˝이걸 가지고 가면 너 혼자만은 잘 살 수 있을 거다.˝
임금님의 말이 새삼 또렸하게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그 말을 가만히 되새겨 보았습니다.
´너 혼자만은? 너 혼자만은?´
웬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혼자만은 잘 살 수 있다지만 나 혼자 잘 살아서 뭘 해. 다 같이 잘 살아야지.´
조금 전에 받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자꾸만 잘못된 것 같아 마음에 걸렸습니다.
´뭔데 그랬을까?´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니?˝
왕자가 아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습니다.
˝네? 네. 아, 아무것도......˝
하늘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이제 땅 나라로 내려가도 됩니다.
´그래, 나 혼자 잘 살 수만은 없지.´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얼른 상자 뚜껑을 열었습니다.
˝앗!˝
아이는 깜짝 놀라 눈을 감았습니다.
상자 속에서 무언가 강렬한 것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빛이었습니다.
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두 눈을 콕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얘.˝
왕자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아이는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상자 속에서는 아직도 빛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빛은 덩어리가 되어 하나씩 톡톡 튀어나왔습니다.
하나, 둘, 셋......
빛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쉬지 않고 계속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멀리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아이는 날아가는 빛덩어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빛은 제각기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야!˝
아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리를 잡고 깜빡거리는 빛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옳아, 별, 이게 바로 별이야. 얼마 전에 하늘 나라 임금님이 거두어 들인 별이야.´
아이의 상자에서 튀어 나간 별들은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반짝 반짝.
아이는 상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직도 별은 퐁퐁 솟아 나와 상자 밖에 나오면 빠른 속도로 하늘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아이는 상자를 거꾸로 들었습니다.
빛무리가 한꺼번에 좌악 흘러나왔습니다. 빛무리는 물길처럼 흐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하늘 저쪽 끝에 닿았습니다.
별.
은하수.
´역시 열어 보길 잘했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상자 속에 넣어 두고 나 혼자만 두고 볼 수는 없어.´
아이는 아직도 쏟아져 나오는 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임금은 새 궁전을 지었습니다. 궁전은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바위고 벽돌을 만들어 쌓고......
벌써 궁전을 짓기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지은 궁전이 하늘을 찌를 듯이 까마득하게 높아져 갔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원하는 별을 딸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은 날마다 신하들을 재촉했습니다.
신하들은 공사장 감독을 하는 병사들을 몰아쳤습니다.
병사들은 백성들은 못 살게 달달 볶았습니다.
뚝딱뚝딱----.
망치 소리, 정 소리가 나날이 피로에 지쳐 갔습니다.
슥삭슥삭----.
나무를 켜는 톱, 대패 소리도 하루하루 허덕입니다.
감독을 하는 병사들 손에는 언제나 채찍이 들려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기운이 없어 움직임이 느려지는 백성들에게 사정없이 채찍질을 했습니다.
백성들의 신음 소리, 비명 소리, 한숨 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공사장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휘두르는 채찍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돌이나 나무에 깔려 병신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공사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빨리 빨리 완성시키란 말이야. 저 하늘에 있는 아름다운 별을 따다가 내 방에 걸어 두어야겠어.˝
임금은 날마다 닥달을 했습니다.
´원 세상에 말이나 될 법한 소리야?´
´하늘 나라 임금님이 다스리는 별을 따겠다고 궁전을 짓다니, 장차 그 벌을 어떻게 감당하려구 하누?´
´벌도 벌이지만 하늘 나라까지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인데 거기에 닿는 궁전을 지어? 다 쓸데없는 헛일이지.´
그러나, 백성들은 시키는 대로 꾸벅꾸벅 일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을 속으로만 꿀꺽 삼킬 뿐이었습니다. 누구 하나 잘못 입을 떼었다간 귀신도 모르게 어떻게 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니까 인심은 날이 갈수록 흉악해지고 각박해져 갔습니다. 물 한 모금 나누어 먹지 않는 메마른 세상이 되어 갔습니다.
