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역자 : 토마스 아 켐피스/박문재  | 출판사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판매가 : 9,800원8,820원 (10.0%, 980↓)
*이 책의 특징1.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 제2권 신간. 기존에 있었던 영역본(박명곤 역)은 절판하였고, 라틴어 전문가 박문재 목사님께서 새롭게 번역한 라틴어 원전 완역본입니다.2.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더불어 경건문학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기독교 3대 고전’으로 꼽히는 책입니다.3. 『그리스도를 본받아』 전문가들의 , 설명 수록.4. 각 챕터가 짧은 분량으로, 매일매일 묵상하기에 알맞은 구성.5. 선택의 폭을 넓히는 e북 동시출간. “지난 600년 동안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전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문학의 걸작으로 이의 없이 받아들…[더보기▶]



그리스도를 본 받아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Di imitatione Christi)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역대 기독교 고전 중 가장 많이 읽히는 3권의 책(고백록, 천로역정, 그리스도를 본받아)중에 한 권이다. 이 책은 마틴 루터, 존 웨슬리, 존 뉴톤과 같은 영적 거장들의 회심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으며, 신 구교 구별 없이 모두에게 광범위하게 읽히는 책이다. 흔히 이 책이 얼마나 위대한 책인지를 묘사할 때,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1.기록연도 -1427년


이 책은 1427년 처음 나와 필사본만 전해지다가 1472년에 정식으로 출판되었고 1779년에는 1800종 이상의 판본과 역본이 있을 만큼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책이다. 한글 번역판은 인터넷 교보문고 검색으로 약 30여 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그 중에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의 기독교고전 시리이즈가 가장 많이 읽힌다.

 

2.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79-1471)

 

독일의 신비사상가, 1380년 켐펜에서 출생 1471년에 츠볼레 부근에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헤메르켄 또는 해메라인으로 ‘작은 해머’라는 뜻이다. 1395년 그는 공동생활 형제회에서 운영하는 데이번터의 학교에 갔다. 그는 필생(筆生)의 기술을 익혀 자립할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그의 형 요한이 그보다 앞서 들어가 원장의 지위에까지 올라가 있던 츠블레 부근의 성 아그네스산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수도회의 소수도원에 들어갔다. 토마스는 1413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429년에 부원장이 되었다.

 

이 수도원은 위트레 히트의 주교로 선출된 디플트의 루돌프를 교황이 배척한 결과로 한동안 혼란스러운 일을 겪었으나 토마스의 생활은 조용한 것으로 그는 예배와 저술과 필경활동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성서를 최소한 네 번은 필사했는데 그 사본 가운데 하나가 다름쉬타트에 다섯 권으로 엮어져 보존되어 있다. 그는 성서의 교훈에 박식했고 그의 저서들에는 성서의 인용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신약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풍부하게 나온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스위스로부터 스트라스부르와 쾰른을 거쳐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라인강변을 따라 흩어져 있던 신비주의자들의 계열에 속했다. 그는 공동생활 형제회의 창설자들인 게르트 그로우트와 플렌티우스 라데빈즈의 신봉자였다. 그의 저술들은 모두 기도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소책자와 명상록과 서신과 설교집과 커다란 역경을 겪으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꿋꿋하게 지킨 여인인 성 리데비기스(St. Lydewigis)의 생애와 그로우트와 라데빈즈와 그들의 아홉명의 동지의 전기를 포함하고 있다. 내용에 있어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흡사하고 같은 정신이 배어 있는 작품들은 구세주의 생애와 축복에 관한 장편의 명상록과 성육신에 관한 또 하나의 명상록이다. 이 작품들은 둘 다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로 넘쳐흐르고 있다.

 

서방 교회에서 그의 명성을 떨치게 했던 작품은 <Di imitatione Christi>이다. 이 작품은 14세기와 15세기의 독일과 네덜란드의 신비주의자들의 계열의 모든 저서 가운데 정화(精華)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과 번연의 <천로역정>과 더불어 성서 이후의 종교 입문서들 가운데 최고의 자리는 아니라도 제일선의 자리를 차지한다. 프로테스탄트교도들이나, 로마 가톨릭교도들이나 다 같이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이 책은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제목은 그 제1권의 표제 <Di imitatione Christi et contempt omnium vantitatummundi>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은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보격(補格)과 각운(脚韻)에 따라 쓰여졌다는 사실이 1874년 히르쉐(K. Hirsche)에 의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네 권이 모두 들어 있는 필사본은 없으며, 네 권이 항상 같은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작품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와 경건의 추구에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신앙입문서다. 그 내용은 논증적인 것이 아니라 진술적이며 그리스도의 체험에서 음조가 최고로 높아진다. 그것은 수도원과 은둔지에서 읽는 것을 전제로 하고 쓰였다. 이 작품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리스도 하나님과 즉각적인 교제의 가능성을 최고로 강조하는 점이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에 관한 논란의 여지가 많고, 현재 결정된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저작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많고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에 지지도가 높은 저작설만 간략하게 요약한다. 어느 정도 국민감정이 가미되어 이 책의 저자에 대한 300년에 걸친 논쟁이 시작되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저자가 네덜란드 사람이 아니라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다. 중론은 토마스 아 켐피스라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제르센이 저자라는 설이 있고, 제르송이 저자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토마스 아 켐피스가 저자로 지지하는 논증이 많다. 얀 부쉬는 토마스 아 켐피스가 죽은 지 7년 후인 1464년 쓴 그의 <Chronicon Windeshemense)에서 토마스가 <본받아>를 저술했다고 분명히 진술하고 있다. 이 진술은 <Chronicon>의 이른바 개스돈커 코덱스(Gaesdoncker Codex)에 이 진술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만 없다며 그 자체로 충분한 진술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내용요약

 

제1권 영적 생활을 위한 권면

 

그리스도를 본받음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에서 비롯된 본보기를 가급적이면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이면서도 내적인 삶을 찾아내고 세상사를 배제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자는 제1권에서 ‘영적인 삶을 위하여’라는 제목아래 25편의 글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적인 삶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기도와 말씀을 열심히 보고 예배 잘 참석하고 헌금을 많이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본 장에서 영적인 삶을 위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부분적으로 토마스의 수도원적 삶의 모습들을 간간이 엿볼 수 있다.

우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참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기쁨을 얻으려면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 경건하며 선하고 겸손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욕심 명성과 부귀영화를 탐하는 마음, 육체적인 정욕, 자만심 등을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하면 깊은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잡다한 인사나 헛된 교제, 경솔한 판단을 피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마음의 참된 평화는 영적인 생활을 하는 믿음의 깊은 사람에게만 있다고 한다. 비록 우리들의 생각이 건전하다고 해도, 하나님으로 인해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면, 본인에게는 오히려 매우 좋은 것이다. 신앙인의 영적 삶의 변화는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삶의 변화가 오늘날 있다면 그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오늘날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신앙 고백을 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처음 개심했을 때의 선함과 순결함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후반부에 저자는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정말로 슬기롭고 행복한 사람은 순간에 있어서의 자기의 삶과 똑 같은 삶을 평소에도 영위해 나가는 사람이다 라고 한다. 종말론을 부르짖는 광적 신도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결별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그릇된 신앙인의 모습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님을 토마스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대가 올바른 양심을 지니고 있다면, 죽음을 크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서 하나님을 향해 두도록 하라고 한다. 저자는 제1권에서 주로 크리스천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인간의 고통과 죽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하면서 영혼 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2권 내면 생활에 대한 권면

 

영적인 초보단계를 벗어나 외형적인 면이 아닌 내면적인 생활에 대해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내적인 감정들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때 우리 마음은 풍요해지고 만족을 얻는다. 영적인 내면 생활이 잘 정리되고 준비를 갖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이상하고 그릇된 방법들 때문에 걱정이나 휘말리지 않는다. 순결한 마음과 단순한 의도, 자신에 대한 명상, 선한 양심, 기쁨, 세상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원히 남는 것이다.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와 위로부터의 위로, 인간은 어떤 면에서 위로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토마스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 영성이 성장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선한 양심으로 이 세상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예수님과 내적인 친밀한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영적으로 순결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로부터 떠나갔다고 해서 금방 실망하지 말고 다만 겸손한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지극히 작은 축복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 참 신앙의 길이며 선하고 충실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용기를 가지고 주님의 십자가를 담대하게 지고 나아갈 때, 모든 것이 당신과 더불어 선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평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3권 내적 위로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와의 형식으로 기술된 이 권에서 그는 그가 원하는 내적인 위로와 성장에 대해 가장 많은 분량의 글을 단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외적인 사물에 대해 눈감아 버리고 영적인 것에 눈을 떠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세속의 것을 버리는 자는 복되며, 본능적 욕정을 버려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 하나님의 택한 자를 시험과 위로로 찾으신다. 그리고 악행을 훈계하며 교훈을 가르친다. 세상의 삶에서 시험은 불가피하다. 이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는 만나가 주어지고 게으른 자에게는 온갖 괴로움이 따를 것이다. 참된 평안은 이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구하는 것이고 사람이나 다른 것들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신용을 지키고 말을 조심하라. 세상에서 비난이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라.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노고가 따른다. 이 노고를 견디는 자만이 영생을 얻는다. 그저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만 전심을 다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라.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 의지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총으로 이끌어 주시며 평안의 길을 따라 영원히 빛나는 안식처에 인도해 주실 것이다.

