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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의 핏방울

이현주 이현주............... 조회 수 2225 추천 수 0 2007.11.10 14: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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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 <과노긔이야기18/드림>중에서

가난한 자들의 핏방울  

수도원 막내인 마르틴 수사가 아침마다 탁발을 하는데, 몇 달 계속하다 보니 일정한 코스가 생겼다. 친절한 구멍가게 몇 군데에서 동전 몇 닢, 빵집에서는 부스러기 빵 몇 개를 날마다 얻었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이들이었다.
그런데 마르틴은, 그루브라는 법관의 저택 앞을 날마다 지나치면서 한번도 그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루브는 법관이라기보다, 허름한 집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싼 값으로 빌려주고 그 세를 챙겨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루브가 수도원장을 찾아와 마르틴 수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가 이 고장에서는 무시당할 사람이 아닌데, 어째서 그 애송이 수사는 우리 집을 매번 그냥 지나쳐버리는 거요?”
그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 원장은, 내일 아침 마르틴 수사가 댁을 방문하도록 조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를 돌려보내고 나서 원장이 마르틴을 불러 말했다.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의 인품이나 생활 태도를 판단하여 가리는 일은 형제의 임무가 아니오. 내일 아침엔 자루를 가지고 그루브 댁을 방문하여 주는 대로 받아 오시오.”
이튿날 아침, 마르틴은 아무데도 들리지 않고 곧장 그루브 저택으로 갔다. 그루브는 자루에 음식을 담아주면서, 자기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에 대하여 길게 말을 늘어놓았다. 마르틴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루브가 자루를 채워주자 마르틴 수사는 그것을 어깨에 메고 곧장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몇 발짝 떼어놓지 않아 자루에서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걸음을 걸을수록 더 많은 피가 방울져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서로 말했다. “오늘 수도원에서 모처럼 불고기 파티가 벌어지겠군!” 마르틴 수사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수도원을 향해 걸었다.
수도원에 당도하자 다른 수사들이 피로 물든 자루를 보고 환성을 질렀다. “마르틴이 고기를 얻어왔다! 금방 잡은 고긴가봐!”
하지만, 자루 속에는 살코기가 한 조각도 들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 붉은 피가 모두 어디서 나왔지?”
마르틴 수사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그게 그럴 수밖에요. 그루브의 재산이 모두 가난한 이들한테서 쥐어짠 핏덩이니까요.”
그 뒤로는 아무도 마르틴에게 그루브 법관의 저택에 가서 탁발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기도: 오, 주님. 혹시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에 어느 억울한 사람의 피가 묻어 있지는 않습니까? 제가 지금 맛있게 먹고 있는 이 음식에 어느 억울한 사람의 눈물이 배어 있는 건 아닐까요? 제발 그런 불행이 저한테 닥치지 않도록, 주님, 저로 하여금 티끌만한 탐욕도 품지 않게 해주십시오. 세상을 한 번 속이느니 차라리 백 번을 속게 해주시고, 남의 억울한 피 한 방울을 흘리게 하느니 차라리 제 몸의 피를 모두 쏟게 해주십시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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