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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 성경본문 : | 대상28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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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 장별묵상366 |
다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에 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한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28:9)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라는 말은 종교적이나 영적인 지식을 많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증가로서의 앎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이나 체험으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라는 말이다.
‘안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야다’인데, 어떤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 ‘남자가 여자를 안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야다’라는 단어를 썼다. ‘안다’ 것은 개인적인 교제, 더 깊고 밀접한 의미에서 사랑의 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라’는 말은 마치 부부가 성관계를 맺음으로 더 깊이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처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와 교제와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체험적으로 알라는 뜻이다.
종교개혁 이전에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믿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증가하고,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명확해졌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직접적인 앎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자기계시’를 천주교는 인정을 하지만, 기독교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작인 ‘침묵’도 사라져 버렸다.
기독교가 ‘시끄러운 소리’ 종교가 되면서 능력은 많아졌지만, 대신 은밀한 ‘야다’는 다 사라지고 없다. ⓒ최용우 20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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