 

제4권 성찬식을 위한 경건한 권면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찬식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며 부지런하고 열심히 이를 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신앙생활에서 성찬식이 지니는 의미와 이러한 의식이 생기게 된 역사적인 배경 및 그 유익함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해서 흘리신 피와 그 희생의 거룩한 뜻을 살피고 있다. 토마스는 성찬식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 나타나며 성찬을 자주 행함이 유익하다고 한다. 또한 성찬식이 신비가 크며, 따라서 그것을 집행하는 성직자가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또한 성찬식을 위하여 어떠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부지런히 양심을 돌아보아 진실한 회개와 겸손한 고백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슬퍼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재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며, 성찬을 경솔하게 받으면 안 된다. 그리고 거룩한 성찬식에 자주 참여함으로써 하늘에 속한 신비를 점점 더 많이 맛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자신의 영예를 구하는 무익한 호기심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분명하고 확고한 길을 겸손히 따라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높은 신비를 캐어내려고 애쓰는 동안 경건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호기심이 아니라 믿음과 경건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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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영적 생활을 위한 권면

 

제1장 그리스도를 본받음과 헛된 세상에 대해


주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리라(요 8:12)”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교화되기를 원하고 마음의 모든 무지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생활 방식을 본받으라고 이르신다. 또한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철저히 이해하길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삶을 영위할 때 그리스도의 생애를 닮아 가도록 노력하며, 오직 덕을 실천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오직 그분에 대한 사랑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가장 지혜로운 삶은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전 1:8)”라는 말씀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육욕적인 본성에 굴복하는 자들은 양심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제2장 겸손함에 대해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스스로 겸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서 기쁨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지식을 향한 모든 지나친 욕구를 버려라. 왜냐하면 그 안에는 수많은 혼란과 망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아무 소용없는 것들에만 몰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도리어 선한 생활은 마음을 기쁘게 하며, 순수한 양심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고 훌륭하다 해도, 그만큼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더욱더 가혹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롬 12:3)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만일 유익한 지식과 학문을 배우길 원한다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과 그들에게 존경받는 것을 피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성찰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고 유익한 교훈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 나약하다. 스스로를 누구보다도 가장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라.

 

제3장 진리의 가르침에 대해


모호한 표정과 무상한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민 12:8). 또한 영원한 말씀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자는 수많은 이론들로부터 해방된다.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는 만물이 하나이고 만물을 하나로 귀속시키며 또한, 만물을 하나로 본다. 이렇게 만물을 바라보는 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로울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합일되고 내적으로 단순한 사람일수록 별다른 어려움 없이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다. 순수하고 순박하며 변치 않는 영혼을 가진 자는 아무리 많은 일에 시달려도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더 큰 싸움을 겪는 자는 없다. 이에 겸허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그 어떤 학문을 연구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가는 확실한 길이다. 진실로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는 무슨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행했는가를 심문받을 테고, 얼마나 토론하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는가를 심문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자가 진정 위대하다. 자신을 낮추고, 세상의 명예를 탐하지 않는 자가 진정 위대하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현세의 모든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자가 진정 지혜롭다(빌 3:8). 또한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가장 박식하다.

 

제4장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온전한 사람들은 그들이 들은 모든 이야기를 쉽게 신뢰하지 않으며, 성급하게 행동하거나 자신의 견해만을 완강하게 고집하지 않는 것은 큰 지혜이다. 선한 생활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많은 일에 있어 박식하게 만든다. 마음속 깊이 더욱 겸손하고 하나님께 순종할수록 매사에 더욱 지혜롭고 더 큰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제5장 성경읽기에 대해


우리는 성경 안에서 명구를 찾기보다는 참된 진리를 찾아야만 한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그것이 기록되었던 바로 그 때의 정신으로 읽어야 한다. 성경을 고상하게 심오한 책으로 여기고, 경건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진실은 영원함이로다(시 117:2). 성경을 읽음으로써 유익을 얻으려면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충실히 읽어라.

 

제6장 무절제한 애정에 대해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결코 만족을 얻지 못한다. 화평함 속에 사는 사람들은 영혼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찮고 사소한 일에도 금방 미혹되고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마음의 진정한 평화는 격정의 노예가 됨으로써가 아니라 그에 맞섬으로써 찾을 수 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영적인 사람에게만 평화가 찾아온다.


제7장 헛된 희망과 교만을 피하는 것에 대해


인간이나 피조물을 의지하는 자는 어리석도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도와주시고(약 4:6) 교만한 자를 천하게 여기는 분이다. 만물을 주시고, 무엇보다도 자신까지 우리에게 내어 주신 하나님만을 자랑하라. 재능과 재주는 모두 하나님의 덕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만, 교만한 사람의 마음에는 시기와 분노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 하신즉(욥 8:20).


제8장 지나치게 친밀한 교제를 경계하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이나 낯선 사람들과는 너무 자유롭게 교제하지 말라. 겸손하고 순박한 사람들과 사귀며 경건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들과 교제하라. 그리고 신앙심을 기를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라. 이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부적절한 행동으로 불쾌감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9장 복종과 순종에 대해


복종하는 것, 즉 스스로 주인이 되지 않고 윗사람 밑에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권위를 행사하는 것보다 순종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면, 우리는 때때로 평화를 위해 우리 자신의 견해를 포기해야만 한다. 비록 자신의 생각이 훌륭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견해를 따른다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이다. 충고를 하는 것보다 충고를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안전하다(잠 12:15).

 

제10장 불필요한 말을 경계하는 것에 대해


되도록 모임을 피하라. 세속적인 일들을 논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좋은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 쉽게 미혹되고 휘말린다. 또한 말을 많이 함으로써 얻어지는 외적인 위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내적인 위로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 경건히 논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며, 특히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합일될 때 그러하다.


제11장 평화를 얻고 영적 진보를 열망하는 것에 대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무관심하면, 훨씬 더 많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단 한 가지의 결점도 극복하지 못하고 나날이 영적으로 성장하려는 열망 또한 없다. 그 결과 우리는 태만하고 만사에 열의가 없는 상태에 머무르고 만다. 우리가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크고 어려운 장벽은 자신의 격정과 육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성자들의 완전한 길을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만일 우리가 용감한 사람들처럼 자신과의 싸움에서 굳건히 서 있기를 애쓴다면, 분명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경험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처음 지녔던 열정의 일부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면 성취한 것으로 간주된다. 만일 우리가 처음에 스스로를 엄하게 대했다면, 그 후에는 모든 것을 기쁘게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모범적인 삶을 살아감으로 인해 얻게 될 많은 평화와 다른 사람들에게 주게 될 많은 기쁨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영적 성장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다.

 

제12장 역경의 이로움에 대해


우리는 재난과 역경을 견딤으로써 이익을 볼 때가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하찮게 여길 때 우리는 마음속 깊은 생각까지 헤아리며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선한 사람은 시험당하며 고뇌하고 괴로움을 겪을 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음을 더욱더 절실히 깨닫는다(요 15:5). 그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 한숨을 쉬고 신음하며 기도에 의지한다.

 

제13장 시험에 맞서는 법에 대해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재난과 시험은 피할 수 없다. 시험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겸허해지고 정화되며 단련된다.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결코 시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험에서 달아난다고 해서 시험을 이겨 낼 수는 없다. 그보다는 겸허하고 끈기 있게, 용기를 가지고 맞설 때 비로소 모든 적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험에 맞서기보다는 인내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대처하면 더 잘 이겨 낼 수 있다. 모든 악한 시험의 시작은 변덕스러운 마음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시험은 정의로운 사람을 판단한다. 시험은, 처음에는 그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 후 그것은 상상으로 꾸며져 매우 탐나는 것으로 보이게 되고 이어 강한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가치와 상황을 고려하고, 모든 일을 선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정의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당하는 동안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영적인 성장은 고난과 시험에 의해 좌우된다. 사소한 문제를 이겨 낸 이들은 큰 시험을 당했을 때 겸손해진다.


제14장 성급한 판단을 피하는 것에 대해


우리의 판단은 대부분 자신이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므로 그 판단은 진실성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개인적인 편견에 의핸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사고와 견해의 다양성은 종종 친구 간이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성직자들과 신자들 사이에서 다툼의 원인이 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순종하기를 바라며, 그럼으로써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신다.

 

제15장 사랑으로 행해지는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선행을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었는가를 헤아리신다. 그러므로 큰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더욱 큰 선행을 할 수 있다. 진실하고 완전한 사랑을 가진 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선행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지질 원한다. 진실로 자비로운 사람은 시기하지 않으며 어떠한 개인적 기쁨이나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하기를 원한다(고전 13:4).

 

제16장 서로의 결점을 참고 견디는 것에 대해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쳐 주실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라. 다른 사람들의 결점과 약점이 무엇이든 간에 참고 견뎌라. 다른 사람들 역시 그대의 결점들을 참고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올바르게 바꾸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고치려 하면 노여워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의 짐을 지는 법을 배우라고 명하셨다(갈 6:2).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덕을 지녔는가는 어려운 때에 가장 잘 드러난다. 어려움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게 한다.

 

제17장 수도원 생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평온하길 바란다면, 모든 일에서 자신의 뜻을 굽힐 줄 알아야 한다. 만약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영적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자신은 이 세상에 유배된 사람이고 순례자라고 생각하라. 진정한 신앙인은 생활 태도를 바꾸고 자신의 정욕을 철저히 억제하는 자이다.

