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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2700. 그림 <나물캐기>에 담긴 윤두서의 따뜻한 마음
이제 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꽁꽁 얼어 생명이 모두 죽었을 것 같던 자연은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이때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여인들이 나물을 캐는 모습입니다. 특히 이른 봄철에 나오는 달래, 냉이, 씀바귀, 쑥 같은 것들은 겨우내 모자란 영양분을 보충해주기 충분합니다. 더구나 조선시대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백성들은 봄철의 나물은 끼니를 때우는 중요한 구황식품이었지요.
전남 해남군 녹우당(綠雨堂)에 소장돼 있는 <채애도(採艾圖)> 곧 <나물캐기>는 이른 봄날 나물 캐는 아낙네를 그린 작품입니다. 가파르게 대각선으로 그려진 언덕과 산은 어쩌면 이 아낙네들의 팍팍한 삶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한 여인은 한 손에 망태기, 한 손에 칼을 든 채 허리를 굽혀 나물을 캐고, 또 한 여인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 거립니다. 이 그림을 그린 조선시대의 선비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는 자신이 양반임에도 헐벗은 백성의 삶을 돌볼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재의 그림을 보면 이 <나물캐기> 말고도 짚신삼기, 목기깎기, 돌깨기 같은 풍속화를 많이 그렸는데 어려운 삶을 사는 백성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그림들이지요. '해남 윤씨문헌(海南尹氏文獻)' 공재공행장에는 “그해 마침 해일(海溢)이 일어 바닷가 고을은 모두 곡식이 떠내려가고 텅 빈 들판은 벌겋게 황톳물로 물들어 있었다. 백포(白浦)는 바다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재해(災害)가 특히 극심하였다. (중간줄임) 공재공은 마을사람들에게 함께 그 나무들을 베어내고 소금을 구워 살길을 찾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한마을 수백호의 주민이 이에 도움을 받아 모두 굶어죽지 않고 살아나 떠돌아다니거나 죽는 일이 없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춘궁기입니다. 나만 배부르면 될 일이 아니라 공재처럼 주위를 들러보고, 굶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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