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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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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1874 <이오 비망록(二吾 備忘錄)/풍경소리>중에서
가령 네가 사소한 일로 아들에게 화를 내었고
아들은 골이 나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치자.
너는 사소한 일로 아들에게 화를 낸 자기 모습이 한심하게 보이고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자신한테 다시 화가 난다.
그렇게,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너와 그러는 자기한테
화를 내며 낙심하는 너의 모습을 아울러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너를 첫 번째 에고, 뒤의 너를 두 번째 에고라 하자.
이윽고 너는 마음수련 시간에 들은 스승의 가르침이 생각나서,
사소한 일로 아들에게 화를 내는 첫 번째 너와
그런 자신에게 낙심하여 화를 내는 두 번째 너를
아무 판단 없이 바라보며,
“사소한 일로 아들에게 화를 내려면 내고
그러는 자신에게 화를 내려면 내어라.
하지만 더 이상 그러는 너희들 장단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말한 다음,
아들 방문 앞에 서서 듣거나 말거나,
“아들아,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깨어있지 못했구나.
그래서 너에게 주지 않아도 될 상처를 주었다.
미안하다. 용서해다오.”라고 말해준다.
그러는 너를 세 번째 에고라 하자.
첫 번째 에고와 두 번째 에고에는 희망이 없다.
마지막 순간까지 둘은 돌아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다.
아니, 회개할 수 없다.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에고에 희망이 있다.
그는 돌아설 줄 알고, 아니 이미 돌아선, 에고다.
잘못을 저지르는 첫 번째 네가 있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희망이 없다.
잘못을 잘못으로 아는 두 번째 네가 있다.
그래서 반성하고 뉘우치지만
잘못한 자기한테 화를 내고 그를 힐책하면 역시 희망은 없다.
잘못한 너와 그런 자신한테 화를 내고 힐책하는 너를
판단 없이 바라보면서,
더 이상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기로 선택하는
세 번째 너, 오직 그에게 희망이 있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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