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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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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릿광대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한 번은 교우 몇 명과 함께 <나비부인>을 보러 갔다. 성악을 전공한 교우가 출연을 하는 오페라였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현장에서 보는 일이 처음이거니와, 독일에서 보는 오페라였기에 기대가 되었다. ‘어떤 갠 날’이나 ‘허밍 코러스’ 등 음반으로만 익숙했던 노래를 직접 듣고 보는 것은 새로운 감흥이었다.
나비부인의 삶과 그가 부르는 노래가 애절하게 와 닿았다. 오페라의 무대가 일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푸치니가 우리의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지금이라도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이 우리의 고전을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페라를 보면서 매우 인상 깊은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인 나비부인도, 핑커톤도 아니었다. 노래 한 소절 대사 한 마디 없이 몇 번을 등장했다 이내 사라지곤 하던 한 하인이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의자와 탁자를 내오고 들여가는, 하찮다면 아주 하찮은 역을 맡은 한 노인에게 눈과 마음이 갔다.
종종 걸음으로 등장을 했다가 아주 잠깐 자기의 일을 하곤 종종 걸음으로 물러나는데, 정말 평생을 하인으로 살아온 사람처럼 그의 동작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걸음새는 일정했고, 자기 역을 하느라 쳐다보지도 않는 주인과 손님에게 언제라도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곤 했다. 저리 하찮은 일에 저리 공을 들일까 싶을 정도였다.
공연 후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들으니 그는 실제로 80세가 넘은 노인으로 전직 산부인과 의사였다. 오페라가 좋아서 은퇴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엑스트라로 출연료 없이 출연을 하는데, 어떤 역을 맡아도 마치 자기가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나비부인을 생각하면 그날 하인 역을 맡았던 노인이 떠오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주인공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최선을 다했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사람 앞에서 프리마돈나를 꿈꾸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릿광대를 꿈꿀 일이다. 묵묵히 그 길을 가야지,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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