 

제18장 성자들의 모범에 대해


거룩한 성자들의 훌륭한 행적을 연구하라. 그들의 참된 인격과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기억한다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달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며, 매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짧다고 여겼다. 그들은 세속에서는 가난했지만, 은총과 덕에서는 누구보다도 부유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가깝고도 친밀한 친구였다. 이렇게 많은 경건한 신앙인들의 본보기를 접한 그대들은 안에, 덕을 쌓아 가겠다는 열망이 잠들지 않기를 기도한다.

 

제19장 믿음이 깊은 신앙인의 수련에 대해


믿음이 깊은 신앙인의 생활은 덕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래야만 겉과 속이 동일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은 우리의 결심만큼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성장을 많이 이루려면 결심한 것을 부지런히 실행해 나가야 한다. 의인의 결심은 자신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한다. 따라서 의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의지한다. 또한 우리의 내적 사고와 외적 행동들을 잘 살피고 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우리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식욕을 억제하라. 그러면 육체의 모든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 절대 빈둥거리지 말라. 독서를 하든지, 글을 쓰든지, 기도를 하든지, 명상을 하든지, 공동체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라.
어떤 수련이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이 사람에게 효과가 있고, 또 어떤 것은 저 사람에게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남은 시간은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데 써야 ㅎ나다. 누가복음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복되도다. 그 주인은 모든 소유물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눅 12:37, 42).


제20장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홀로 깊은 명상을 하기에 적당한 시간을 따로 정해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자주 생각하도록 하라. 위대한 성자들은 가능한 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했는데, 그 이유는 침묵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야 할 말을 참는 것보다 아예 침묵하는 것이 더 쉽다. 이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안전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집에 머물러 있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선한 양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성자들은 마음의 안정을 누렸지만, 항상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사람들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큰 위험에 빠지기 쉽다.

만일 신앙생활 초기에 골방에 머무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그 방은 좋은 친구이자 큰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것이다. 경건한 신앙인은 말없이 고요하게 성경을 읽는 것으로 성장하고, 성경 안의 심오한 뜻을 깨닫는다. 이는 영혼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창조주와 더욱 친밀해진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로부터 떠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천사들과 함께 그대 가까이에 임할 것이다.
육체적인 쾌락은, 그 시작은 기분이 좋지만 결국에는 고통을 주어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다. 그대의 방에서 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거하라(마 6:6).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큰 평화는 어디에도 없다. 만일 우리가 방을 떠나지 않고, 또 잡담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평화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제21장 진정한 참회에 대해


영적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라(잠 19:23). 참회는 선한 것들을 향해 길을 열어 주지만, 방탕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파괴한다. 진정한 자유와 순수한 기쁨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 우리의 과실이다.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고 이 세상의 헛된 위로들을 완전히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은 언제나 슬퍼하고 눈물을 흘릴 만한 충분한 이유를 찾아낸다. 만일 오래 사는 것보다 죽음에 관해 더 자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삶을 더욱 열렬히 개선해야 한다. 하찮은 우리의 육신이 쉽게 고통에 휘말리는 것은 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상 겸손하게 기도하라.


제22장 인간의 불행을 성찰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다면, 어디에 있건 어느 곳으로 향하건 간에 불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가? 바로 하나님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 받는 자이다. 인간의 행복은 일시적으로 재물을 풍족하게 누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자체가 불행이다. 먹고 마시고, 자고 깨어 있고, 그 밖의 모든 본능에 따른 행위는 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신앙인들에게는 커다란 불행과 슬픔의 근원이다. 내면의 충실한 사람은 육체적인 욕구를 멀리한다. 하나님의 성자들과 그리스도의 모든 충실한 친구들은, 육체를 즐겁게 하는 것과 이 세상에서 번성하고 영화를 누리는 것을 비웃었다. 우리는 불행이 사라지고 죽음이 삶을 소멸시킬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다려야 한다(고후 5:4).
우리의 의지는 너무도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항상 겸손하고 절대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개심자가 되어 선한 신앙인의 행동 원리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더 큰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

 

제23장 죽음을 명상하는 것에 대해


하루하루를 오늘 죽음을 피하는 것보다 죄를 피하는 것이 더 쉽다. 또한 불행하게도 오래 살수록 우리의 죄는 더 늘어나기 쉽다. 죽는 것이 두렵다면, 오래 사는 것이 더 두려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죽음을 준비하라(눅 21:36). 죽음의 날에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사람은 지혜롭고 축복받은 자이다.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일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친구들이나 이웃들에게 의존하지 말라.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는데도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는 것은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죽음에 임하여 확신을 가지려면 회개함으로 육신을 복종시켜라. 죽을 때 누가 그대를 기억할 것이며, 누가 기도해 주겠는가? 그러므로 나의 친구여,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라. 시간이 있을 때 자신을 위해 영원한 부를 축적하라(눅 12:33). 오로지 구원에 관해 생각하고,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쏟으라. 죽은 후에 그대의 영혼이 기쁘게 하나님께로 합일될 수 있도록 나아가라.

 

제24장 심판과 죄인들의 징벌에 대해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이 세운 목표를 잘 이행하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대에 서게 됨을 기억하라(롬 14:10). 심판을 대비하라. 그날이 오면 자신을 위해 변명해 줄 변호인도 없이 스스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인내를 실천하는 사람은 살아 있을 때도 유익한 정죄를 경험하게 된다. 자신에 대해 관대할수록, 육체에 굴복할수록 나중에 받을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모든 죄는 반드시 그에 따른 죄값을 치르기 마련이다. 교만한 자들은 치욕과 굴욕으로 채워질 것이고, 인색한 자들은 온갖 종류의 궁핍에 시달릴 것이다.

현재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겸손하게 복종하는 사람은 심판의 날,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일어설 것이다. 심판의 날에는 금욕 생활을 한 사람이, 마음껏 즐기며 살아온 사람보다 더 많이 기뻐할 것이다. 심판의 날이 오면 선하고 순수한 양심이 이제껏 철학을 배워 왔던 것보다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 부를 경멸하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보물보다 더 가치 있다. 만일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죽음이나 징벌 혹은 심판이나 지옥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하나님께 향하는 길을 확실하게 열어 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결코 오래 살 수 없다. 모든 것이 너무도 빨리 사라지고, 순식간에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들 것이다(딤전 6:9).

 

제25장 열정적으로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부지런하고 완전히 깨어 있으라(계 3:2). 또한 선행을 행하는 데 충실하고 열심히 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의를 다하여 아낌없이 보상해 주실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두지 말고, 어떤 선한 일을 시작하려 하거나 끝낼 때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뜻이 어디에 있는 분간하기 위해 노력하라.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넘기 힘든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데 매우 유용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치중하는데서 과감히 멀어지는 것과 자신이 특히 필요로 하는 덕목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영적인 성장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활용하고, 만일 선한 본보기를 보거나 듣는다면 그것을 모방하는데 열중하라. 자신이 맡은 책임을 등한시 여기고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일들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에게 해가 될 뿐이다. 가장 성스러운 삶과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해 경건하게 묵상하는 신앙인은 자신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할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신앙인은 자신에게 명해진 모든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딘다.

사람이 어떤 피조물에게서 더 이상 위로를 구할 필요가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며, 그때 그는 하나님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으며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만족할 것이다. 열의가 없어지기 시작하면 영적으로 병이 든다. 그러나 만일 더욱 더 열정적이 된다면 크나큰 평화를 얻을 것이고, 우리의 노고는 가벼워질 것이다. 자신을 항상 경계하고 훈계하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자신을 엄하게 다스릴수록 영적인 성장을 더 빨리 이룰 수 있다.

 

제2권 내적인 삶을 위한 조언

 

제1장 내적인 삶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리고 이 비참한 세상을 버린다면(욜 2:12), 너희 영혼은 안식을 찾을 것이다(마 11:29).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안으로부터 비롯되고, 그곳에 그분의 기쁨이 깃들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적인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주 임하시고, 그와 더불어 온화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며 친절하게 위로해 주시고, 깊은 평화를 주시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친밀감을 주신다. 때때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해도 사람들은 너무 미약하고 결국 죽을 목숨이니 그들을 너무 쉽게 믿지 말라.
만일 숭고한 천국에 대해 묵상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평안함을 찾고, 그분의 거룩한 상처 속에 기쁘게 거하라. 세상을 등지고 그리스도의 상처를 항상 염두에 두고 생활한다면, 고난의 시기에 그대는 크게 위로 받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길 원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겪어라. 예수님과 진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참다운 내적 기도교인이고, 혼란스런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자유로이 하나님께 향할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 자신을 극복하고 하나님 안에서 즐겁게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만물을, 남들이 말하거나 생각하는 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은 진정 지혜로운 자이다. 그것은 그가 사람의 제자가 아닌 하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성품이 좋고 내적으로 질서가 잡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이상하고 특이한 행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외부의 모든 위로로부터 등을 돌린다면 우리는 천국을 바라볼 수 있고,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제2장 겸손한 복종에 대해


선한 양심을 지니면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로 선택한 사람은 어떤 악의에도 해를 당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고 겸손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 불쾌하게 만든 사람들과 화해하고 그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보호해 주시며 그를 사랑하시고 위로해 주신다(고후 7:6).