하늘의 별을 다스리는 하늘 나라 임금님은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무릇 인간들이란 어쩌다가 저렇게 욕심이 많을꼬? 죽으면 한 치 가져 갈 수 없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 따위를 일으켜 죄 없는 목숨 숱하게 잃도록 하더니 이젠 그것도 부족해 이 하늘 나라에 있는 별을 따겠다고? 가소로운 것들......˝
하얀 구름마차를 타고 하늘을 한 바퀴 돌아본 임금님은 걱정이 되어 중얼거렸습니다.
˝아버님, 무슨 수를 써야겠습니다. 저러다간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 나겠습니다.˝
언제 나왔는지 왕자가 곁에 다가와서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였습니다.
˝너 나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이다. 벌을 내릴까?˝
˝...........˝
˝벼락을 내려 궁전을 깨뜨린다?˝
임금님이 무서운 얼굴을 하며 말했습니다.
˝글쎄올시다.˝
˝화산 불을 내려 모조리 쓸어버릴까?˝
˝글쎄요.˝
˝지금 저 나라꼴을 좀 봐. 저들이 원래는 어질고 착한 마음씨를 갖고 태어났었느니라. 욕심, 욕심 때문에......, 왕자야, 어떻게 할까?˝
임금님이 다시 왕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습니다.
˝아버님,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왕자가 활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뭐냐?˝
˝제 생각 같아서는 우선 밤하늘에 빛나고 있는 별을 전부 거두어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별을 거두어들여?˝
˝예, 지금 저 나라에서 궁전을 짓는 것은 별을 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 하늘 나라에 있는 별을 모조리 거두어들이면 그들도 뭔가 깨닫는 것이 있어 자연히 궁전 짓는 것을 중지할 것입니다. 또한 저에게 한 번 그들의 마음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이 진정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왕자가 또박또박 설명을 했습니다.
˝별빛을 없앤다?˝
하늘 나라 임금님은 잠시 머리를 숙여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왕자야, 네 생각이 참 좋구나. 별빛을 없애도록 하자.˝
하늘 나라 임금님은 별빛을 모조리 없앴습니다.
그 날부터 하늘 나라에 있는 별은 모두 빛을 잃었습니다.
땅 나라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밤하늘에 별빛이 모두 없어졌다.˝
˝큰일났다.˝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낮 동안 공사장에서 죽어라고 일을 하던 그들에게 밤이 되면 그나마 피로를 씻어 주고, 지친 마음을 달래 주던 별. 그 별이 전부 없어진 것입니다.
˝이게 모두 벌을 받아서 그런 거야.˝
˝아무렴, 하늘의 별을 따려고 마음을 먹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 소린가?˝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모두들 한숨 섞인 목소리로 걱정을 했습니다.
대궐 안에 있던 임금님에게도 별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뭐라고?˝
마침 궁녀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던 임금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별이 없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글쎄요, 직접 밖에 나가서 보십시오.˝
보고를 하던 신하는 그게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양 허리를 더 굽혔습니다.
임금님은 급히 밖으로 나갔습니다. 보고를 하던 신하가 그 뒤를 총총걸음으로 따라 나갔습니다.
바깥에 나온 임금님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뒤따라온 신하도 임금님처럼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은 먹물을 쏟아 놓은 듯이 깜깜했습니다. 반짝거리며 빛나야 할 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멍청이.˝
임금님이 고개를 바로 하며 말했습니다.
˝네에?˝
신하도 따라서 고개를 내렸습니다.
˝구름이 낀 것이야. 구름이 끼었으니까 안 보이는 거라구.˝
임금님이 단정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마는 소인의 눈에는 구름이 낀 것이 아니라 별빛이 없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하가 임금님의 눈치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소리, 생각해 보시오. 갑자기 별이 없어지다니, 그럴 리가 있나?˝
˝저어 마마, 혹시......˝
신하가 허리를 굽히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뭐요?˝
신하는 임금님이 다그치며 묻는 말에 움찔했습니다.
