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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을 잠재우신 하나님

마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205 추천 수 0 2009.07.11 17: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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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8:23~3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5년 7월 31일 주일2부설교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찐대 돼지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풍랑을 잠재우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바다의 풍랑이나 육지의 폭풍우는 자연현상으로 우리는 수차례 경험합니다. 그러나 자연현상이 아닌 풍랑이나 폭풍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살이 중 다가오는 삶의 풍랑이나 폭풍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우리 삶의 내면을 살펴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왜 우리의 삶에 풍랑이나 폭풍우가 다가왔는지 깊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오늘 우리는 자연현상이 아닌 특이한 풍랑을 만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본론]

1. 예수님을 주무시게 한 제자들

첫째로, 예수님을 주무시게 한 제자들을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저 건너편을 바라보시고 저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셔서 제자들이 배를 준비하여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는 중에 예수님은 주무시고 말았습니다. 제자들끼리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예수님 홀로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계시다가 그만 손을 베개로 하고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게 된 것은 크나큰 비극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데 얼마 있지 아니하여 그들 사이에 조그마한 실개천 하나가 생겼습니다. 실개천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고 개의치 않고 손잡고 서로 대화를 하며 가다가 실개천이 점점 커져서 개울이 되고 개울이 되었을 때는 팔을 멀리 뻗쳐서 둘이서 손을 잡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개울이 강이 되니까 이제는 손을 잡을 수 없어서 서로 큰소리로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강은 나중에 넓어져서 바다가 되니까 이제는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서로 고함을 쳐서 대화할 수도 없고 각각 다른 세상으로 나뉘어져 버리고 영원히 이별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쾌락의 실개천이 들어와 얼마 있지 않으면 그 실개천이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주님과 우리의 거리는 구만리장천처럼 멀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놓인 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은 신령한 세계 속에서 하늘나라 일을 이야기하고 깊은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그만 제자들의 대화가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곧장 예루살렘에 가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써 등극하게 되면 큰 권세와 영광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상천국의 도래와 함께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 주가 되면 제자들도 다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을 생각하고 세상 쾌락에 세상의 영화에 마음이 뺏겨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세상과의 교제가 들어오자 주님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간격이 생기고 만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제자들의 가슴속에 세상에 대한 사랑이 들어오자 예수님과는 멀어졌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생각하고 그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동안에 예수님은 홀로 대화의 상대가 없이 계시다가 주무시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각각 다른 세계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하늘나라의 일을 말씀하는데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여서 세상나라 이야기를 하고 세상 생각을 하므로 하늘나라와 세상나라가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거기에 간격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는 하늘나라가 그들 속에 와있었지만 예수님과 멀리 떨어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예수님과 대화를 그치자 세상나라가 들어오고 세상이 그 마음속에 들어와서 세상의 대화를 하니 예수님과의 거리가 멀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1절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일을 말씀하는데 제자들은 땅에 속해서 땅의 일을 말하니까 서로 거리가 생기고 간격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에게 늘 말씀하신 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먼저 하늘나라와 하늘의 의를 구하면 세상 것은 주님이 도와주실 것이니 세상을 먼저 생각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을 먼저 생각하고 말하고 그 속에 살면 하늘나라 일을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세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

둘째로,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늘 마음속에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지 아십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면 탐욕이 우리와 주님 사이를 갈라놓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는데 탐욕은 하나님의 대한 관심을 빼앗아 가는 다른 신인 것입니다. 탐욕이 들어오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세상 중심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완전히 탐욕은 다른 신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로 6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는 존이라는 믿음 좋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사업이 잘되든지 여러 도시에 체인점을 내고 일주일에 드리는 십일조만 1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천 2백만 원이나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사업을 하지 않으니까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지 않는가? 그리고 하나님께 만 불 이상 십일조를 낸다. 1천 2백만 원 이상 십일조를 낸다. 상상할 수 없다. 너무 아깝다.’ 그만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와서 점점 예배에 빠지고 나중에는 아예 주일성수도 하지 않고 가게에서 일을 했습니다. 마침내 목사님은 그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존! 나는 자네를 걱정하고 있네. 요즘 자네는 예배에 잘 참석하지도 않고 하나님 일에 무관심하고 십일조도 온전히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랬더니 그가 한다는 말이 “목사님! 