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김남준목사책 ›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김남준)을 읽다

최용우 | 2019.04.27 10:54:3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판매가 : 12,000원10,800원 (10.0%, 1,200↓)
품격 있는 그리스도인의 조건은 권력이나 예의나 명성이 아닙니다.그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의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때, 세상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생각합니다.그리스도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계획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상기시키며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감으로 위대한 존재의 울림을 들려줄 것을 촉구하는 책신자의 현존(現存)이야말로 최고의 선포(宣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더보기▶]



김남준 목사님의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햇볕같은이야기 6288-6341호까지 한편씩 나눈 글입니다. -최용우
----
1.택하신 족속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족속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벧전2:9) 그리스도인이 사명을 따라 살지 않는 이유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복음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다면, 신자는 결코 목 없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이 자신의 뜻대로 될 때에는 하나님 없이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해야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회복되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히10:38-39)


2.택하신 족속

‘택하신 족속’이라는 말은 ‘선택받은 족속’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족속’이라고 불릴 수 있을 독특하고 고유한 표지가 있을까요?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조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아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독특한 표징이 있습니까?


3.당시 그리스도인에 대한 인상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르포스는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하던 시기에 사도들의 뒤를 이어 교회를 보살핀 인물입니다. 소위 속사도 교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룬 <폴리카르포스의 순교>라는 책에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평가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족속들이다.”


4.그리스도인의 구별, 존재적 특성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사상의 체계는 기독교의 특징입니다.(행28:22), 따라서 참된 기독교 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는 현저히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우리가 어떻게 구별된 존재인지를 삶으로써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보다 참 행복을 누리며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5.보다 중요한 것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눅8:1) 그때 높은 지위를 가진 부자들만 예수님께 마음을 열었습니까? 아니면 낮고 천한 신분의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파고들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기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하는 것은 먹고 사는 양태나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일 뿐,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인 소외와 고통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6.신자의 존재와 선포의 사명

세상을 향한 신자의 진리 선포는 언어의 선포와 존재의 선포로 이루어집니다. 진리를 말로써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선포, 회개와 믿음을 촉구하는 선포는 항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행20:21)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이 복음을 듣지 못하였기에 믿을 수 없고, 믿지 못하기에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백할 수 없기에 구원받지 못하고 있습니다.(롬10:14-15)


7.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그리스도인은 세상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었는데, 어떻게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라 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신앙이 참된 것이라면 말입니다. 삶의 방식은 그가 믿는 사상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참다운 삶의 방식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상을 이 세상을 향해 입증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리 사상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는 우리의 삶을 목격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8.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의 울림은 사랑과 깊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이 그 시대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갔던 것은 그들에게 그 시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불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의 구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는 구별입니다.


9.왕 같은 제사장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과의 관계망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고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매일 부딪치는 현실적인 삶에 필요한 지혜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근원적인 고민에 대한 답을 기초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10.루터의 발견

마르틴 루터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구절에서 종교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게 했던 중요한 교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만인 제사장’ 교리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가톨릭교회의 사제들만이 제사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받은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 되었다는 교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11.제사장 나라의 은유

칼빈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표현이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장의 나라’라는 표현입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지니라.”(출19:6) 칼빈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삼아 주실 것이라고 하신 이 약속은 구속의 역사를 따라 영적인 이스라엘인 신약의 교회에도 계승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12.하나님의 특별한 민족적 선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한 민족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겔20:5)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받은 민족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신약의 교회는 바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이러한 사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의 특별한 사명의 계승에 참여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행13:17)


13.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기셨습니다.(겔38:16) 이것은 구약시대에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제사장의 주요 직무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고, 이로써 죄로 말미암아 불결해진 인간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레4:3) 이와 동일한 원리로 이스라엘은 이 세상의 모든 나라를 하나님과 만나게 해주는 제사장의 나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출19:6) 신약시대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이방인들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빌3:10)


14.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족속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족속이라는 것입니다.(신4:3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민족에게는 주시지 않은 남다른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사2:3, 미4:2) 구속사적으로 신약의 교회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의 사명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탁월성을 삶으로 입증해 보여 주어야 합니다.(행22:14)


15.신약의 왕같은 제사장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와 하나님 사이에 제사장 나라가 되었듯이, 영적인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되었습니다.(마18:18)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의 성도들은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구원받지 못한 나라와 민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여야 합니다.(마5:44) 자신들에게 주신 많은 하늘의 신령한 자원과 이 땅의 자원들을 사용하여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일에 헌신하여야 합니다.