제3장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은 대단한 학식이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다. 선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꾼다. 완전한 평화 속에 거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악도 의심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과 겸손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분노한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이 있다(롬 12:18). 고통을 견디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은 가장 큰 평화를 누릴 것이다. 또 그런 사람은 자신을 지배하는 자이고, 세상의 주인이며 그리스도의 친구이자, 천국의 상속자이다.


제4장 단순한 목적과 순수한 마음에 대해


우리에게는 자신을 들어 올려 세상과 멀어질 수 있는 두 개의 날개가 있으니, 단순함과 순수함이라는 날개이다. 우리의 의도에는 단순함이 있어야 하고, 우리의 감정에는 순수함이 있어야 한다. 단순함은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고, 순수함은 하나님을 이해하고 참뜻을 알게 한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정의롭다면,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의 삶의 거울이고, 성스러운 지침서가 될 것이다.

순수한 마음은 천국과 지옥 모두를 꿰뚫는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외부의 것들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향하는 사람은 나태함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제5장 자기 성찰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는 자신을 너무 많이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은총이나 이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총명함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만 방심하면 곧 잃어버리고 만다. 내적인 사람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긴다. 그런 사람은 부지런히 자신을 돌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를 얻고 하나님과 완전한 하나가 되려면, 우리는 만사를 제쳐 두고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세상 만물을 경멸한다. 영원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신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위안이자, 우리 마음의 진정한 기쁨이시다.


제6장 선한 양심의 기쁨에 대해


선한 사람의 영광은 자신의 선한 양심을 입증 받는데 있다(고후 1:12). 선한 양심을 가졌다면, 마음은 언제나 즐거울 것이다. 선한 양심은 수많은 고난을 견딜 수 있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큰 위안을 얻고 기쁨이 넘쳐 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환난 가운데서 영광을 돌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는 주의 십자가로 영광을 삼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의 영광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양심에서 비롯된다. 선한 사람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는 진리를 알기에 기뻐한다.
양심이 순수한 사람은 쉽게 마음의 평화와 만족을 찾는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은 겸손한 영혼의 징표이다. 피조물에서 비롯되는 모든 위안을 거부하는 태도는 선한 마음과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믿음에 대한 징표이다. 내적인 사람은 안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외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는다.


제7장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버릴지라도 그분만은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고 보호해 주신다. 또한 삶과 죽음 앞에서 주님께 단단히 매달려야 한다. 그분의 변함없는 사람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포기할 때 그분만은 우리를 도와주신다. 만약 예수님을 찾지 않는다면, 온 세상과 모든 원수들이 우리를 적대하는 것보다 더 큰 해를 입는다.

 

제8장 예수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


예수님과 함께 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고 아무런 힘도 들지 않지만,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나시면 모든 일이 어렵게 된다. 이는 예수님 이외의 다른 것을 열망하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은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과 다름없으며 그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은 대단한 재주를 지닌 것이며, 그분과 계속 친구로 남아 있는 법을 아는 사람은 위대한 지혜를 지닌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제일가는 친구가 아니면 우리는 진정으로 슬프고 외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만을 가장 소중한 친구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 모든 일을 하는데 힘을 얻지만, 은총이 떠나면 약해지고, 중벌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고통스러워 진다. 그러나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견뎌야 한다.

 

제9장 위로가 부족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동안 사람의 위로를 멀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위로는 우리 영혼의 기쁨과 평화, 안식을 주는 성령의 선물이다. 반대말을 ‘비참함’이다). 신의 은총에 따라 사는 사람은 진정으로 순탄한 길을 달리고, 어떤 장애도 느끼지 못한다. 전능하신 분이 도와주시고, 최고의 인도자가 이끌어 주시는데 무엇이 문제겠는가!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위해서는 가깝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진실로 사랑하고 부지런히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인간의 위로를 구하지 않고, 어떠한 감각적인 즐거움도 구하지 않는다. 대신에 가혹한 고난을 선호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된 노역을 행한다. 하나님의 위로가 떠나면 바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위로가 다시 임하기를, 인내를 갖고 겸손히 기다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위로를 주신다. 아무리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때때로 은총이 사라지거나 경건함이 줄어들곤 한다. 아무리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명성이 높은 성자라도 시험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험에는 반드시 위로가 따른다는 징표이다. 시험을 잘 견디는 자만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제10장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것에 대해


영적인 위로는 모든 세속적인 기쁨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능가한다. 이 세상의 즐거움은 가치 없고 추하지만, 영적인 즐거움은 기쁘고 고귀하다. 영혼의 즐거움은 덕행에서 비롯되고, 하나님에 의해 순수한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의 거짓된 자유와 자만심은 천국으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은총의 선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과 그 은총이 사라지는 고통으로 인해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어떠한 선행도 감히 내세우지 않으며, 스스로 얼마나 부족하고 미약한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어떠한 은총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처벌과 고통을 주신다면, 그것들 역시 감사히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시든지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해서 누리길 원한다면, 은총이 주어질 때 감사하고 은총이 사라질 때 인내하고, 은총이 되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은총이 되돌아오면 그것을 다시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늘 겸손해야 한다.

 

제11장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에 대해


오늘날 예수님의 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적다. 그런 면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고통과 불행이 와도 큰 위로를 받는 순간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찬양한다. 언제나 위로만을 구하는 사람들은 장사꾼보다 나을 게 전혀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부유하고 강하며 더 큰 자유를 누리는 자는 없다.


제12장 십자가의 왕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십자가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즐거움이 있고, 마음을 강하게 하는 힘이 있으며 영혼의 기쁨이 있으며 덕의 절정이 있고 충만한 거룩함이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영혼의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신성한 길과 우리가 항상 자신을 부인하는 것 외에는 영원한 생명과 내적인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없다. 하나님은 역경 속에서 우리가 보다 겸손해지는 법을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기꺼이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면, 마침내 그 십자가가 우리를 지고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끌어 준다.

영적인 삶에 더 높이 도달할수록 더 무거운 십자가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받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항상 무언가를 싫어하고 피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열정과 사랑으로 끌어안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총이시다. 믿음의 갑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한, 그대의 원수인 악마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해를 받아야 할 것인가를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16).”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변함없이 섬기기를 원한다면, 끊임없이 고통을 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진보하기 위하여 더 많은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욱 기쁨을 드리는 일은 없으며,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일이다.
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당신을 따르기를 원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심사숙고한 후 다음 말씀을 결론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행 14:22).”

 

제3권 내적 위로에 대하여


제1장 신실한 영혼에게 그리스도가 잠잠히 하시는 말씀에 대해


내적인 실체를 발견하고, 매일 기도와 수양으로 천국의 비밀을 깨달으려 노력하는 자와 온전히 주께 복종하고,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는 복이 됩니다. 우리가 온전히 외부 세계를 향한 욕정을 완전히 차단해야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세상 모든 만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주를 믿고 주가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을 바친다면, 비로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제2장 소음 없는 진리의 말씀에 대해


선지자들은 주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말씀에 담긴 정신까지는 전달할 수 없다. 그들의 말은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언정 가슴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 선지자들이 주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말씀에 담긴 의미를 풀 수 있는 이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선지자들이 주의 기적을 널리 선포하고 다니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아는 이는 바로 주님뿐이다. 주님이 씨를 뿌리시고(고전 3:7), 선지자들은 그 씨앗에 물을 주며, 선지자들은 말로써 외치고, 주님은 깨달음을 주신다.

 

제3장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들음에 대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말을 더 열심히 들으려 한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보다는 자신의 육신에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반면 주님이 사람들에게 주는 약속은 고귀하고 영원한 것인데도 여전히 그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또한 너무 게으른 나머지 영원히 변치 않을 선을 위해, 그리고 모든 상급을 넘어서는 최고의 상을 위해, 가장 고귀한 영광과 존귀한 가치를 위해서는 미약한 노력이나마 기울일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선택할 자들을 찾는 방법은 첫째, 시험으로써, 둘째, 위안으로 삼으신다. 그리고 매일 되새겨야할 교훈 두 가지는 첫째, 하나님이 사람들의 잘못을 꾸짖는 것이고, 둘째, 사람들이 덕을 쌓을 수 있도록 복돋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를 마음에 새기지 않는 자는 마지막 날에 심판하신다((요 12:48).

 

제4장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감에 대해


우리가 이룩한 모든 일 중 그 어느 것도 위대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느 것도 중요하다거나, 탁월하다거나, 특별하다거나, 귀하다거나, 최고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 모든 일 중에서 우리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원한 진리뿐이며, 그 외의 모든 가치 없는 일들은 우리를 괴롭히기만 할 뿐이다. 마음을 깨우치고 정화시켜 항상 영원한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의 본능에 치우쳐 행했던 일을 진심으로 뉘우친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진리의 성령(마 10:20)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이다. 진리의 성령은 속세를 경멸하고, 밤이나 낮이나 천국을 갈망하라고 말씀하신다.

 

제5장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사랑은 정말로 위대하다. 사랑은 내 멍에를 가볍게 하며(마 11:30) 울퉁불퉁한 것도 고르고 매끈하게 만든다. 예수의 사랑은 아주 고귀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위대한 일을 온전히 성취할 수 있도록 강권하신다. 세상에 사랑보다 달콤하고, 사랑보다 강하며, 사랑보다 고상하고, 사랑보다 달콤하고, 사랑보다 좋은 것은 없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요일 4:7),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고귀하다. 하나님을 향한 강렬한 기도는 타오르는 사랑을 갈구하는 영혼의 목소리로 “나의 하나님, 나의 사랑이시여, 주는 나의 모든 것이 되시며 나는 주의 전부입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높이 날며 즐거워하며, 온전한 자유를 얻었으므로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모든 것을 소유한다. 사랑은 정직하고 헌신적이며 기쁨으로 충만한 감정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강하고, 신의가 있고 신중한 것이며, 오랜 고통을 감내할 줄 알고 용감하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5).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 불릴 자격이 없다.