사실 헌금은 백 불만 해도 많다고 봅니다.” 12만 원만해도 많다고 본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저는 사업이 너무 바빠서 교회에 나갈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말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니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합시다.”하면서 목사님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주님께서 존에게 지나친 번영을 주셨습니다. 존을 지나치게 성공시켰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에 잘나오지도 않고 십일조도 아까워서 내지 못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기도하오니 존을 위하여 그의 상점 몇 개를 불태워 주시고 또 상점 몇 개가 실패하게 하여서 존이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스럽게 섬기던 그 옛날의 존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존이 얼굴이 샛노래졌습니다. “목사님 대체 저주를 해도 유분수가 있지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하십니까?” 그러니까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 부귀, 영화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나? 자네는 지금 사업과 돈 때문에 목숨을 잃어 버리고 있다네. 나는 목사로써 당신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업을 망치게 해주시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네.” 존은 그 말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깊이 회개하고 깨닫고 다시금 십일조를 내고 성수주일 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탐욕은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고 탐욕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신으로 섬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탐욕에 빠지면 점점 주님과 멀어져서 세상을 섬기고 세상의 성공에 집착합니다. 결국 세상으로 말미암아 도적질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또 교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틈내어 놓는 것입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교만은 바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루시퍼가 왜 사탄이 되었습니까?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자기를 우상화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사이가 멀어지고 쫓겨나고 사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하기를 “내가 아름다움으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내가 영화로움으로 내 지혜를 더럽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서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잠언서 15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보다 자기를 바라보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자랑하고 섬기게 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는 천리만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잡지 월간목회 1990년 7월호에서 한 목사님의 간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1979년부터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했는데 아무리 치료해도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설교도 교회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서 해야 될 정도로 계단도 내려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40일씩 두 번을 기도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철야하고 금식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에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나 교만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꾸짖었습니다. 너의 교만 때문에 관절염 류마티스가 걸렸고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자리에 엎드려 회개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섬김을 받으려고만 했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했던 입술의 부정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고 목회했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죄를 낱낱이 고하며 회개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레마가 왔습니다. “지금부터 네 다리가 나았다.” 그 마음의 음성이 들려오고 확신이 들려올 때 그렇게 화끈거리고 욱신욱신하고 아프고 절뚝거리던 관절염이 싹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1985년 1월 14일이었습니다. 마음에 교만이 들어오자 그 틈을 타고 마귀가 관절염이라는 풍랑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에 사탄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워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깨어나시기만 하면 풍랑은 사라지고 파도는 잠잠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리하는 것은 말씀공부가 등한이 되어서 신앙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말씀 없이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에 믿음도 사라지고 불신앙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멀어지고 신앙이 멀어지면 하나님과의 교통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신앙이 들어오면 그 믿음이 하나님과 열린 문이 되어서 하나님과 교통했지만 말씀을 등한이 하면 신앙이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잠언서 13장 13절에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을 멸시하면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어지고 믿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패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면 상을 얻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늘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너무나 귀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야웨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어떻게 야웨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을 내는 것은 불순종인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 종의 위치를 떠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요, 우리는 종입니다. 성경에는 종이 주인을 여종이 주모의 손을 바라봄같이 우리가 야웨 하나님을 바라고 긍휼을 기다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인 것 같으면 우리 마음대로 하지요. 그러나 종은 주인을 섬기기 위해서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인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3절에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에베소서 5장 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으로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 모든 일에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마음에 작정하고 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을 쉬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3. 세상이 들어오면 풍랑이 인다