16.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왕이심

하나님은 만물위에 뛰어난 통치주이십니다.(고전15:24)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스리시는 통치주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우주적 통치를 완성할 도구인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십니다.(엡1:22) 왕국은 왕을 중심으로 모든 질서들이 세워진 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백성들이라면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왕이 가지고 있는 선한 통치 이념이 나라 구석구석에까지 실현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7.교회, 하나님을 위한 봉사 공동체

교회는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의 공동체입니다.(엡3:10) 교회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가 그분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복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지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18.신자를 통해 세상을 구원받게 하심

하나님께서는 신자를 통해 이 세상이 구원받게 하십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기도 합니다.(눅19:10, 행1:8, 롬1:14)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에 홀로 감당하시기에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실 때 신자들이 함께 참여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사적인 지위를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19.신자의 탁월한 지위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롬8:16-17)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탁월한 신분을 부여받고 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경륜의 성취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천사도 살펴보기를 흠모할만한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모든 삶을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경륜은 너무 위대해 보여서, 실제 우리의 아주 사소한 삶과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벧전1:12)


20.승리의 확신

우리는 종종 이 세상에서 커다란 시련을 당하기도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현실은 삼킬 듯이 밀려오는 쓰나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 저항하며 사는 것이 마치 거친 파도 앞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소용없는 일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항상 진리가 이기고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 세상에서 댜우받는다면 이미 완전한 구원이 실현된 것 아닙니까? 진리의 가치는 진리를 따라 사는데 있습니다. 진리의 깃발은 주임을 경외하는 자들을 통해서 펄럭입니다.(시60:4)


21.거룩한 나라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살 때 가졌던 자기의 가치관과 인생관에 단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고백만을 추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고백은 우리의 인생과 삶에 대한 견해를 흔들고 행복에 관한 생각을 바꾸어 놓는 전 존재적인 고백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번영주의를 부르짖는 교회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는 교회일수록 그 안에 신자들은 오히려 헝클어진 삶을 삽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식과 사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2.신자의 정체

신자의 정체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거룩한 나라’라고 번역된 부분은 헬라어 ‘에드노스 하기온’을 옮긴 것입니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대개 ‘거룩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헬라인은 헬라인대로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각각 에드노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안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이방인들을 모두 ‘타 에드네’라고 불렀습니다.


23.거룩함의 의미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거룩한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거룩한 종족들’ 혹은 ‘거룩한 나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언급되는 ‘거룩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거룩한 나라’라는 표현에 담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룩함’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그것을 크게 ①구별됨 ②하나님의 성품 두 개의 범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4.하나님께 바쳐진 구별

거룩함은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룩함은 거룩하지 않은 것들과 나뉘어져 분리된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루고”(마4:5) 여기에서 ‘거룩한’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히브리어 동치어는 ‘카도쉬’인데, 이는 ‘구별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이미 하나님게 바쳐졌기 때문에, 바쳐지지 않은 것들과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5.하나님과의 관계

거룩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시기에 그분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인간도 거룩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막6:20)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덕 입음으로써 그러합니다.


26.거룩하심에 대한 인식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의 성품을 배워갑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하나님의 속성과 속성의 시행 방식을 사람들과의 관계망 안에서 알아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 지식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결정적으로 좌우합니다.(빌3:8,골2:3)


27.하나님의 인정

그리스도의 교회의 영광은 이 세상의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칭송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관심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정이어야 합니다.(계2:3)


28.거룩한 나라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의 찬란한 빛입니다.(시119:105) 둘째로 자기 성찰입니다.(고전1:12) 셋째로 마음을 쏟는 기도입니다.(눅21:36) 넷째로 의로운 삶의 용기입니다.(요16:33)


29.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은혜 없이 메마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허울뿐인 것이 되고 삶이 신앙고백과 불일치하게 되는 일이 우리 인생에서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영적 자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를 패배한 삶으로 데려갑니다.(잠16:18)