 

제6장 진실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의 증거에 대해


지혜롭게 사랑하는 자라면, 사랑하는 이가 주는 선물보다는 그 사람이 베푸는 사랑을 더 크게 여길 줄 안다. 그 선물의 값어치보다는 주는 이의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리하여 그 선물은 아래에 두고, 베푸는 이의 사랑을 훨씬 귀하게 대한다.

 

옛적부터 대적해온 마귀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우리가 선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신앙의 헌신을 다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즉, 성자를 공경하고, 죄악을 뉘우치며, 스스로 마음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덕을 수양하기 위해 목표를 정하는 일 등을 방해한다. 또한 겸손히 죄를 고백하는 사람을 멸시하고, 사력을 다해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마귀가 우리를 속이고 유혹할 때 진정한 군사답게 싸우고, 때로 연약하여 쓰러질지라도 주의 은총을 바라고, 더 큰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어리석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 의존하거 교만에 빠진다면 멸망만이 기다릴 뿐이기에,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늘 겸손하여야 한다.


제7장 은총과 겸손에 대해


은총을 받아 즐거운 마음이 들거든, 그 은총이 없었다면 자신이 얼마나 가련한 처지일지를 생각해야 한다. 영적인 삶이란 위로의 은총이 넘칠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겸손할 수 있고 인내를 가지고 자기를 부인할 수 있으며 은총 없이 살아갈 수 있을 때, 기도를 게을리 하는 일 없이 온몸을 바치는 수행 활동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참을성을 잃고 쉽게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길이란 자신의 선택에 달리 것이 아니다(렘 10:23).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한,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파멸에 이르기 쉽다. 그러니 언제나 지혜로운 선인의 안내를 잘 따라야 한다. 또한 스스로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마음을 정연히 절제할 수 있다면, 쉽게 위험에 처하는 일은 없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안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을 때 과연 그 불이 언제 꺼질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지에 따라 행한 일이 늘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그런 시험을 당하는 것이 더 유익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자비로운 마음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또한 늘 순수하고 진실하게 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지, 그리고 진실로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을 때보다 오히려 멸시와 비난을 받을 때 더 기쁘다고 느끼는지에 의한 것이다.

 

제8장 자신을 낮춤에 대해


티끌과도 같은 제가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창 18:27). 제가 하찮다 여기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모든 교만을 버리고 티끌만큼 자신을 낮춘다면, 진실로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은총이 저를 끝까지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오직 주님만 따르고, 주님만을 사랑할 때 주님과 제 자신을 찾을 수 있음을 압니다. 그런 사랑만이 저를 온전히 비울 수 있습니다.

 

제9장 만물의 최종 목적을 하나님께 맡김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최고의 선으로부터 만물이 시작되었음을 명심하며, 그 모든 원천이 나임을 잊지 말라.”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돌리고 사람은 아무런 존재도 아님을 명심하라.“ 헛된 영광이 결국 종말을 맞는 것은 참된 진리이며,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하신 자가 없으며(눅 18:19),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만물 위에 계셔서 찬양과 축복을 받을 분임을 알아야 한다.

 

제10장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에 대해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 이미 제게 오셨고, 제가 주님을 떠나 방황할 때도 제게 오셔서 주를 섬길 수 있게 하십니다. 주를 섬기는 일이 제게 힘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께서 사랑하시는 많은 종 가운데서 저처럼 하찮은 자를 받아 주시는 주의 사랑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가진 것이 주의 것이며(대상 29:14), 제가 그것들을 지니고 있는 이유도 주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가 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저를 섬기고 계십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주님의 은혜에 합당한 봉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봉사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좋은 선이므로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이 되니 주께 봉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제11장 마음의 욕망을 반성하고 억누름에 대해


아무리 선한 의도의 욕심이나 열의라고 해도 스스로 자중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제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박하게 되므로, 결국 마음만 상하고 그 일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때로는 육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억지로 자신의 감정에 반대되는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일에 굴복하는 자세를 배울 때까지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복종하게 되면(고전 9:27), 작고 간단한 일에도 만족할 줄 알게 되어 더 이상은 육체적으로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일 없게 된다.


제12장 인내를 얻고 색욕을 극복함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처한 고난으로 인해 불행하더라도 네 마음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미래의 징벌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주님을 위해 현재의 불행은 인내로써 참고 견뎌야 하느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도 결국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존재이다(시 68:2).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이 어떤 영화를 누렸는지도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너는 천박한 욕망을 좇지 말며 그 탐욕을 삼가라. 오직 내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좋은 습관은 육체적으로는 불편할 수도 있으나 열의로서 잠재울 수 있고, 옛뱀, 곧 마귀(계 12:9)가 유혹할 것이지만 기도로써 물리칠 수 있으며, 정신을 유익한 일에 집중시키다 보면 마귀의 접근도 막을 수 있다.


제13장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겸손히 순종함에 대해


우리의 육신을 통제하고 싶거든, 먼저 상급자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 마음의 갈등으로 인해 지치는 일이 없어야 외부의 적을 이길 수 있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필요 이상의 애착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의지를 따르지 못한다. 주님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굴복하려면 자신이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고, 자만심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를 살려 두는 이유는 너로 하여금 내 사랑을 느끼고, 나의 은총에 감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너는 진심으로 겸손하고 복종하며, 다른 사람이 너를 멸시하더라도 인내로써 참고 견딜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14장 하나님의 은밀한 심판을 염려하고 우리의 선한 행동으로 인해 교만하지 않음에 대해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자만에 무너지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칭찬에 눈이 멀어 하나님 안에서 간직했던 소망을 저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입 밖으로 칭찬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들은 스쳐 지나가면서 하는 말에 불과하지만 주님의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시 117:2).

 

제15장 우리가 바라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법에 대해


우리 마음속에 어떤 소원이 생겨나거든, 우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그 소원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여, 주께서는 제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모든 일을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주님이 원하시는 시기에 행하소서. 주님이 영광을 가장 잘 드러내도록 하소서. 저로 하여금 주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소망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제16장 오직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는 참된 위안에 대해


만일 온갖 만물을 다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는 없다. 기쁨과 행복은 오직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하고 믿음이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음이 정결하고,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빌 3:20)이므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오직 참 질 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평화가 진정한 복이다.

 

제17장 모든 염려들을 하나님께 맡김에 대해


주께서 제게 쏟으시는 관심은 제가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관심보다도 훨씬 큽니다. 하지만 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지 않은 사람은(벧전 5:7) 혼자 힘으로 일어서려다가 뒷걸음질만 칠 것입니다.

 

제18장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현세의 고난들을 인내함에 대해


예수님 : 내 아들아,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함이니라(요 3:17). 너희가 당할 고난을 내가 대신한 것은 나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니 너희도 불평 없이 인생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인내를 배울지어다.

제자 : 주여, 주님은 살아 계시는 동안 주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모든 고통을 인내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참혹한 죄인에 불과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고 견디신 것처럼 저도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주님께서 거룩한 인내심으로 우리의 면류관이 되시는 주님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제19장 상처를 견디는 진정한 인내의 증거임에 대해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할수록 행동은 지혜로워지며 받게 될 은총도 커진다. 고통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충분하면 훨씬 쉽게 견뎌 낼 수 있다. 자신이 용납하는 한도 내에서만 고통을 참고, 자기가 선택한 사람만 수용하는 인내는 진정한 의미의 인내가 아니다. 진정으로 인내하는 사람은 고통을 가하는 사람이 누구든 개의치 않는다. 만약 승리하고 싶거든 싸울 준비를 해야 하며, 싸우지 않으면 인내의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딤후 2:5). 싸움을 거부하는 하는 것은 면류관까지 거부하는 것이다. 면류관을 얻고 싶다면, 용감하게 맞서 싸워 인내로써 쟁취해야 한다.

 

제20장 우리의 나약함과 현세의 불행들을 인정함에 대해


주여, 주께서 제 나약함을 고백합니다. 제 허물을 자백합니다(시 32:5). 제 연약함과 비참함을 돌아보소서. 주께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저를 긍휼히 여기사 수렁에서 건지소서. 제가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시 69:14). 온전히 세상을 경멸하고 하나님만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주신 신성하고도 달콤한 약속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이 어떤 식으로 자기를 속이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21장 우리가 다른 어떤 재능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에 대해


제자 : 내 영혼아, 너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의지하라.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한 안식처이며, 주님만이 전적으로 온전하시고, 지극히 다정하시며 온전한 위로를 주십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한 마음이 일어 눈물 흘리게 하고, 괴롭히며 우울하게 만들고,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런 생각이 저를 낙담하게 만들고, 유혹하여 더 이상 주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방해할 뿐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여혼의 축복도 누릴 수 없게 만듭니다. 제가 이 땅에서 겪는 수많은 고통과 마음의 탄식이 주께 전해져 저를 따뜻이 치유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께서 주님의 은총을 제게 보내실 때까지, 그리고 제 안에서 제게 말을 하시는 그날까지, 저는 쉬지 않고 기도할 것입니다. 지혜의 아버지이신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제 입술과 제 영혼과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22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많은 은혜를 기억함에 대해


제자 : 저로 하여금 주님의 뜻을 깨닫도록 은총을 내리시고(엡 5:17),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와 특별히 제게만 주신 은혜를 모두 기억하게 하시어, 주께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 받은 은총을 스스로의 덕으로 돌리지 않고,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 주신 분께 감사드리는 사람이야말로 훨씬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는 스스로 가난하고 비천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낙심하거나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심을 믿고, 더 큰 기쁨이자 위안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람은 많은 사람 중에 가장 미약하여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제23장 위대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네 가지 일에 대해


첫째, 항상 네 자신의 뜻보다는 다른 이의 뜻에 따라 행하려고 애쓰는 것.

