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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토론을 한다면 끝이 없을 정도의 많은 이야기 거리나 성경적 지식을 신자라면 누구나 한마디씩은 내어 놓을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찻습니다. 그중에서 에수님께서 요 4:47 에서 믿음에 관해 예수님이 나타내신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실로 크다는 것을 발견 할수 있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때 에수님의 소문을 들은 왕의 신하가 급한 마음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고 책망하시고 그 신하의 집으로 가지 아니 하시고 말씀만으로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 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믿고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나앗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나앗을 때를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때 나앗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의 신하 이야기와 로마 백부장의 이야기는 결과는 똑같이 나음을 입었지만 믿음에 대해서는 한사람은 책망을 듣고 한사람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서로 대조를 나타냄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시고자 할때 오히려 백부장은 자신의 집으로 오시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여기에서 백부장이 자신의 집으로 오는 것을 왜 만류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김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방종교를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종교행위나 교제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분리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백부장이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존경하는 예수님이 자신의 일로 인해 공연히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한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예수님을 배려하는 겸손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에수님의 능력을 믿고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는 요청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문제는 똑 같이 해결 되었지만 믿음에 대한 과정은 달랐습니다. 결국 왕의 신하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 길에 아이가 나았다는 통보를 접할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문제의 해결은 이루어 진 셈입니다. 그러나 이적과 표적을 보지 않고 말씀만으로 믿는 믿음을 주님은 칭찬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얻기를 구해야 겠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귀히 보십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기도의 응답을 환상이나 이적을 통해서만 믿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능력있고 유명한 목회자만 찿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부흥하는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줄알고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많은 사람만 데리고 다니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때로는 멀리하실 떄가 있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외에는 다른 것을 요구치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믿음이 선행 될때 마음의 평안과 위로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럴때는 거의 응답을 받습니다. 먼저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에 부응하는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응답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위대한 믿음의 책인 성경을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믿음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믿는 신앙으로 가장 고상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앙인이 될수 있습니다.
* 최용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29 01:17)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때 에수님의 소문을 들은 왕의 신하가 급한 마음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고 책망하시고 그 신하의 집으로 가지 아니 하시고 말씀만으로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 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믿고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나앗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나앗을 때를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실때 나앗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의 신하 이야기와 로마 백부장의 이야기는 결과는 똑같이 나음을 입었지만 믿음에 대해서는 한사람은 책망을 듣고 한사람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서로 대조를 나타냄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시고자 할때 오히려 백부장은 자신의 집으로 오시는 것을 만류했습니다. 여기에서 백부장이 자신의 집으로 오는 것을 왜 만류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김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방종교를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종교행위나 교제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분리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백부장이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존경하는 예수님이 자신의 일로 인해 공연히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한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예수님을 배려하는 겸손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에수님의 능력을 믿고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는 요청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문제는 똑 같이 해결 되었지만 믿음에 대한 과정은 달랐습니다. 결국 왕의 신하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 길에 아이가 나았다는 통보를 접할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으로 문제의 해결은 이루어 진 셈입니다. 그러나 이적과 표적을 보지 않고 말씀만으로 믿는 믿음을 주님은 칭찬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얻기를 구해야 겠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귀히 보십니다. 그러나 문제에 대한 기도의 응답을 환상이나 이적을 통해서만 믿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능력있고 유명한 목회자만 찿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부흥하는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줄알고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많은 사람만 데리고 다니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때로는 멀리하실 떄가 있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는 믿음외에는 다른 것을 요구치 않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믿음이 선행 될때 마음의 평안과 위로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럴때는 거의 응답을 받습니다. 먼저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에 부응하는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응답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위대한 믿음의 책인 성경을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믿음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믿는 신앙으로 가장 고상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앙인이 될수 있습니다.
* 최용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1-2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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