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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골3: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믿음에는 자기로부터 오는 게 있고, 하늘로부터 오는 게 있다. 하늘로부터 온 믿음을 가지면 영원히 존귀 영광자가 된다. 반면에 땅으로부터 온 것은 잠깐이다. 땅으로부터 온 것은 아무리 오래 가봐야 100년도 못 간다. 세상에 속한 교인들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효력을 주는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믿음 믿음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믿음으로 알아주지 않는다. 이런 믿음은 교만이요, 자만이요,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다.

 

 

성경을 들고 땅의 것을 소원 목적하게 가르치면 하나님 앞에서 간사하고 교활한 거다. 사람을 몹쓸 곁길로, 형벌의 길로, 구원받지 못할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거다. 거짓 종들은 선악과 따먹고 나온 타락된 지식을 바탕으로 사는데, 이렇게 가르치는 게 거짓 종인 줄 모른 채 자기는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영생에 해당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대로 자타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목적으로 믿어야 바로 믿는 거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에서 이탈되게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런데 생명과와 선악과를 구별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세상에 속한 교인들은 세상을 소원 목적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소원 목적을 두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선택적인 면에서 천국 쪽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이 사람은 믿음이 약한 거다. 이런 사람은 세상 쪽으로 넘어지기 쉽다. 믿음이 약해서 의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책망하기보다 옳은 것을 다지게 해줘야 한다.

 

 

믿음은 반드시 위로부터 온다. 모든 좋은 것은 위로부터 온다. ‘모든 좋은 것이란 하나님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것이 아니면 땅으로부터 온 거다. 땅으로부터 온 것은 우리의 목적물이 아니라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할 것들이다. 본질에서 이탈된 교훈을 받으면 이 사람의 믿음은 세상성이 되어버린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하늘로부터가 아닌 땅으로부터 온 잘못된 지식임에도 정확한 것으로 알고 예수님에게 묻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된 지식으로 죽인 거다. 예수님께서 진리본질을 말을 할 때 양심에서 옳은 것을 시인하면서도 이 양심의 소리를 밟아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게 된 거다. 자기 마음에서 예수님의 교훈을 죽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육신을 죽이는 사건을 만들게 된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이면 사건이 생긴다. 사건을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여러 사람이 모일 때는 사건을 만들기 전에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모인 건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을 위해 모인 건지, 충성봉사와 사역주의로 모인 건지 알아서 내가 동참해야 할 것인지, 도망을 가야 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일반사람들이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면, 즉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면 믿는 우리가 그 일을 도울 수 있다. 이런 일에 동참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연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써서 구원을 이루라는 거다.

 

 

성경에 숫자가 많이 나오는데, 왜 물고기 두 마리냐? 한 마리는 아버지이고, 또 한 마리는 엄마냐? ‘하나하면 하나님이고, ‘하면 성부 성자고, ‘하면 성령님이냐? 또한 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였고, 떡 일곱 개로는 사천 명을 먹였는데, 왜 그런 거냐? 그 뜻을 알려면 그 말씀의 앞뒤를 살펴봐야 한다.

 

 

성경에 어떤 식물이 나오면 그 식물이 주는 교훈을 생각해야지 식물을 의인화해서 사람처럼 말을 하면 이상해진다. 성경의 열두 광주리를 열두 지파로 말을 하면 문제가 생긴다. 열두 광주리를 사람으로 직역해서 열두 지파로 말하는 것보다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 주시는 떡이라고 하면 무난하다.

 

 

:에 보면 다 같은 날수인데 ‘3년 반이라고 한 곳도 있고, ‘1,260이라고 한 곳도 있고, ‘42이라고 한 곳도 있는데, 각각의 숫자를 들을 때 어떻게 들리느냐? 같은 날수인데 왜 다르게 말한 것일까? ‘1,260이라고 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날마다라는 면이 강하다. 그러니까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징계도 되고 교훈도 된다는 거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에게 날마다 날마다라는 의미도 된다.