˝뭐냐고 묻지 않소?˝
임금님이 다시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저어, 마마께옵서 별을 따는 궁전을 짓는다고 하늘 나라 임금님이 노하신 것은 아닐까요?˝
˝이런 멍텅구리 같은......, 이 세상에는 내가 왕이야. 하늘 나라 임금? 나 말고 더 높은 사람이 있다니 그건 말도 안 돼. 저건 구름이야, 틀림없는 구름이라구.˝
˝...........˝
신하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구름을 뚫어라! 그러면 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빨리 서둘러 구름을 뚫고 별에 닿도록 궁전을 지어라. 어떠냐? 별을 따다 방 안에 걸어놓고 구름을 타고 다니리라. 더 신나는 일이 아니냐? 더 빨리, 더 빨리, 더 빨리!˝
임금님은 더욱 재촉을 했습니다.
궁전을 짓는 백성들은 별이 없어지던 날부터 더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성벽을 쌓기 위해 커다란 바윗돌을 들어 올릴 때였습니다.
돌은 밑바닥에서 반듯하게 다듬어 굵은 밧줄에 매어 주면 위에서 도르래로 들어 올립니다.
영차, 영차!
힘을 모으는 장단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비록 기운이 없어 겨우겨우 일하는 백성들이었지만 이럴 땐 작은 힘이라도 모아야 일이 쉬워집니다.
바윗덩어리는 천천히 위로 올라갑니다. 하나 둘, 하나 둘...... 힘을 합치는 장단 소리도 높아져 갑니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가던 바윗돌 하나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돌을 들어 올리던 밧줄이 끝내 무거운 힘을 견디지 못하고 툭 떨어진 것입니다.
˝앗! 비켜라!˝
누군가가 소리쳤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밑바닥에서 돌을 다듬던 인부들이 악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무거운 바윗돌에 깔려 버린 것입니다.
근처는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습니다.
수십 명의 목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오히려 감독을 하는 병사들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졌습니다.
한 마디 가슴 아파하거나 눈믈을 흘릴 만한 틈도 주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 일꾼 중에 노인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다행히 바윗돌에 바로 깔리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은 건졌지만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노인은 다른 인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
집에는 쬐끄만 손자 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노인과 단둘이 사는 손자입니다.
˝할아버지.˝
아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를 보고 울음부터 터뜨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방 안에 눕혀졌습니다.
방이래야 비바람을 겨우 피할 정도의 다 찌그러져 가는 오두막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무리 불러도 할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 소리만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이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습니다. 콧물도 흘러 내렸습니다. 아이는 주먹으로 눈물을 씩 닦고는 노인의 상처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피를 수건으로 싸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인은 끝내 대답이 없었습니다. 가끔 가다가 ´억, 어억!´ 하는 비명을 지르고는 금방 까무라쳐 정신을 잃곤 하였습니다.
거리에 거지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온 거지인지 모르지만 새 궁전을 짓는 도성 거리거리를 동냥하면서 다녔습니다.
˝원 세상 꼴이 안 되려니까 별 재수 없는 것이 다 생기네. 요즈음 같으면 내 목숨 연명하기도 힘드는데 거지 줄 게 어디 있어.˝
집집마다 한 마디로 내쫓았습니다.
점잖게 말로만 내쫓는 집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궁전 짓는 공사장에서 맞은 화풀이라도 하는지 온갖 악담을 퍼부어 댔습니다.
침을 탁 뱉는 집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거지는 생김 자체도 흉칙했습니다. 꼽추에다가 한 쪽 다리를 절었습니다.
한쪽 팔은 불에 데어 찌글찌글한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두 눈동자가 모두 흰자위로 덮여 있고 코도 비뚤어져 있습니다.
유난히 큰 입에는 다 썩은 이빨이 말을 할 때마다 보기 흉하게 드러났습니다.
˝며칠 전 부엌에 놓아두었던 밥이 없어졌더니 바로 네 녀석 짓이구나, 요 도둑놈의 새끼.˝
어떤 집에서는 도둑의 누명까지 썼습니다. 몽둥이며 돌이며 마구 던지는 바람에 온몸은 더욱 상처가 많이 생겼습니다.