둘째,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적게 갖는 쪽을 택하는 것(마 10:10).

셋째, 늘 맨 끝자리를 찾아 앉으며(눅 14:10), 모든 이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

넷째, 늘 우리 안에 주 하나님의 뜻이 충만하기를 소망하고 기도하는 것인데, 이 말을 모두 따른다면 평화와 휴식을 얻을 것입니다.


제24장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않음에 대해


쓸데없는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지며, 우리 할 일은 오직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요 21:22). 주님은 모든 일에 대해 다 알고 계시기에 모든 일에 대한 것은 주님께 맡기며, 우리 자신을 위해 조용히 침묵하는 유익입니다. 힘 있는 자들, 혹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려 애쓰지 말고, 친구들과의 긴밀한 교제에도 너무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만남은 우리 마음속의 불빛을 어둡게 하고 어지럽히기 때문입니다.

 

제25장 확실한 평화와 영적 성장을 어디에서 찾을지에 대해


늘 자기 일에 충실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조심해야하며, 일을 할 때는 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오로지 주를 기쁘게 하는 일만 추구하며 주 외에 다른 일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며 우리 일이 아니면 간섭하지 말아할 것은, 그렇게 하면 근심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영적인 성장이라 함은, 우리 온 마음을 다해 신성한 의지로써 자신을 바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균형을 유지하고, 시험에 들거나 번성할 때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또한 훗날 마음이 평온치 못할 경우를 대비해 굳고 강건한 소망을 가짐으로써 큰 시험을 견뎌 낼 준비를 해야 한다. 올바르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걸을 때에만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보게 될 것이며, 온전히 자기 자신을 멸시할 수 있어야 이 세상에서 풍성한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26장 풍부한 독서보다 겸손한 기도로 얻어지는 자유로운 마음의 훌륭함에 대해


제자 : 저로 하여금 이 세상을 향한 염려를 벗어던지게 하소서. 그 안에 갇혀 있는 제 모습을 깨닫게 하소서. 제 육체가 빠지기 쉬운 수많은 욕망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영혼의 성장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로부터 저를 구하소서. 혹시라도 제가 영원한 것을 사랑하는 기쁨을 버리고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거든 그 맛을 쓴맛으로 바꾸소서. 단지 쾌락을 위해 필요 이상의 물질을 추구하는 행위는 하늘의 규율로써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럴 경우 인간의 육신은 정신을 거역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주님의 손으로 저를 이끌어 절대로 필요 이상을 추구하는 일이 없도록 가르치소서.

 

제27장 최고의 선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이기심에 대해


만일 우리 사랑이 깨끗하고 단순하여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될 것을 탐내지 말고, 또한 내면의 자유를 앗아갈 것과 방해가 될 것은 소유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물질을 탐하거나 혹은 이런저런 장소에 거하길 원한다면-이 모두가 우리 자신의 흥미와 안위를 위한 것이다-결코 안식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근심에서 헤어날 수도 없다. 소유욕이란 돈이나 재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명예욕과 남의 칭찬을 바라는 헛된 바람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이 세상과 함께 사라질 것들입니다(요일 2:17).

 

제28장 독설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나쁜 판단이 있다면 수용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우리 내면의 삶이 나아갈 길을 묵묵히 따른다면, 한낱 세간에 떠도는 말에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자신의 평화를 맡기지 말고, 그들의 간섭이 옳든 그르든 우리는 그대로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추려 애쓰지 않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큰 평화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괴로움은 무질서한 사랑과 헛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제29장 역경이 닥칠 때 하나님을 부르고 찬양하는 법에 대해


제자 : 사방에서 고통이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저를 구하소서. 이 사간에 제가 이런 모욕을 당함은 주께서 저를 구원하심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시험고통과 환난)을 주실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주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루어지리다. 폭풍이 지나면 따뜻한 햇빛이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어려운 일이 생길수록 그 시험을 거두는 일은 더 쉬워집니다.

 

제30장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고 은총의 회복을 확신함에 대해


하늘이 우리에게 내린 평안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기도에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희망을 주는 이가 주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것은 유혹이고, 무서움에 떨게 만드는 것은 헛된 두려움일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할 때 주님이 가장 가까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 승리가 곧 임박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일시적으로 우리를 시험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은총을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하지 말라고 하심은 하늘의 왕국에 이르는 길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그것이 우리에게 더 좋은 길이며 다른 믿는 자들에게도 좋은 길이기에 의심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현실을 똑바로 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어떠한 불행이 닥치더라도 낙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즐거워하고 주님께 감사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를 한번 스쳐 지나갈 쾌락을 좇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며, 온갖 어려운 싸움에 대적하라시며, 그러므로 영예를 구하지 말고 다른 이의 멸시를 받는데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제31장 모든 피조물을 무시하고 조물주를 찾음에 대해


모든 만물과 연결된 고리를 끊지 않는 이상, 우리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신성한 것을 좇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자기 몸을 헌신하면서 영적인 삶을 추구하거나, 세상의 썩어 없어질 물질에서 온전히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세상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되면, 온전히 하나님과 일체가 되므로 모든 지식과 소유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그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봅니다. 그러므로 전자의 경우는 잘못 판단할 경우가 많지만, 후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적이 없습니다.


제32장 자기 부인과 모든 욕망의 자제에 대해


모든 것을 버리면 그만큼을 찾을 수 있다. 네 모든 욕망을 버리면 휴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향한 애착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만 따른다면, 주님께 아주 큰 기쁨이 될 것이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기쁨과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구하는 것은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지혜야말로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지극히 값진 진주(마 13:16)인 것입니다.


제33장 변덕스런 마음과 하나님께 모든 것 맡김에 대해


지혜로우면서 영생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아무리 변하거나 바람이 요동을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할 일과 원하는 소망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또한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도 늘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주님께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을 정결히 하고 주님을 향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많은 풍파를 겪더라도 마음은 더욱 안정을 찾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중심을 정확히 한곳에 집중하며, 주위의 환경이 변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34장 사랑하는 이들의 유일한 기쁨인 하나님에 대해


세속적으로 지혜로운 자는 오직 자기의 기쁨만을 좇을 뿐, 주님의 지혜가 주는 즐거움은 알지 못합니다. 세상의 길이란 완전히 어리석은 것이어서 결국 죽음으로 이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을 멸시하고, 그 육신의 욕망을 억누름으로써 진정한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며 혹시라도 피조물에서 선한 것을 찾게 되더라도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을 돌립니다.

 

제35장 현세의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 대해


성도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절대 안전하지 않아서 살아 있는 동안은 반드시 영혼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데, 적은 지금 성도가 있는 곳을 에워싼 채 사방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6:7). 인내의 방패로(시 91:4)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으면 이내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기다리며 담대히 행동하고 용기를 가져야하며(시 27:14), 용기를 잃지 말며 실망하지 말아야합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던지면, 결국 주님이 넘치도록 되돌려 줄 것이며, 환난 때에 함께 할 것입니다(시 91:15).

 

제36장 인간의 헛된 판단에 대해


양심이 순수하고 경건하다고 확신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런 고초를 겪음은 결국 스스로에게 유익하며 거룩한 것이다. 마음이 겸손하고 주를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을 믿는 사람에 비해 그런 고초를 견디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며, 하나님만이 모든 잘못과 치욕에서 구해주시며, 행한 대로 갚아 줄 수 있습니다(롬 2:6).

 

제37장 완전한 자기 포기가 주는 충만한 마음의 자유에 대해


아무 조건 없이 포기하고 주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결코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행복하고 즐거운 일체감을 맛볼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버리고 자신을 포기한다면, 더 큰 내면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죽여야만 주님과 함께 영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제38장 위험한 때에 하나님께 의지함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내면에서 우러난 것이어야 하며, 책임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모든 일에 있어서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자 책임자입니다. 자기가 행한 행동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스쳐 지나가 버릴 것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을 하늘에 단단히 잡아맨다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피조물을 어지러이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에, 영혼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합니다.


제39장 일상의 일들에 지나치게 마음 졸이지 말 것에 대해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의 영혼은 성숙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 자가 진정 크나큰 안정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마 26:41).

 

제40장 인간은 스스로 자랑할 것과 선한 것이 없음에 대해


허영이야말로 가장 나쁜 병입니다. 쓸데없는 자만심은 하늘의 은총을 앗아가고 참된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인간적인 칭찬에 연연하는 한, 그 사람은 진정한 덕을 쌓을 수 없습니다. 참된 영광과 신성한 즐거움은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리고 자신을 뽐내지 않는 가운데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영광이나 한 순간의 영예, 세상의 박수갈채는 자신의 영원한 영광과 비교할 때 그저 어리석기만 할 뿐입니다.