 

 

‘3년 반하게 되면 날마다, 날마다라고 하는 것보다 좀 여유로운 감이 든다. 학교에 다닐 때 오늘부터 한 달간 방학이다하면 방학이 엄청나게 긴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래서 날마다 실컷 논다. 방학숙제를 해 놓고 놀든지 해야 하겠는데 놀기부터 하다가 개학을 며칠 앞두고 몰아서 방학숙제를 하려고 하면 같은 하루인데도 하루하루가 그렇게 짧게 느껴진다.

 

 

이렇게 볼 때 ‘1,260, 3년 반, 마흔두 달이 날짜를 말한 것 같으나 사람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거다. 이렇게 보지 않고 연도와 날짜를 역사적인 면으로 찾는 것은 계시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은 날짜적인 계산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지식이나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입는 것으로 된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했는데, 이 말은 마귀에게 너는 열흘 동안 성도들에게 시험을 쳐라이 말인데, 마귀에게 너는 십 일 동안 성도들에게 시험을 쳐라고 하는 것과 너는 3년 반 동안 성도들에게 시험을 쳐라고 하는 것 중에 마귀가 어느 것을 더 좋아하겠느냐? 마귀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날수가 더 많은 3년 반 동안 시험을 치라고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3년 반 동안 받을 시험을 열흘 동안에 몰아서 받게 한다면 사람이 숨이나 쉬겠느냐? 혹독하고 가혹한 거다. 이처럼 성경의 숫자는 사람의 마음을 저울질하는 게 들어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를 이룰구원이 아닌 영해 비슷한 숫자놀음을 하면 안 된다.

 

 

물고기 153마리를 잡은 것도 나오는데, 물고기가 아닌 고래를 잡아서 이 고래를 배에 싣는다면 배가 어떻게 되겠느냐? 고래를 배에 싣는 게 아니라 고래 위에 배를 실어야 배가 가라앉지 않을 거다. 물고기 153마리를 숫자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1은 뭐고, 5는 뭐고, 3은 뭐고하면서 신앙이 좋은 사람을 비유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도 안 된다.

 

 

제일 좋은 해석은 배가 작으면 큰 물고기 153마리를 못 싣는다. 그러니까 물고기의 숫자를 생각할 게 아니라 배의 크기에 따라 주님이 채워주신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의 그릇대로 채워주신다고 깨닫는 게 정확한 해석이다. 숫자놀음을 하면 현재 나의 이룰구원이 되는 영감성이 나오지 않는다. 어떤 성경을 가져와서 말을 해도 자타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구원의 사상이 나와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현재적인 거다. 그러니 성경해석도 현재 자기의 이룰구원이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

 

 

성경에 천 년하는 것은 영원성을 의미한다. ‘영원성하면 영적인 의미가 된다.

 

 

주님 부활 후에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따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는데 날이 새어갈 때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묻자 없나이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해서 이에 던졌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다. 이 일로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고 땅으로 올라오자 주님이 떡과 고기를 구워놓고 아침을 먹자고 했다.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는 것과, 부활한 주님이 제자들이 식사할 것을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을 신앙적으로 생각해 봐라. 제자는 믿는 사람의 대표이요, 교회의 대표는 목사다. 이 제자들은 미래에 사도가 될 자들인데, 교회 인도자가 될 자들인데 고기를 잡으러 간 것은 주님의 일이 아닌 식생활을 위해 간 거다. 이것은 주님의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 안 믿는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는 쪽으로 돌아간 거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은 이들이 먹을 것을 다 준비해 놨다. 이것을 보면서 믿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하겠느냐?

 

 

주님이 제자들을 둘씩 내보내면서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라고 했는데, 사람을 군인으로 나오라고 할 때 국가에서 신발이나 옷이나 총을 준비해서 나오라고 하지 않고 국가에서 준비해 놨다가 준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라고 하시면 먹고 마시는 것은 주님이 책임을 지신다. 그런데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이것은 이들이 주님을 믿지 못했다는 거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주님을 따르는 성도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특별히 교회 인도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님을 따르면서 자신을 주님께 맡기는 삶이 안 되면 언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겠느냐? 예수 믿는 것은 세상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믿는 게 아니라 천국 쪽으로 완전히 바꾸는 거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완전히 바꾸는 거다. 보는 면, 먹는 면을 임시성에서 영원성으로 바꾸는 거다. 세상성에서 천국성으로 바꾸는 거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고, 천국을 말하고 있다. 예수 믿는 것은 일반적인 개념을 영적인 개념으로 바꾸는 거다. 바꾸지 못하면 그 신앙은 세상성이 되어버린다.

