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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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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을 지키지 못하면 나락에 빠진다
오래 전 농촌에서 지낼 때 만났던 한 농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괴로움을 참지 못한 그는 어느 날 제초제를 마시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병원으로 내달려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때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농사꾼들은 100원 들여 50원을 벌어두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예유. 땅을 놀리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니까유.”
뻔히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농부라는 말도 그랬고, 곡식을 심어야 할 땅을 놀리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말도 그랬습니다. 묵중한 통증 같기도 했고, 날카롭게 마음이 베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키다가 끝내 제초제를 마신 것이었으니, 그의 이야기는 숙연하게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참 마음 아픈 장면을 보았습니다.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아 논의 벼를 갈아엎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싶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빛깔도 예쁘게 잘 익은 벼, 이때쯤이면 추수하는 즐거움으로 벼를 베는 모습이 당연할 텐데 거꾸로 벼를 갈아엎고 있었으니 말이지요.
배고픔의 시절을 견뎌야 했던 옛 어른들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자식 죽는 것은 봐도 곡식 죽는 것은 못 본다’는 것이 농부의 마음인데 애써 가꾼 곡식을 스스로 갈아엎다니, 마치 농부들이 자기들의 맨가슴을 갈아엎는 것처럼 다가왔습니다.
쌀값을 보장하라는 시위였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씨를 뿌릴 때부터 거두어들일 때까지 마땅히 들어가야 하는 경비들이 있습니다. 종자 구입, 비료, 농약, 비닐, 농기계 구입 및 수리, 거기에 갈수록 구하기조차 어려운 품꾼에 대한 품값, 그 모든 것들이 오른 것은 물론입니다. 생필품의 모든 물가가 오른 판국에 거꾸로 쌀 수매가는 하락을 했으니, 자식 같은 벼를 갈아엎는 농부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식량부족국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19.3%(2020년 기준)에 불과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하위에 해당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농산물시장정보시스템(AMI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곡물자급률은 캐나다(192%), 미국(120.1%), 중국(91.1%)은 물론 일본(27.3%)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중요한 식량수출국인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겪고 있고, 세계 어디랄 것도 없이 겪고 있는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세계의 식량이 언제 동이 날지 아무도 예측을 할 수가 없습니다. 미사일도 무섭고 핵도 무섭지만, 식량이 무기화 되면 그것보다 무섭고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무기는 따로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돈을 내밀어도 자국의 국민이 우선일 터이니, 인류애와 자비를 기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뻔합니다.
장일순 선생님의 책 제목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처럼, 나락 한 알은 더없이 소중합니다. 쌀과 콩 한 알 속에도 인간이 흘린 땀과 비와 이슬 등 하늘의 은총이 깃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락을 갈아엎는 일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회복하기 힘든 나락(奈落)으로 빠지고 말 것입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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