 

제41장 현세의 모든 영광을 경멸함에 대해


스스로 예비하고, 모든 사람의 멸시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완전한 무로 바라보게 된다면, 내면의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영적으로 깨어나 주님과의 온전한 합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제42장 평화의 근본이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음에 대해


자신의 내면에 선한 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이 다가올 기회를 막는 것이기에 성령의 은총을 위해서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벧전 5:5). 만일 자신을 온전한 무로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고, 만물을 향한 애착까지도 끊을 수 있다면, 그때는 마음에 은총이 내릴 것입니다.


제43장 무익하고 세속적인 지식에 대해


학식이 높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책을 읽지 말라. 그보다 악한 마음을 없애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애쓸 것인데, 이것이 갖가지 난해한 문제의 답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다양한 주제의 지식을 얻게 될지라도, 결국은 가장 근본이 되는 원칙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그것은 인간에게 지식을 주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며, 우둔한 자를 깨닫게 하시는 이 또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시 119:130). 하나님의 말을 경청하는 자는 금방 지혜롭게 되고, 그 영혼은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책에 나타난 것은 단 한 가지 교훈뿐이지만,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그 책에 담긴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요, 인간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제44장 외적인 일들에 마음을 쓰는 것을 피함에 대해


만일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하나님의 심판을 존중한다면, 다른 사람이 이기고 승리하더라도 훨씬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외적인 일에 자신을 온전히 바친 사람은, 그 마음을 재빨리 되돌리지 못해 세상의 복잡한 일 속으로 갇히게 됩니다.


제45장 신용과 실언에 대해


친구가 시험에 처했을 때 믿음으로 그를 지켜 주는 친구는 많지 않습니다. 주님만이 모든 일에 가장 신실하신 친구입니다. 주님 외엔 아무도 믿을 수 없는데, 이는 주님이 바로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요 14:6). 주님은 누구를 속이지도 않으시며 아무에게도 속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은 다 거짓되고(롬 3:4) 악하고 한결같지 못하며, 특히 말을 잘 바꿉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늘의 은총을 간직하고 있다면, 밖으로 드러나는 외양에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의 칭송을 받으려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신앙에 헌신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제46장 사람들이 비판할 때 하나님께 의지함에 대해


낮아지지 못하고 잘못에 대한 비난을 거부한다면, 이는 아직도 겸손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 대해 죽지 못하고, 세상도 성도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것입니다(갈 6:14). 세상이 내세우는 증거는 때로 남을 속일 수 있지만, 예수님이 내리시는 판단은 늘 옳습니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자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잠 12:21),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절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부당한 말이 들리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칭찬 한마디에 바보처럼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제47장 영생을 얻기 위해 역경을 인내함에 대해

힘들고 지칠 때, 혹은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할 때, 주님의 위로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시험이 끝나고 수고와 고통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모든 일에 전념하고, 포도밭에서 성실히 일하면 상을 받을 것입니다(마 20:4, 7).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쯤은 견뎌야 하며 그보다 더 큰 갈등이 생기더라도 견뎌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느냐 잃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도 힘든 고초를 겪어내어 기쁨과 위안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히 10:32).

 

제48장 영원한 날과 현세의 역경들에 대해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죄를 범하고, 열정이 끓어 넘치며 두려움에 낙담하고, 늘 걱정에 쌓여 있고, 주변 사람의 호기심 때문에 피곤해하고, 갖가지 어리석은 일에 마주치고,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할 일이 많아서 늘 지치고, 시험도 많이 당하며 쾌락을 추구하다가 힘이 빠지고, 가난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이 모든 악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음은, 참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처럼 하늘을 사랑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늘의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현제의 역경도 차단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49장 영생의 소망과 위대한 축복은 구하는 자들에게 약속되었음에 대해

기도할 때는 유익하고 즐거운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로지 영광을 돌리고 자신이 받아들일 기도를 해야 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하나님의 종은, 얼마나 스스로를 부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완고한 의지를 얼마나 굽힐 수 있는지 시험하는 기회로 만듭니다. 자신의 뜻에 거슬리는 일들을 보는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죽여야 할 때처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더불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버리면, 하늘에서는 늘 충만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기쁨과 영광을 따르는 일에 기뻐하며, 죽든지 살든지 항상 자신 안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아야 합니다(빌 1:20).


제50장 고독한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함에 대해


주님을 사랑함으로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 일은 바로, 주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수치스러움이 자신의 얼굴을 덮고(시 69:7),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위안을 구하는 것이 잘된 일 일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좋게 여긴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심으로 그런 것이겠습니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에게 말하는 것이고, 아첨꾼이 아첨꾼을 칭찬하는 것이며, 장님이 장님에게 길 안내를 하는 것과 같고, 약한 자가 약한 자를 돕는 것처럼 위안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함이 이에서 위로가 되시는 것입니다.


제51장 큰일을 맡을 수 없을 때 작은 일을 수행함에 대해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때로 낮은 일로 밀려날 때가 있으며, 하기 싫은 일이라도 참고 견뎌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외적으로 비천한 일에 집중한다면, 영혼을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나이다(롬 8:18).


제52장 인간은 위로가 아니라 징계를 받아 마땅함에 대해


인간은 주님의 위안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영혼의 은총을 받기에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자격이 없습니다. 바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된 회개하는 겸손은 용서를 받으며, 그 영혼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다시 뵐 수 있습니다.

 

제53장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내리지 않음에 대해


죄인인 사람이 만일 주님의 은총을 원한다면, 먼저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가로막는 요인을 없애야 합니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회개함으로써 정결한 양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진정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고자 한다면, 우선 모든 친구들을 포기하고,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그 관계를 모두 끊고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자기 애착에 사로잡히는 데서부터 모든 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제54장 인간의 본성과 은총 입은 자들의 행동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한 것을 바라고, 모든 말이나 행동에서 선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우리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선에 속아 넘어 갑니다. 인간의 본성은 교활합니다. 즉, 인간의 본성은 늘 자신이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속이게 된다. 반면 은총은 오직 한 마음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어서 모든 악한 것을 삼가 합니다(살전 5:22). 그 누구도 속이는 법이 없으며 주님을 위한 일을 최종 목표로 삼고, 순수하고 정갈하게 행합니다. 본성은 수치와 멸시받는 것을 꺼립니다. 하지만 은총은 예수의 이름으로 비난받는 일을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본성을 억제하고 극복할수록 그 영혼에는 더 많은 은총이 깃들어 내면의 삶에 더욱 헌신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변화합니다(골 3:10).

 

제55장 인간 본성의 타락과 하나님의 은총의 효력에 대해


하나님께서 애초에 선하고 정의롭게 창조하셨던 본성은 이제 부패하고 연약한 것으로 낙인찍혔습니다. 그 이유는 본성 자체가 악하고 비천한 것을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완전해지는지 알고 있으며, 또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알고 있으나 그들 안에 쌓인 부패의 무게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은총은 힘이요, 조언과 도움이 되십니다. 진리이자, 훈련을 담당하는 스승이시며 심령의 빛이 되고, 환난 중의 위안이 되시며 슬플 때의 피난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제56장 자기를 희생하고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음에 대해


자신 스스로를 포기하는 만큼 주님께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외적인 것에서 아무것도 소원하지 않는다면 내면에 평화가 생겨날 것이며, 그로써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내적인 합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합일을 이루는 것은 주님을 좇는 것인데(마 9:9), 주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요 14:6). 만일 주님과 함께 왕 노릇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종들만이 축복의 길과 진리의 불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57장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의기소침해지지 말라는 것에 대해

시험이 닥치면 기분 좋게 견뎌 낼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인내를 가지고 버텨야 합니다. 만일 그 시험을 견뎌 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거나, 혹은 분노가 치솟거든 자신을 잘 다스리고, 자신 입으로 온당치 못한 말을 뱉는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그러면 흥분했던 감정이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은총이 마음속 슬픔을 달콤한 느낌으로 바꿔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애통해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 구원합니다. 그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입니다.


제58장 하나님의 은밀한 심판과 숭고한 문제들을 따지지 않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밀한 심판이나 숭고한 주제에 관해 논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유를 설명하고 토론을 벌인다 해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내리는 심판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의 판단으로는 그 정의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롬 11:33).

또한 옛 성자가 어떤 은총을 받았는지 나서서 조사하지 말고 토론하지 말며, 하늘에서 누가 더 거룩하며 누가 더 위대한지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질문은 대답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사람은 이 성자에 대해 부풀려 얘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저 성자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다 보면, 그 가운데 교만과 허영이 자라나 결국 시기와 분열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자신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겸손히 낮출 때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주는 깨우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무지해서 어떻게 해야 서로 온전한 영혼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자들은 남의 비밀을 캐내려는 쓸데없는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며, 겸손히 온 마음을 바치는 눈물의 기도로써 도움을 구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헛된 토론을 삼간다면, 성자들처럼 만족하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59장 모든 희망과 신뢰를 하나님께 의지함에 대해


하늘 아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이 없다는 것. 그럼으로 주님께서만이 위안(위로)이 되시며 모든 일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지만, 주님께서는 행복과 구원을 구하시며 모든 일을 선하게 이루십니다. 모든 희망과 신뢰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은 모든 선하신 것의 종착점이시며, 삶의 지극히 높은 정점이요, 깊은 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구하는 크나큰 위안이 있다면, 오직 주님 안에서만 거하는 것입니다.

