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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1 추천 수 0 2022.10.19 2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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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전도사라는 호칭보다는 그냥 친구라 부르도록 할게. 그게 편할 것 같아서. 이제쯤엔 수련목회자 생활에도 많이 익숙해졌을지 모르겠다. 살다보면 바라보며 생각했던 것과 막상 부딪치며 느끼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되지. 수련목회자 생활이 무엇보다 마음으로부터 잘 자리가 잡혔으면 좋겠다. 

YWCA총장으로 열심히 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목회자가 되기로 했다고 결심을 밝혔을 때, 그 말을 의아하게 듣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이미 하고 있는 일도 비중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고, 이런저런 사업과 활동으로 보람도 제법인 길이었잖아. 게다가 50을 바라보는 나이, 경험도 소중한 힘이 되어갈 즈음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한 일로 보였을 테니까. 말이 무리한 일이지 실제로는 무모한 일로 생각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아.

내가 기억하는 말 중에 조선시대 이행이 쓴 시 한 구절이 있어. ‘우연히 아름다운 약속 지켜 즐겁게 참된 경지를 깨닫네’라는 구절이지. 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겠구나, 공감을 하게 되는 내용이야. 

다른 이들에겐 무리하고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을지 몰라도 오래 전 마음에 품었던 약속이 있었고, 새로운 시작이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 한다면 그것은 분명 즐겁고도 아름다운 일이었을 거야. 

버리는 것만큼 얻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버리기 힘든 것을 버린 만큼 소중한 것을 얻게 되겠지. 가지 않은 길을 두고 두고두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조금 늦었다 하더라도 더욱 정성스럽게 그 길을 떠나는 것이 맞는 일 같아. 

뒤늦게 수련목회자의 길을 걷지만 지금의 이 선택이 생애 최고의 멋진 선택이었음을 두고두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래. 아침에 온 품꾼이나 저녁에 온 품꾼이나 같은 수고로 받아주셨던 주님께서는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길을 떠나는 네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실 것 같아. 가족들의 따뜻한 이해와 격려도 큰 힘이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박수가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의 박수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가 있었으면 좋겠고. 

요즘 읽은 책 중에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이 있어.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책을 통해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장영희 교수가 쓴 책이지. 이 책은 한 일간지의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북 칼럼에 3년간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으로, 제목 그대로 문학의 숲을 거니는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는 책이야. 

원고지 10매 분량의 짤막한 글들이지만, 그 글을 읽고 독자들이 ‘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으로 뛰어가도록 해달라는 것이 신문사의 주문이었다고 해. 짧은 글을 통해 위대한 작가들이 남긴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일도 쉽지 않은 터에 그 글을 통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달라니, 어쭙잖게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을 하게 되는데, 저자는 정말 그 일을 어렵지 않게 감당해내고 있어.

그것은 단지 저자가 영문학자로서 갖는 전문지식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어. 물론 영문학자로서 폭넓게 문학세계를 접하고 문학작품이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헤아리는 전문성을 무시하고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싶어.

저자는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어. 김현승 시인이 ‘창’이라는 시에서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야 말로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결이 어떤 것인지를 투명하게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저자는 결코 현실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어. 많은 문제와 아픔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지. 그런데도 현실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더없이 따뜻하다 여겨지는 것은 저자가 갖고 있는 아픔에 대한 공명 때문일 것 같아. 저자 스스로 불편한 몸으로 살며 몸소 겪은 많은 아픔을 통해 아픔을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따뜻하게 용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 같아.

동서고금의 수많은 작가들이 사랑에 대해서 한 말을 찾아 적으며 저자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의 압권을 <논어(12권 10장)>에 나오는 ‘애지, 욕기생’(愛之, 欲其生)에서 찾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아.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거든. 누군가를 살게끔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통해 사랑은 비로소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싶으니까.

문학의 숲을 산책한다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 속에는 참 많은 책들이 소개되고 있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심훈의 <상록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펄 벅의 <대지>, 까뮈의 <이방인>,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T.S. 엘리엇의 <황무지>, 위고의 <레미제라블>.... 우리에게 익숙한 책들이 제법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해. 

그런가 하면 생소하게 여겨지는 책들도 있지. 노발리스의 <푸른 꽃>,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등은 처음 듣는 작품들이었고, <호밀밭의 파수꾼>, <분노의 포도>, <위대한 개츠비> 등은 제목은 익숙하지만 내용은 가물가물한 것들이었어. 그러고 보면 우리가 제대로 만나지 못한 문학작품들이 한둘이 아닌 것을 알게 돼.

