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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마태복음 박충구 목사............... 조회 수 2063 추천 수 0 2008.07.22 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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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5:31-40 
설교자 : 박충구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0.12.31 주일설교 
2000년의 벽두를 알리는 소리를 들은 며칠 되지 않는 것 같은 데 벌서 2000년 12월 31일 벼랑 끝에 서있는 시간입니다. 새길 교회 교우 여러분들은 이 한 해를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며칠 전에는 저의 학생 한 사람이 뇌 암으로 투병하다가 그만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대학병원 영안실에 잠시 머물면서 남은 자들의 슬픔을 보았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우리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점점 시간을 재촉하는 사건들이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같이 느끼게 됩니다. 오늘 이 해의 마지막 예배의 시간에 무엇인가 매듭을 지을 것은 짓고 풀어야 할 것은 풀어놓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으면 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한 해를 살아온 스스로의 모습들을 주마등 돌아가듯이 되돌아보면서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오늘 성서의 본문은 "최후의 심판"이라는 제목에 어울릴 듯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46절에 이르는 내용이지만 중간까지만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최후의 심판의 날에는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어몰 듯이 모든 사람들을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요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양으로 구별되든지 아니면 염소로 분류되든지 할 것인데, 그분류법은 지나온 일상적 삶에 대한 평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구별되는 점은 명백했습니다. 양으로 분류되는 편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 병든 사람과 옥에 갇힌 죄인들을 돌보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고, 염소로 분류되는 편은 약하고 병들고 주린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부류의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에 대한 평가를 듣고서 한 쪽에서는 과분한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한 쪽에서는 왜 우리를 그렇게 평가하느냐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으로 분류된 이들에게는 축복의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가이루어지는 데 비하여 염소로 분류된 이들에게는 악마와 그 졸도들을 위하여 예비해 두었던 영원한 불 속으로 던져지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영
원한 축복의 자리에 초대된 데 비하여 다른 한 무리는 영원한 비극으로 던져졌던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최후 심판의 자리라면 여러 분들은 어느 편에 속하실 것 같이 생각되십니까? 양의 자리입니까? 아니면 염소의 자리로 가야 할 것 같습니까? 아마많은 분들이 염소로 분류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새로운 2001년을 더 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려는 데 있는 것이라고 믿으면서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최후 심판의 유예를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유예된 심판을 앞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참된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하여 양을 모방하려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염소를 닮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이런 측면에서 오늘은 염소들이 범한 오류를 짚어보면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해에는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염소들의 첫째 오류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무슨 엄청난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삶을 평가하는데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편의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떠나서 위대한 삶을살아가려다가 염소가 되었다면 한 편의 사람들은 너무나 평범한 삶 속에서 양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대부분은 염소의기질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대단히 위대한 사람임을 입증하려고애를 무던히 쓰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은 너무나 위대한 삶을 꿈꾸었기 때문에 위대한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본문에나오는 염소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너무나 커서 그만 그 위대함을 위하여 자신의 인간성, 이웃의 고뇌, 그리고 사소한사람들의 고난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이들은 소위 왕초병에 걸려서 왕초를 시켜주지 않으면 나타나지도 않고 소인으로서 살아가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눈에는 적은 자들이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자신이선호하는 가치로 인하여 그 가치에 미달하는 사람들은 경멸하거나 하대하는 지배적성품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극히 적은 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니러니는 주님께서는 그런 적은 자의 모습으로 평범한 일상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평범한 일상을 놓치고 비범만을 쫓던 염소는 정작 자신이 섬기고 찾으려는 주님도 바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평범한 일상을 놓치고 특출한 삶을 살아가려다가 자신의삶을 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됩니다.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더욱 불행한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스스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비인간화되어 가는것입니다. 너무나 바빠서 인간다운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까인간의 모습은 가지고 있는데 비인간화 된 인간이 되어갑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가 동일한 인물의 이중적 성격을 지칭한다면 사실은 우리 모두 안에 이러한 모습이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중적인 그리스도인, 우리는 이런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는 청빈을 가르쳤지만 우리는 예수의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청빈보다는 부유함의 기회를 쫓고, 예수는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지위와 명성을 얻을까하여 전전긍긍하고, 예수는맑고 순결한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셨지만 우리는 쾌락과 즐거움을 누리는 일에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내며 살아갑니다. 이러다보니 교회가 교회가 아니고, 신자가 신자가 아닌 혼란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단히 위대한 목사님이 되기를 열망하는 목사님과 대단히 위대한 교회에 다니는신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너무나 위대한교회이기 때문에 위대한 목사님의 아들이 후임자가 되어야만 위대한 교회로서 견고한 터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나이 드신 늙은 목사님도 젊은 그아드님 목사님도, 그리고 그 교회의 장로님들도 많은 신도들도 한결같이 우리 교회는 위대한 교회이기 때문에 다른 교회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염소들의 합창소리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교회에서는 위대하지 못한 사람들은 축에 낄 수도 없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염소들의 삶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면 아마 우리 스스로는 염소를 닮아가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위대함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지극히 적은 자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삶, 우리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해야 할 길이라고믿어야 할 것입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면, 위대해 지려는것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적은 자가 되어 적은 자들의 이웃으로 사는 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살아왔다면 이제 평범의자리로 되돌아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염소들의 둘째 실수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을 간과한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존재가 되려는 꿈을 꾸던 염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에 던져질만한 악한 것으로 평가될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악이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2차대전 후 독일 비밀경찰을 지휘하면서 유태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던 아이히만(Eichmann)의 전범 재판 현장에 미국의 뉴욕커라는 잡지의 요청을 받아 참석하여 그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던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는 자신의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그녀는 수백만의 인간을 죽인 원흉인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이 무서운 얼굴을 한 추한 인간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전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바라본 아이히만은지극히 정상적인, 교양과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고, 또한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자상한 남편이요 아버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악마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뜻으로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악이란 엄청난 악마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저기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리도 의식할 수 없는 평범한 양태로 찾아 든다는것입니다. 염소는 이러한 악의 잠입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악을 다른 이들속에서는쉽게 찾아내지만 자신 속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 일이일어나는 것일까요?