공사장 감독하는 병사의 집에 모르고 들어갔다가 채찍으로 숱하게 맞기도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별 따는 궁전인가를 짓기 전에는 인심이 이렇게 사납지는 않았었는데......´
거지는 그래도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을 해야 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목도 말랐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물 한 모금 밥 한 술 따스하게 주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어느 집 담장에 기대어 밤을 새운 거지는 새벽이 되자 언덕을 넘었습니다.
딴 마을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언덕마루에서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며칠 전 공사장에서 다리를 다쳤던 노인의 손자였습니다.
아이의 손에는 물병이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얘!˝
거지가 아이를 불렀습니다.
˝네?˝
˝들고 가는 게 물이지? 나 미안하지만 물 한 모금만 줄래?˝
거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습니다.
˝물을요?˝
아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 안 되겠니?˝
˝며칠 전에 할아버지께서 공사장 일을 하다가 다치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 드리려고 약수를 길어 오는 길인데......˝
˝그렇다면 안 되겠구나. 어서 할아버지 갖다 드려라.˝
거지는 몹시 피로한 기색을 지었습니다. 사실 피로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물 한 모금 못 얻어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셔요?˝
˝뭐 사방......˝
˝이 물 드셔요. 전 다시 가서 실어 오면 돼요.˝
˝약수터가 여기서 가깝니?˝
˝아뇨, 조금 멀어요. 그렇지만 빨리 뛰어가서 길어 오면 돼요. 전 뜀박질을 잘 하거든요.˝
아이가 물병을 거지 쪽으로 내밀었습니다.
˝정말 괜찮겠니? 할아버지 드릴 거라면서?˝
아이는 할아버지 생각을 했는지 금세 시무룩해지면서 고개만 힘없이 끄덕였습니다.
˝고맙다, 얘야.˝
거지는 아이에게서 물병을 받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물을 꿀꺽꿀꺽 마셨습니다.
˝어, 시원하다.˝
아이는 거지가 물을 마시는 동안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구름송이가 막 솟아오르는 햇빛에 물들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꽃 같은 구름송이.
아이는 공연히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아저씨, 저 아름다운 하늘 좀 봐요. 구름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어요. 그런데, 밤에는 별이 없어졌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천벌을 받았대요. 별을 따려고 궁전을 지었기 때문이래요.˝
아이는 하늘을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아이는 거지가 손목을 잡으면서 물병을 건네 줄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 다시 약수 뜨러 가야지.˝
아이가 물병을 받으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있던 거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아주 늠름하고 씩씩하게 생긴 젊은이가 서 있었습니다.
젊은이가 입고 있는 옷차림은 땅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하늘 나라 왕자였던 것입니다.
˝누, 누, 누구세요?˝
아이가 한참 동안 멍하니 섰다가 겨우 입을 떼었습니다.
˝놀라지 마라. 이 땅 나라 인심 고약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려고 온 하늘 나라 왕자란다.˝
왕자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왕자님?˝
˝그렇단다. 얘야, 너에게 물 한 모금 얻어 마신 것이 내가 이 땅 나라에 내려온 지 꼭 보름 만이었단다. 원 세상 인심이 그렇게 고약해질 수가 있는지......˝
˝왕자님.˝
아이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처럼 얼떨떨했습니다.
˝네가 떠 온 약수터에서 불이 솟아난다.˝
˝불이요?˝
˝그래. 넌 나를 따라 하늘 나라로 가자.˝
˝그,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별을 따려고 하던 궁전은요?˝
아이는 얼떨결에 생각나는 대로 물었습니다.
˝물론 살아 남기 어렵지. 다 죄를 저지른 대가이지. 참으려고, 용서해 주려고 했지만 그 죄가 너무 커. 이미 하늘 나라 아버님께서는 땅 속 깊이 있는 불을 끌어올리고 있단다. 정말 용서해 주려고 했는데.....˝
˝그럼 이 일을 어떻게 한다지? 우리, 우리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고요?˝
˝이미 하늘 나라에 가 계시단다. 안전한 곳으로......˝
˝네? 할아버지께서 벌써 하늘 나라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왜?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니?˝
˝아, 아뇨.˝
아이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자, 그럼 눈을 갑고 내 손을 잡아라.˝
왕자가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이의 손이 자석에 끌리는 쇳덩어리처럼 왕자의 손바닥에 잡혀졌습니다.