30.하나님의 보물

최근에 국내의 한 대기업이 전시를 목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33케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약 100억원에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다이아몬드를 구입한 사람이 그것을 호두를 깨드리는데 사용하겠다고 한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8:32)


31.‘그의 소유’의 의미

‘그의 소유가 된 백성’(레26:12)에서 ‘백성’에 해당하는 단어는 ‘세굴라’인데 ‘사갈’이라는 동사의 수동 분사 여성형으로서 ‘소유’ ‘값진 재산’ ‘특별한 보물’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에게 보물과 같은 존재이며, 그렇게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이 현실 세계에서 이 세상의 불완전함과 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귀히 여기심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에는 그 모든 방해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안에서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32.보물 같은 백성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보물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야 합니다. 그리고 좋으신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한 섭리를 믿는 신앙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33.교회의 아름다움

신자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소중한 보물이기에 그들이 모인 교회는 아름답습니다. 교회가 아름답기에 거기에 접붙여진 신자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현실적인 영향력은 결국 그 안에 모인 신자들의 거룩함의 총화입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의 아름다움의 총화이고, 그들의 아름다움의 원천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편지의 수신자들을 향해 ‘너희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한 개인이 아니라 영적으로 연합된 모든 교회를 가리킵니다.


34.교만과 열등감 사이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가치 없는 우리에게 넘치는 호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고전1:4, 빌1:11) 그래서 삼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교회의 신랑 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우리 자신 안에 어떤 가치가 있기에 주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신자는 신앙의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아야합니다. 비록 이 세상이 알아주는 사회적인 지위나 재산이 없을 지라도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롬9:25, 히8:10, 벧전2:10)


35.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것처럼 위를 바라보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살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구원받은 신자의 삶에 대해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자신을 향해 이미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찾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입니까?


36.여러분은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상처와 시련 속에 살았던 시인은 말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버릴 지라도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상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드셔서 당신 앞에 보석과 같은 존재로 여겨 주셨을 때, 우리는 이 모든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을 당하고 고난을 겪을 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바위에 숨기시고 그 손으로 덮어 주셨습니다.(시27:5)


37.빛 가운데 행하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찾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이 아닌 곳에서 기쁨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이 변질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따금씩 우리는 세상에 있는 것들 때문에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을 섭리로써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일을 우리가 원하는 질서대로 돌아가게 하실 때, 형통한 상황 자체를 즐거워하는 대신에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전2:26, 시63:11)


38.구원의 은혜에 어울리는 삶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받았습니다.(엡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선물을 위해 무한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아들을 십자가 형벌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단지 죄를 대속하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 안에서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 연합 안에서 우리는 사랑과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인생 가운데 누릴 수 있는 최고로 값진 선물일 뿐만 아니라(엡2:8)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자랑이요 기쁨입니다.(갈6:14)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구원의 감격을 현재적으로 유지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롬14:8) 왜냐하면 신자의 모든 거룩한 생활의 동기가 십자가를 통해 입증된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박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롬5:8)


39.잠자던 교회를 깨워

교회는 단지 건물이나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나 조직이나 프로그램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의해 거룩한 운영의 성패가 좌우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참으로 교회가 되게 하고, 신자를 참으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이것을 저는 ‘스피릿웨어’(spiritware) 라고 부릅니다. 잠자던 교회를 깨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죽은 자와 방불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세계에 속한 것들입니다.(요3:6,행28:26, 고전2:11)


40.구원에 관한 치우친 견해

오늘날 구원에 관한 치우친 견해는 신자로 하여금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개인적인 측면만을 구원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구의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구원의 공동체성에 관한 성도들의 이해를 삼켜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너무나 개인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계획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계를 완성하시는 경륜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의 구원과 번영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복음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41.우리에게 행하신 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도입되었고, 최종적인 완성도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그 최종적 완성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통치를 이 땅에 실현하심에 당신의 자녀들을 참여하게 하셨습니다.(고후1:7,벧전4:13,5:1)
신자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의미를 알고 감사함으로 이 일에 참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신 사명을 따라 순종하는 신자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셔서 이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행13:43,20:32참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 가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42.어둠에서 불러냄