수백 만명의 유태인들을 학살한 사건은 머리에 뿔 달린 악마의 조작이 아니라 악의 평범성을 간과한 삶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위대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지키기 위한 역사적 과제로 이해되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똑똑하고 위대한 시인, 음악가, 예술가들을 낳았던 독일민족이 악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그들이 위대함을 예찬할만한 우수한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국가 권력은 하나님이 제
정하신 것이라고 굳게 믿게 만들었던 루터신학의 오류를 교정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데에 커다란 비극이 있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수정이나 자기 교정을받아들이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자기 의"에 빠진것이지요.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자신을 수정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파멸로 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수정될 수 있는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오만
이 그들을 밀어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기 의"가 교만을 불러오고, 다른 이들을 정죄할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인간성을 파멸시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유태인 학살은 이러한 현상이 집단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착한 사람들이 더욱 더 사람들을 괴롭히고, 오류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이들의 심판자를 자처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염소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 내가 악을 행했습니까?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습니까. 나는 그런 모습 보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항변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똑똑히 들어라.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염소의 비극은 평범하고 진부한 삶의 한 가운 데 있는 악을 바로 보지 못한 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높아지고 교만해지면, 그리고 위대한 사람이 되려한다면 대부분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악을 간과하게 됩니다. 악은저곳에 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적인 선택과 판단과 행위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악에 대한 민감성이 살아있는 삶이 축복을 받을만한 아름다운 삶입니다.

셋째, 염소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까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윤리학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있습니다. 해를 끼치는 사람, 도움도 안되고 해도 안 되는 사람, 그리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 데, 오늘 이 본문에 나오는 염소를 행한 재판장의 준엄한 질책은해를 끼친 무리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악마들로 분류될 정도이니까요. 한나 아렌트가 오랬동안 친교를 나누었던 작가 Mary McCarthy가 1963년 The Group이라는 책으로 돈과 명성을 얻자 많은 이들이 앞다투어 멕카디의 사생활까지 들추어가며 그녀를 몰락시키려고 했습니다. 맥카디를 행한 이 부당하고 치졸한 지성인들의 공격을 바라보던 아렌트가 멕카디에게 보낸 편지가 Between Friends 라는 서간문집에담겨있는 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의 계급 사회에서는 계급간의 엄격한 사회적 규범이 있어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제한하였다. 그러한 계급사회는 신분의 제약으로 인하여 다른 계급과의 갈등이 쉬이 일어날수 없었다. 게급과 신분이 사라진 현대의 자유 사회 free society 는 평등과 자유의이념아래 시새움(envy)이라는 몬스터가 휭행하고 있다. 계급이 철폐된 사회 속에서사람들은 평등과 자유보다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 성공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
는 괴물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괴물의 모양을 내면에 지니고 있는 이들은 다른 이의 몰락을 나의 기회로 만들고, 나의 안전을 위하여 다른 이들이 등장할 기회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잔인한삶을 살아갑니다. 결국 시새움과 질투로 점철되는 삶 속에서 사랑이란 도무지 자리잡을 곳이 없게되는 것이지요. 시기와 질투에 익숙해지는 한 우리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실패한, 혹은 타락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고 있는것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인인데 몬스터같은 이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양이 되려다가 염소가 되고만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악은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밖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자신들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 보니까 주인이 양과 염소들을 나누더니 염소들은 악마와 그 졸개들을 위하여 준비해 둔 지옥 불로 보내버립니다. 염소들은 악마, 혹은 악마의 졸개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한 때는 예수님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의 장애물이로구나.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구나"(마, 16: 23)라고 꾸짖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악은 결코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양들의 삶에 대하여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도무지 자신들이 천국에 초대받을만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나 의식조차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오히려 염소들은 아마도 천국에 가기 위하여위대한 일을 골라 행하려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그런 의식이 전혀없었다는 것입니다. 한 쪽은 억지로 무엇인가 되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면 한 쪽은자연스럽게 살아갔습니다. 막상 심판의 자리에 섰을 때 양도 놀라고 염소도 놀랐습니다. 양편 모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심판의 기준이"지극히 적은 자"들을 귀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느냐 아니냐에 있었다는 점이 그 시간까지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 비밀을 알게 되셨습니다. 지극히 적은 자들을 기억하고 돌보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하고 살아오셨습니까? 양을 닮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염소를 닮으셨습니까? 이제 오늘이 지나면 새로운 한 해가 주어집니다. 새해에는 실패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염소를 닮지 말고 진정한 익명의그리스도인인 양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시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시간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너무나 크고 위대한, 중요한 일만을 하려다가 지극히 적은 자의 모습으로 머무시는 당신을 보지 못하고 외면하는 염소의 삶에 빠지지 않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빕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있는 시기와 질투를 버리게 도와주셔서 우리의 이웃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새로운 한 해를 당신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게 인도하시옵소서. 우리에게 지극히 적은 자들과 평화를 나누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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