 

 

성경을 단순히 비유와 상징으로 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이치가 나오지 않으면 이런 교훈으로는 사람이 안 만들어진다. 이것은 자타의 이룰구원이 되는 게 없는 궤변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풀면 남이 들을 때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사단 마귀의 짓일 뿐이다.

 

 

성경을 사역중심에 붙이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은 없어도 일반적인 생활은 어느 정도 된다. 그런데 성경을 비유와 비사로만 풀면 일반적인 생활도 바로 안 되고 사람이 바로 서지도 못한다. 그리고 성경을 숫자놀음으로 풀면 일반생활에 써먹을 수도 없고 영적으로 써먹을 것도 없다. 성경을 비유와 비사로만 푸는 것은 영적인 것 같으나 인간의 이성 안에서 노는 것뿐이다.

 

 

성경을 가지고 숫자놀음을 하거나, 비유와 상징으로 풀거나, 영해 식으로 풀면 다른 곳에서는 듣지 못하던 신비로운 말일 수는 있겠지만 자타의 구원에 써먹지 못할 말이기 때문에 신앙과 관계가 없다. 말은 많은데 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없으면 은혜를 못 받는다. 우리는 이걸 잘 구별해야 한다.

 

 

자기가 신앙을 가지는 게 시대를 초월해서 옳은 이치라면 하나님의 공의성이고 절대적 의다. 하나님이 공의성은 사람에게 관계가 되어있다.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사람이 진리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창세 때나, 창세 이후나, 중세 때나, 마지막 때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같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어느 장소에서 태어났건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마지막 부활 때 한곳으로 모인다. 이렇게 만나지는 것은 변질이 되지 않는 신앙을 가졌다는 증거다.

 

 

변화산상에서 각 시대의 사람이 시대를 초월해서 모였는데 서로 대화가 잘 되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로 보면 내가 성경의 어느 선지자가 가진 신앙을 가지면 나는 시대를 초월해서 이 선지자와 인격적으로 대면이 되는 거다. 시대초월, 시간초월, 장소를 초월해서 통한다.

 

 

:에 바사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라고 했는데, 내려올 때 초속으로 달려왔을까, 시속으로 달려왔을까, 광속으로 달려왔을까? 영물의 활동은 시간초월이고 물질을 그냥 통과한다. 그런데 왜 누가 막아서 늦게 왔다고 말한 것일까?

 

 

영의 눈으로 보면 다니엘에게 바사적인 사상이 작용을 하고 있어서 빨리 못 온 거다. 즉 영운동은 시간초월인데 다니엘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정신에 가로막힌 거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사군의 사상은 물질성인데 교인인 내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그만큼 지연이 된다는 거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적인 역사인데 내가 물질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안 하신다는 거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사상은 전 세계적이다. 그래서 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에서 모여도 뜻이 같고 목적이 같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한다. 그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하는 우리의 신앙사상이 후손들에게서 가서도 변질이 되면 안 된다. 언제고 통해야 한다. 창조 때부터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의 본질로 통하는 게 하나님의 대국적인 구원역사다.

 

 

하나님은 변질이 없다. 따라서 변질이 없는 신앙에는, 변질이 없는 소원 목적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같이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도 지금은 어느 시대다하며 시대적인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서건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는 거다. 이것은 시대에 따라 변질이 되지 않는다.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게 아닌 것은 외모로, 껍데기로,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보는 거다. 시대마다 교회가 변질이 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기준을 버리고 인간의 기준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과가 아닌 선악과다.

 

 

죄악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외모 외형이다. 교회가 외모를 기준으로 놓고 논하면 소돔 고모라로 들어가는 거다. 근간에 동성애를 법으로 허락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은 소돔 고모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남의 씨로 자식을 낳는 일도 있는데, 남의 씨로 생긴 자식이 누구의 자식이냐?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죄악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외모 외형이지만 하나님은 진리 따르는 중심을 보신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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