셋째로, 세상이 만일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 세상 틈을 통해서 풍랑도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세상이 들어오면 세상의 주인 된 마귀가 따라 들어오는 것입니다. 탐욕이 들어오고 교만이 들어오고 불신앙이 들어오고 불순종이 들어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 간격을 두게 되고 그 빈틈을 통해서 세상이 밀물처럼 쓸려 들어오면 그 밀물을 타고 사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세상이 제자들을 주님으로부터 격리시켜 놓을 때 마귀는 공격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예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말씀을 하는데 제자들은 세상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생각을 하셨는데 제자들은 세상일을 생각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과 사이에 교통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팔을 베개하고 주무셨습니다. 그 틈에 사탄이 들어왔습니다. 마귀는 그 배를 뒤엎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멸망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낮에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치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갈릴리 호수에 거대한 풍랑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풍랑을 제자들이 잠재워 보려고 무수히 애를 썼습니다. 물을 퍼내고 돛을 감아 들이고 온갖 일을 다 해도 배는 물에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과 간격이 벌어져서 풍랑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 없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사야 59장 1절로 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우리가 잘 아는 공산주의의 지도자였던 칼 막스나 스탈린은 한때 신앙인이었을뿐 아니라 신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가난과 기아, 사회악이라는 풍랑 앞에서 주님을 찾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지상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인간의 힘으로 가난과 질병, 저주와 고통을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 다가온 이 풍랑을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해 보겠다고 그들이 만든 것이 공산주의였습니다. 그 잘못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힘으로 풍랑을 잠재우려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낙원은커녕 가난과 독재에 시달리는 수많은 나라들을 양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다가오는 풍랑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일으키는 세상의 풍랑은 인간의 힘으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찾아야 풍랑이 잠잠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풍랑을 잠재워야 되겠습니까?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그때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배에 같이 탄 것을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세상에 들어와서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풍랑이 들어와서 죽게 되자 예수님이 함께 배에 타고 있고 예수님이 주무시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서 주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그들의 형편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선 것입니다. 부귀, 영화, 공명 다 가져도 물에 빠져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무엇보다 귀한 것이 예수님의 신앙이라는 것을 그들은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을 떠나고 버려야 예수님을 깨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틈을 내었습니까? 바로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이 그 틈을 내었는데 그 틈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탐욕을 회개하고 교만을 회개하고 불신앙을 회개하고 불순종을 회개하고 주님께 손들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회개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성봉 목사는 한국의 무디라고 우리가 말합니다. 이 목사님은 1900년에 출생하여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아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소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이 가난해서 중학교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돈을 벌려고 나가서 사업을 했는데 점점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그에게 질병이라는 풍랑을 일으켰습니다. 불과 21세의 나이에 이름모를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6개월 동안 평양 기혈병원에서 입원하여 생활하면서 곰곰이 인생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는 말씀하기를 돈을 많이 벌어 보려 했지만 백만장자도 죽어버리니 허사요, 땅을 사고 매를 사고 밭을 사고 고대광실같은 집을 지어도 죽으면 한 평 땅, 수의 한 벌, 관 한 개밖에 못가지고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많은 지식을 가졌어도 나 죽을 날 알지 못하고 영웅호걸, 미인들도 죽음 앞에서 다 항복하고마니 이 얼마나 허무한가“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주님을 떠났던 죄를 회개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죄인임을 알았다.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적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수많은 죄로 인해 내가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죄인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순복하고 한번만 살려주시면 복음을 모르는 불쌍한 인생들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침 받은 후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해 오늘까지 한국의 무디로 불릴 정도로 위대한 부흥사가 되어서 한국 삼천리 강토를 내 앞마당처럼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신 어른이 이성봉 목사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물질을 따랐으나 마귀가 일으키는 풍랑을 만나 회개하고 돌이키사 주님을 찾아오니까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는 그릇이 되었던 것입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보다 회개하고 주님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서 풍랑을 잠재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풍랑이 왔을 때는 주님을 찾고 주님을 깨우는 일에 우리가 게으르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친 것처럼 우리가 고난당하면 인간의 힘으로 수단과 발버둥치지 말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44편 23절에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잠언서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위기가 다가오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피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최고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의 얼굴을 찾고 찾으면 주님이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인도의 캘커타에 지구를 두고 있는 영국 선교단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선교비가 모자라 선교부 직원이 그 도시에서 돈 많기로 소문난 사업가 성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선교비를 부탁했더니 사업가는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250불짜리 수표 한 장을 끊어 주었습니다. 