˝눈을 꼭 감아.˝
아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났습니다. 뭔가 발 밑으로 슥슥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됐다. 눈을 떠라.˝
아이가 눈을 떴습니다.
구름 위였습니다. 하얀 구름 송이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그 위로 아이가 날고 있었습니다.
왕자의 손을 꼭 잡은 채 몸은 위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이윽고 ´하늘문´이라고 써 놓은 곳에 닿았습니다.
왕자와 아이가 닿자 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렸습니다.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전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궁전은 넓고도 으리으리했습니다. 갖가지 진기한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파란 빛, 노란 빛, 빨간 빛, 무지개 빛......
아이로서는 도무지 처음 보는 으리으리한 것들입니다.
´별을 가까이서 보면 저런 빛일 거야.´
아이는 색색의 빛을 뿜어 내는 보석들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저길 봐.˝
왕자가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넓은 풀밭이 보였습니다. 꽃사슴이 무리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어?˝
꽃사슴 사이에 할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아이가 소리쳐 불러보았습니다.
˝이 곳에서는 아무리 소리쳐 보았자 들리지 않는단다. 할아버지가 이 곳에 있는 줄 알았으니 자 어서 가자.˝
˝조금만 더 보고요.˝
˝소용 없어. 할아버지가 금방 사라질 테니까.˝
왕자의 말대로 할아버지는 안개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다리나 다 나았는지 자세히 볼걸.˝
아이가 중얼거렸습니다.
˝걱정 마. 여기서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여긴 구름을 타고 다니니까.˝
아이는 왕자가 끄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하늘 나라 임금님이 앉아 있는 곳까지 갔습니다.
˝이 아이냐?˝
˝네.˝
아이는 얼른 허리를 굽혀 절을 꾸뻑했습니다.
수염이 허연 임금님의 얼굴은 무척 인자해 보였습니다.
˝얘야.˝
임금님이 아이를 불렀습니다.
˝예.˝
˝원래 사람은 아주 착하게 태어난단다. 그런데 주위에 물이 들고 욕심이 생겨서 악해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지. 네가 살던 곳만 해도 처음에 태어날 땐 모두 어질고 순한 사람이었다.˝
˝.........˝
˝이제 그 사람들에게 벌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늘의 법이란 엄하고도 무서운 것. 몇 번이고 용서해 주려고 기회를 주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이젠 벌을 받아 마땅하지.˝
하늘 나라 임금님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아이는 겁이 더럭 났습니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람의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지. 그러기에 널 용서해 준 것이야. 자, 보아라.˝
임금님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임금님은 천장에 늘어진 여러 가닥의 줄 가운데 빨간빛이 나는 것을 당겼습니다.
그 순간입니다.
˝쾅!˝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습니다.
아이는 왕자가 말없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 속에서 시뻘건 불덩어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불덩어리는 쉬지 않고 계속 솟아 나왔습니다. 솟아 나온 불덩어리는 분수의 물줄기처럼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저게 불의 산이라는 거란다.˝
왕자가 옆에서 말해 주었습니다.
˝아!˝
아이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입을 딱 벌렸습니다.
불덩어리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그 속에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힘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것을 모조리 삼켜 버렸습니다. 큰 나무가 휩쓸려 갔습니다. 바윗덩어리도 순식간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집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별을 따려고 짓던 궁전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사람들도 불 속으로 휩싸여 들어갔습니다.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모르고 울부짖는 모습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불을 피해 달아나려고 했지만 몇 발자국 못 가고 휩쓸려 버렸습니다.
궁전을 짓던 임금도, 신하들도, 병사들도 하나 둘 불 속에 삼켜졌습니다.