책을 읽다보면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받는 즐거움도 있지만 작품 속에 담긴 인상 깊은 구절을 만나게 되는 즐거움도 누리게 돼. ‘가장 악한 자는 남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자’(주홍글씨), ‘논리보다 앞서서 우선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논리보다 앞서야 해요. 그 때 비로소 삶의 의미도 알게 되죠.’ ‘지옥이란 다름아닌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데서 오는 괴로움’(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나는 머리만 있는 주피터보다는 마음만 있는 바보가 되겠다.’(백경을 쓴 멜빌의 메모), ‘우리 각자의 영혼은 그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해서, 다른 사람의 영혼과 합쳐져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분노의 포도),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재미있게 노는 꼬마들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했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의 대답, 그 중에서도 마음 뭉클하게 와 닿았던 것은 <상록수>에 나오는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하는 구절이었어. 

교실로 쓰는 교회건물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으라는 주재소의 명령에 따라 농촌운동을 하던 영신은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쫓게 되지. 아이들을 가르치다 영신은 깜짝 놀라게 되는데,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 뒤 칠판에 커다랗게 적었지.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라고. 아무나 오게라는 말은 어느 샌지 교회가 잃어버린 말이 아닌가 싶어 더 마음에 닿았는지도 모르겠어.

인상적인 장면과 인상적인 구절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지만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그런 위대한 문학작품들이 우리들의 삶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있다고 여겨져. 단지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아마도 또 하나의 문학사전이 되고 말았을 텐데, 작품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비춰보기도 하고, 거꾸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문학작품을 통해서 투영해 보기도 하지. 위대한 문학작품들이 현실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과 시대정신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때마다 느끼게 해 주니까.

모든 것을 휩쓸어간 무서운 홍수로 키우던 돼지들을 한순간에 잃어 억장이 무너진 농부와, 쌀 한 톨 남은 게 없다고 울먹이는 아낙을 9시 뉴스를 통해선 본 날, 저자는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할 텐데’라는 말을 떠올리며, 우리가 바로 두 사람이 누우면 온기를 나눌 수 있다 했던 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지. 

아무리 힘들고 절망스러운 상황이라 하여도 유사한 상황을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삶이 가지고 있는 질곡의 문제를 깊이 있게 바라보게 함으로,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따뜻한 힘과 그것을 사랑과 믿음으로 긍정할 수 있는 여유를 전해주고 있어. 

자신이 만나는 학생들의 고뇌와 사랑을 위해 그들 마음에 닿는 시를 소개하고, 시가 써지게 된 배경을 설명해 줄 때에도 사랑으로 젊은 영혼을 어루만지려는 세심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고. 문학작품이 따뜻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잘 모르던 이들도, 문학작품과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 것인지를 일러주는 글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참된 선물이지 싶어.

원고지 10매 분량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으로 뛰어가도록 글을 써 달라 했던 신문사의 주문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니. 독자에게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책에 대한 단순한 재미나 호기심을 자극함으로서 가능한 일은 아닐 거야. 내가 누군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더 알고 싶고 제대로 찾고 싶은 갈망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

때마다 나누게 되는 말씀을 통해서도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씀을 들은 누군가가 그 말씀을 더 잘 알고 싶어 조용한 시간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간절한 기도로 말씀의 의미를 구하는, 그래서 귀로 들은 말씀을 지나 자신의 삶으로 만나는 말씀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나누는 말씀이 밋밋해서는 안 된다는 도전을 받았어. 삶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부족으로 삶과 유리된 말씀을 나눈다고 하는 것은 안일하고도 공허한 일이지 싶어.    

내가 기억하는 모습 중에는 단강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모습이 있어. 하루 일을 마치고 양은 그릇 하나 머리에 이고 뒷짐을 진 채 집으로 돌아오는 칠순 팔순의 할머니들, 그분들이 이고 있는 그릇 안엔 대개 한 자루 호미가 들어있었어. 그 호미는 언제나 하얗게 빛이 났지. 할머니들은 그 호미 하나로 산간밭을 다 일구고 있는 것이었어.

말씀의 밭을 일구는 우리에게 무모함과 고단함을 견디는 성실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울러 세상과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소중하고 고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열린 눈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세상을 너무 쉽게 정죄하거나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여, 교회를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뻔한 도피처로 만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세상을 사랑으로 껴안기 위한 사랑의 학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아니 드려야 할 신앙고백 중에서 빠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어.

“주님, 사랑하며 살게요.”

“참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아름다운 세상임을 고백하는 사랑의 길이 되기를 바래. 좁은 길을 사랑으로 걸어가신 주님의 박수소릴 언제라도 잊지 말고.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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