선교부 직원은 그 수표를 감사히 받아들고 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서 전보 한 장을 들고 황급히 들어오는 우체부와 마주쳤습니다. 직원은 직감적으로 불안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사업가의 얼굴을 주시했습니다. 전보를 받아들은 사업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며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선교부 직원은 조심스레 들어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러자 사업가는 물건을 가득 싣고 항해 중이던 회사의 한 배가 바다에 침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은 손실은 내게 있어서 치명적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써주었던 수표를 도로 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선교부 직원은 배가 파산된 상황이라 작정한 250불도 못 갚을 터이니 돌려 달라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 수표를 그 사업가에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가려고 하는데 사업가가 “잠깐 기다리십시오.”하고 다른 수표를 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액수를 줄였는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보니까 아까 주었던 수표의 4배나 되는 천불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선교부 직원이 놀라서 “아니! 잘못 쓰신 것 아닙니까? 배가 파선되었는데 250불자리 수표를 천불 수표로 바꾸다니 웬 말입니까?” “잘못 쓴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받은 전보는 하나님이 저에게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제가 요사이 와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도 못 드리고 성수주일도 못하고 기도도 못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니까 그 사이에 마귀가 들어와서 풍랑을 일으켜 제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그러니 저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아까보다 더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회개하는 표시를 하겠습니다.” 그 사업가는 풍랑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정확히 깨닫고 곧바로 하나님 앞에 회개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실패를 딛고 일어나서 사업에도 성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을 받았다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풍랑은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귀신이 와서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을 다시 중심에 모셔 들이기만 하면 예수님이 다시 자리를 중심에 점령하시면 풍랑도 잠잠해지고 모든 일이 회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바깥의 풍랑에 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풍랑도 잠잠해지고 생활에 풍랑도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풍랑을 잠잠케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기로 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풍랑이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풍랑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서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그 삶을 벗어 버리고 새로 갈아입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의 종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주님 앞에 올바르게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채찍을 맞고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점점 채찍이 굵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큰 채찍이 오기 전에 우리는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어 주님 품에 안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깨어나시면 풍랑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어나사 바다를 꾸짖으시는데 아주 잔잔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가지고 계십니다. 풍랑과 홍수도 주님 수하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 명령 한마디면 풍수도 풍랑도 잠잠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의 모든 문제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만 주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 한마디면 모든 풍랑은 물러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지금 북한이 원자탄과 미사일과 화학무기와 생화학무기를 만들어서 위협이 되고 있으므로 그 풍랑을 바라보고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해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해결은 우리 민족이 회개하고 주님을 찾는 길밖에 없습니다. 주께서 잠잠 하라 하시면 원자탄, 수소탄 아니라 어떠한 미사일도 잠잠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소련이 원자탄, 수소탄, 미사일이 없어서 망했나요? 조용하게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물러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고요하고 잠잠하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깨우시면 주님이 풍랑을 잠잠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의 삶 속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사회, 국가에 주님이 주무시게 해 놓고 주님을 그대로 두면 풍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환난 때 저와 같이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깨어나시면 주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4. 귀신을 쫓아내신 주님

그리고 넷째로, 주님은 풍랑을 일으키신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다를 향해서 고요하라.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물을 보고 꾸짖습니까? 살아있어 듣고 있는 존재를 향해서 꾸짖고 있잖아요. 풍랑을 일으킨 배후에 마귀를 보고 주님이 꾸짖으신 것입니다. 고요하라. 잠잠하라.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돌멩이 보고 꾸짖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무보고 꾸짖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살아있는 존재는 꾸짖으면 그 꾸짖음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꾸짖은 것은 바람과 파도의 배후에 있는 원수 마귀를 꾸짖으신 것입니다. 풍랑은 귀신이 일으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건너오지 못하도록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는 군대마귀가 풍랑을 일으킨 것입니다. 결국에는 예수님이 풍랑도 잠잠케 하시고 군대마귀도 쫓아내신 것입니다.