˝아!˝
아이는 너무 끔찍해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뻘건 불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눈을 감아도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으앙!˝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왜?˝
왕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겁이 나요.˝
아이가 몸서리치듯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 다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거야. 얘야, 넌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야 해. 죄를 지어선 안 돼. 알겠지?˝
˝예.˝
아이는 아직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느다랗게 떠진 눈으로 땅 나라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땅 나라를 온통 불바다였습니다. 시뻘건 불덩어리가 물결처럼 혀를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하늘 나라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땅 나라를 완전히 쓸어 버렸던 불덩어리가 거의 식어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아이를 불렀습니다.
˝얘야, 이 끈들을 자세히 보아라.˝
아이가 임금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노란 끈, 파란 끈, 하얀 끈, 검은 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 끈들이 바로 벌을 내리는 것이란다. 노란 건 가뭄으로, 파란 건 홍수로, 검은 것은 질병으로......˝
˝아직도 벌이 덜 끝났나요?˝
아이가 겁을 잔뜩 먹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고, 앞으로 인간들이 또 죄를 짓고 인간의 착한 성질을 잃었을 때이지. 착하게 착하게만 살면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겠지.˝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얘야, 이 상자를 가지고 가거라.˝
임금님이 빨간 꽃무늬가 곱게 수놓인 예쁜 상자 하나를 주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이걸 가지고 가거라. 땅 나라에 가면 필요할 테니까. 이것만 있으면 너 혼자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절을 꾸뻑하고 상자를 받았습니다.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꽤 묵직했습니다.
˝땅 나라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로 상자 뚜껑을 열지마라.˝
임금님이 당부를 했습니다.
˝예, 안녕히 계세요.˝
아이는 상자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깥에는 왕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란히 구름을 타고 날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문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아이는 임금님이 준 상자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뭘까?´
´뭐가 들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열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꺼내 보고 싶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열지 마라.´
두 번 세 번 당부하던 임금님의 말이 아이 마음을 더욱더 궁금하게 했습니다.
´그냥 잠깐만 들여다보고 다시 닫으면 안 될까?´
˝이걸 가지고 가면 너 혼자만은 잘 살 수 있을 거다.˝
임금님의 말이 새삼 또렸하게 떠올랐습니다.
아이는 그 말을 가만히 되새겨 보았습니다.
´너 혼자만은? 너 혼자만은?´
웬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혼자만은 잘 살 수 있다지만 나 혼자 잘 살아서 뭘 해. 다 같이 잘 살아야지.´
조금 전에 받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 자꾸만 잘못된 것 같아 마음에 걸렸습니다.
´뭔데 그랬을까?´
˝뭘 그렇게 깊이 생각하니?˝
왕자가 아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습니다.
˝네? 네. 아, 아무것도......˝
하늘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이제 땅 나라로 내려가도 됩니다.
´그래, 나 혼자 잘 살 수만은 없지.´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얼른 상자 뚜껑을 열었습니다.
˝앗!˝
아이는 깜짝 놀라 눈을 감았습니다.
상자 속에서 무언가 강렬한 것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빛이었습니다.
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두 눈을 콕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얘.˝
왕자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아이는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상자 속에서는 아직도 빛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빛은 덩어리가 되어 하나씩 톡톡 튀어나왔습니다.
하나, 둘, 셋......
빛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쉬지 않고 계속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멀리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아이는 날아가는 빛덩어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빛은 제각기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야!˝
아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리를 잡고 깜빡거리는 빛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옳아, 별, 이게 바로 별이야. 얼마 전에 하늘 나라 임금님이 거두어 들인 별이야.´
아이의 상자에서 튀어 나간 별들은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반짝 반짝.
아이는 상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아직도 별은 퐁퐁 솟아 나와 상자 밖에 나오면 빠른 속도로 하늘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아이는 상자를 거꾸로 들었습니다.
빛무리가 한꺼번에 좌악 흘러나왔습니다. 빛무리는 물길처럼 흐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하늘 저쪽 끝에 닿았습니다.
별.
은하수.
´역시 열어 보길 잘했어. 이렇게 아름다운 걸 상자 속에 넣어 두고 나 혼자만 두고 볼 수는 없어.´
아이는 아직도 쏟아져 나오는 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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