사도는 우리가 어두운 데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임을 지적합니다.(벧전2:9) 우리는 한때 어둠이었습니다.(엡5:8) 우리는 이런 정신적이고 영적인 어둠을 운명처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우리를 그 어둠에서 불러내 주셨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으로 영원한 빛을 받게 하셨고, 우리를 빛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요12:46)


43.지성적 어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지성적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
우리는 이제 믿을 수 없었던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이성으로는 알 수 없었던 초월적인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함께 생겼습니다.(요2:22)


44.영적 어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적 어둠에서 불러내 주셨습니다. 영적인 어둠과 지성적인 어둠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영적인 어둠은 지성적인 어둠보다 본질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적인 어둠에서 불어내어 아들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주셨습니다.(골1:13) 그래서 우리의 지성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45.도덕적 어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덕적 어둠에서 불러내 주셨습니다. 도덕적인 어두움 역시 영적인 어둠, 지성적 어둠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도덕적인 어둠은 영적인 어둠과 지성적인 어둠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윤리적인 어둠입니다.
영적인 어둠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게 합니다.(시10:4) 그리하여 자신을 주인 삼으며 살고 싶어 하게 합니다. 여기서 도덕 생활의 부패가가 초래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어둠의 행실들을 일삼게 됩니다.(시10:4) 그러나 이 말이 곧 유신론자들이 무신론자들보다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46.빛으로 들어가게 함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신 것은 빛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빛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의미합니다.(요1:9) 그 빛은 진리의 빛이며, 지성적이요, 영적인 어둠 그리고 도덕적 어둠과 대조되는 빛입니다. 그 빛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신자의 마음 안에 도입됩니다.


47.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부자유함과 영혼의 속박은 실제적으로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리는 단지 한 번 깨닫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적으로 그 능력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리함으로써 신자는 현재적으로 그 모든 죄와 사슬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을 향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롬7:6, 히12:1)


48.그 빛 가운데 거하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 빛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엡5:8) 그러나 우리 안에는 날마다 계속해서 지성적 어둠이 물러가는 기쁨, 신령한 빛 안에서 사는 즐거움, 도덕적으로 단정한 삶으로 나아가는 성화(성화)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고후7:1)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을 인하여 감사의 찬송을 드릴 수 있고, 그 구원의 계획을 따라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직 받지 못한 것은 이미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49.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라

구원받은 신자의 삶은 하나님의 덕(덕)을 선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50.덕이란 무엇인가

덕은 ‘아레테’인데 아레테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통해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하나님이심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과 맺으시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덕입니다.
칼빈은 ‘덕’은 ‘하나님의 영광이 밖으로 빛나게 하는 지혜, 선함, 권능, 공의’를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속성들은 세계에 작용하는 탁월함이며, 이로써 그분의 창조와 구원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그 구원 계획의 성취는 인류에게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속성들을 덕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51.불러야 할 찬송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하나님의 덕을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위대한 지혜와 하나님의 선함, 권능과 공의를 찬송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입술로 부르는 찬송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 존재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찬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사명은 구속사적으로 신약의 교회에 계승됩니다.
우리의 존재와 삶 자체가 울림이 되어 하나님의 덕들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살전1:8)


52.공동체가 해야 할 일

하나님의 덕을 선포해야 할 사명은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지는 첫걸음은 한 사람의 신자가 순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울림을 동반하는 선포는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삶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존재적 선포는 이러한 개인의 영향력의 총화이기 때문입니다.


53.존재의 울림으로 선포하라

오늘날에도 번역을 가르치는 복음은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숙고해 보면 그 번역의 개념이 시대마다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자의 행복은 번영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신자로서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사명을 따르는 믿음으로 사는 일과 사명의 가치를 알고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막8:34) 사실 신앙의 진수는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영혼과 정신의 힘에 있습니다.


54.인생의 목표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에 고정해야 합니다. 거룩한 목표를 위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명으로 불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분투하는 삶에는 고난과 희생, 아픔과 좌절, 수고와 눈물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삶으로써 세상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덕들의 열매를 볼 것입니다.(행5:41) 미천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김남준 (열린교회 목사)

first.jpg

첨부 [1]

댓글 쓰기

목록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