 

제4권 성찬식을 위한 경건한 권면


제1장 그리스도를 숭배함에 대해


거룩한 성찬식에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신 당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경박함도 없고 호기심도 없으며 감정적 쾌락도 추구하지 않으니 오직 독실한 믿음과 경건한 소망,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랑이신 주님만이 계십니다. 이 성찬은 주님을 향한 경건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며, 주님을 향한 사랑의 불꽃을 태웁니다. 또한 주님께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기로 맹세한 신실한 자들도 이 지극히 귀한 성찬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은총을 받습니다. 영혼의 은총이 되는 이 성찬을 통해 그 영혼은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으며, 죄로 인해 일그러졌던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열심히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냉담하게 무시한다면 후회와 슬픔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2장 성찬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선함에 대해


주님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하시길 바라셨고, 주님의 축제에 초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의 음식과 천사의 떡을 주셨으며,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 즉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살아 있는 떡(요 6:33, 51)을 주고자 하십니다. 성도가 성찬에 동참하는 일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생물 중에 성도를 택하셔서 성찬식을 거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축복의 성찬에 참여할 준비를 하며, 여기에 담긴 신비스러운 구원의 성찬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찬 예배를 드릴 때나 혹은 성찬식에 동참할 때는 스스로 성찬을 위대하고 새로운 위로로 여겨야 합니다.

 

제3장 성찬을 자주 행함으로써 받는 유익함에 대해


주님과 함께 거룩한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마음에 기쁨입니다. 주님은 성도의 영혼의 감미로운 휴식이시기에, 누구든지 주님을 받아먹는 자는 영원한 영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낙심하고 죄를 저지르며 또 게으르기 때문에 자주 기도하고 고백하고 헌신하며 주님의 거룩한 몸을 받아먹음으로써 새로워지고 깨끗해지며 자신의 영혼에 불을 지펴야 합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어려서부터 악으로 치닫기 쉬운 것이어서(창 8:21) 그 신성한 약을 받아먹지 않으면, 그 즉시 더 큰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떠나 죽을 몸으로 나그네처럼 살지언정(고후 5:6),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영접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영혼이 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신실한 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위안입니다.

 

제4장 경건하게 성찬을 행하는 자들에게 많은 은혜가 내림에 대해


지극히 고귀한 성찬식은 몸과 영혼을 구원하는 상징이며, 또한 병든 모든 영혼의 치료제입니다. 성찬식을 통해 악한 마음을 치유하고 모든 열정을 제어하게 됩니다. 성찬은 시험을 이기게 하며 마음에 더 큰 은총을 부어 주고, 그 덕을 자라게 하며 소망과 믿음을 강하게 하며 사랑에 불을 붙이고 자라게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찬을 받는 이들은 주님이 사랑하는 자들이며, 성찬을 통해 그들에게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시고, 많은 시험 가운데서도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니 주님의 보호 아래 모든 소망이 더욱 커져 갑니다. 그러므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제5장 성찬과 그 사제의 위엄에 대해


오직 교회에서 정식으로 임명된 사제에게만 성찬 예배를 집전하고 성체를 봉헌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역자입니다. 그러므로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덕목을 갖춰야 하며 선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딛 2:7). 성복을 입은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것과 같아서 그 자신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히 5:3)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간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가 입는 사제복은 십자가를 상징하며, 그 곁에 그리스도가 항상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제복의 등에 십자가를 새긴 것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새긴다는 의미입니다.


제6장 성찬을 위한 준비에 대해


성찬을 받으면서 유익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의 도움으로 성찬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7장 양심의 성찰과 개심의 목적에 대해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사제는 그 마음속에 겸손과 온유와 공경하는 마음과 충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찬 예배에 임하고 성찬식을 거행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의 깊게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고, 최대한 마음을 깨끗이 정화함으로써 진정한 참회와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그 속에 슬픔이 사라지고 주님께로 가는 길에 장애가 없습니다. 모든 죄를 뉘우치되, 특히 매일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탄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성찬 예배와 성찬을 통해 당신의 몸을 내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정결하고 온전한 상태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보다 더한 속죄의 제사가 없습니다.

 

제8장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와 자신의 포기에 대해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쳐 십자가에 당신의 손을 못 박고, 몸을 벌거벗었습니다. 주님 안에 속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희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과 같이 기꺼이 자신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이는 은총을 받고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눅 14:33).”

 

제9장 자신과 소유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헌납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함에 대해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대상 29:11). 비록 매우 적고 온전치 못할지라도 모든 선한 행동을 주께 바친다면, 이를 더욱 온전케 하시고 성스럽게 하여 주의 기쁨으로 열납되리라 생각합니다. 성도들은 그 삶속에서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자신의 삶이 주님께 바쳐진다고 생각합니다.

 

제10장 성찬을 경솔히 빠뜨림에 대해


만일 열정과 오랜 습관을 치유하고 싶거든, 그래서 마귀의 유혹에 맞서 보다 강하고 보다 빈틈없이 대비하려거든, 먼저 모든 선하심과 정결함의 원천이 되는 은총과 신성한 자비에 의존해야 합니다. 원수는 성찬에 내재된 크나큰 열매와 치유 능력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음이 충만한 자들로 하여금 성찬에 참예치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를 멸시하고 조롱하되 아무리 마귀가 마음을 휘저어놓을지라도 절대 성찬만큼은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자신들이 신앙적으로 충분히 헌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에서, 혹은 죄를 고백하기가 두려운 나머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자가 정당한 이유로 인해 성찬에 참예하지 못하더라도, 선한 의지와 경건한 소망을 잃지 않는다면, 성찬이 주는 열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의 영혼은 언제 어느 때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제11장 성체와 성경이 신자에게 특히 필요함에 대해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보다 필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없으면 삶은 비천할 뿐이며 참고 살아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몸이라고 하는 감옥 안에 갇혀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양식과 빛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신성한 살을 내어주셨으며, 발의 등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시 119:105). 두 가지가 없으면 제대로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등불이시며, 성찬은 생명의 떡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새끼 양이 아닌 주님 자신의 살과 피로 직접 성찬을 준비하셨으며, 주님의 신성한 만찬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휴식을 주십니다.

 

제12장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함에 대해


사랑하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면, 자기 집에서 가장 훌륭하고 아름다운 방을 준비함으로써 그 친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 때문에 경외심과 사랑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이 은총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다해 준비하며 사랑하는 주님을 집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성찬을 받기 전에 성의를 다해 준비하는 것 외에, 성찬을 받고 난 후 그 은총을 보존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이는 방에서 조용히 혼자 남아 세상이 자신에게서 하나님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교류해야 합니다.

 

제13장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갈망함에 대해


성도는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고, 모든 물질을 향하던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성찬을 받고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영원한 하늘의 구원을 배워야 합니다. 영혼이 온전히 하나님께 속할 때 자신안의 모든 것이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14장 성체를 받고자 하는 경건한 자들의 열망에 대해


선하시고 다정하신 예수님, 가련한 거지와도 같은 제가 자비를 베푸시고 은총을 내려 주셔서 제가 성찬을 받을 때 주님을 향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을 향한 믿음이 강해지게, 주님의 선하심 속에서 소망이 자라게, 하늘의 만나를 맛볼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제15장 경건의 은총은 겸손함과 자기 부인으로 얻어짐에 대해


만일 주께서 간구하는 즉시 은총을 주신다면, 나양한 인간은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의 은총은 소망과 인내로 참고 견뎌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은총을 주시지 않거나 어느 순간 그 은총이 사라져 버렸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며 지은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도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더 이상 자신의 의지나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로지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16장 우리가 필요한 것을 그리스도 앞에 보이고 은총을 구하는 것에 대해


주님께서는 성도가 가장 필요한 선이 무엇인지, 또 그 덕을 실천하기에 얼마나 부족한지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함께 계시기를 바라고, 주님과 하나가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의 불꽃과 내면의 은총으로 자신은 녹아 없어지고, 주님과 한 영으로 합할 수 있습니다(고전 6:17).

 

제17장 열렬한 사랑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해


축복받은 선지자이자, 지극히 훌륭한 성자 세례 요한처럼 자신이 그와 같이 크고 거룩한 소망으로 불타올라 온 마음을 다해 주님과 함께 하기를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매일, 매시간 주님께 감사함으로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주님의 귀한 성찬에 참예하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온전한 신앙심으로 임하게 하시고, 주님의 은총과 자비를 맛보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제18장 믿음으로 성스러운 신앙을 따름에 대해


마귀는 믿지 않는 자나 죄인들만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는 믿음이 충만하고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유혹하고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품지 말고 단순한 생각으로 믿음에 충실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단순한 자에게 임하십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둔한 자에게 비추어 깨닫게 하시며(시 119:130) 저들의 마음을 여십니다(눅 24:45). 지극히 거룩하고 특별한 성찬에 임할 때는 믿음과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책의 요약을 마치면서 시원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한듯하여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면서 부분적으로 인상 깊은 말씀은 삶의 실천으로 실천되어야 함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과연 삶을 통해서 스스로가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있는 점을 발견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부끄러움이 아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까지 찾아내지 못한 부분의 아쉬움을 남기면서 마칩니다. 그러나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본받을 점을 찾아낸다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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