요한 1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 가정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가정이 평안해 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귀신을 쫓아내야 교회가 잠잠해지지요. 직장에서 사회에서 귀신을 쫓아내어야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귀신은 예수께서 오시면 쫓아내는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가장 먼저 하신일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불행과 풍랑은 귀신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귀신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귀신을 쫓아내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탐욕을 회개하고 교만을 회개하고 불순종과 불신앙을 회개하고 주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 일이키면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와 귀신들을 일격에 내어 쫓아주시는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2004년 9월 14일 순복음가족신문에 실렸던 서대문대교구 고성만 집사님의 간증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집사님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와 예비군 훈련을 받던 중 우리 교회의 조광형 집사님을 만나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교회에 나오자마자 남성지구역예배에 참석하며 열심을 내었습니다. 구역장 직분까지 받아 불신자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기도원에 올라갈 정도로 뜨거운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그 마음에 마귀가 들어와서 속삭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교회 밤낮 다녀봤자 무슨 재미가 있느냐? 세상 재미가 얼마나 좋다고~” 그러자 교회생활이 시들하게 느껴지더니 세상이 더 재밌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 다 끊었던 담배를 피우니까 그렇게 맛이 있어요. 그 다음에는 술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세상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급기야는 새벽기도도 하지 않고 삼일기도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기도원 가는 것도 그쳐 버리고 주일만 겨우 교회에 나오는 둥 마는 둥 하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신앙과 불순종이 들어오고 그 틈이 생기니까 세상이 들어오고 마귀가 들어왔으니 마귀는 들어오면 풍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냥 가만히 와서 우리에게 자장가 불러 주는 것이 아닙니다. 풍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1993년 봄, 이제는 장로가 되신 조광형 집사님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장로님은 “자네 이렇게 살면 안 되네. 빨리 정신 차리고 예전처럼 교회일 해야지. 그것이 자네가 살길이네.”하며 간곡히 권유했지만 집사님은 그 말이 마이동풍으로 들렸습니다. 그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벌써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한달쯤 후에 보일러에 연결할 가스통을 옮기려고 하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빨리 눈을 뜨라는 강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가 가까스로 일어나 보니 가스통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온힘을 모아 가스벨브를 잠그고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의사는 그의 몸의 50%에 2,3도의 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앞으로 3일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조광형 장로님은 제게 달려와서 빨리 심방을 해달라고 해서 제가 조광형 장로님과 함께 한걸음으로 병원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드리는데 처참해서 눈뜨고 볼 수가 없어요. 온 전신이 고기 익듯이 불고기처럼 익었습니다. 집사님도 자신의 불신앙과 교만을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3일 만에 죽겠다고 하던 분이 그 이후로 점점 증세가 나아지더니 다리를 절단할 위기도 무사히 넘기고 빠른 속도로 회복했습니다. 그때 의사선생님은 제게 말하기를 “다리가 너무 익었으므로 잘라내야 되겠다.” 그래서 저도 그 다리에 손놓고 기도하면서 ‘이 다리가 이렇게 불고기가 되었는데 살아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니 믿어보자고 안수했는데 그 다리가 살아났어요. 3일안에 죽는다던 사람이 21일 만에 목발을 짚고 교회에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1년 후 남선교회 섭외실에서 봉사를 시작했고 2004년 현재 집사님은 다리에 남은 큰 흉터 이외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교만과 불신앙에 빠져 주님과 사이가 멀어지자 마귀가 가스폭발이라는 풍랑을 일으켜 그의 생명을 빼앗아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그 어떤 풍랑이라도 잠잠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우리의 삶에 풍랑을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 떠나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잠재워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주무시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세상이 들어오면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의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는 구만리장천으로 멀어지고 풍랑이 다가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을 새롭게 모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풍랑도 귀신도 쫓겨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주님의 은총의 손길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세상이 좋아서 세상 속에 살고 세상에 탐욕과 교만과 불신앙과 불순종을 따라가면 주님과 사이가 멀어지고 원수마귀가 들어오고 온갖 풍랑이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들이 일어난 것을 경험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결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이 벌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고 예수님을 주무시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 속에 살고 세상 속에 살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일에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변화 받게 도와주시옵소서. 탐욕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교만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불신앙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불순종을 버리게 도와 주시옵시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이여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셔서 풍랑에서 건져 주시옵시고 마귀를 쫓아 주시옵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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