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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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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오리 알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저녁을 먹고 산책길에 나선다. 아내와 함께 정릉천을 따라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북한산에서 시작된 물이 흐르는 정릉천엔 1급수에 산다는 버들치가 산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 지나가다 아는 얼굴을 마주치면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
며칠 전이었다. 정릉천을 따라 오르는데, 몇 몇 사람들이 난간에 서서 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구경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맘때면 오리가 부화하여 새끼를 데리고 헤엄을 치는데, 그 모습이 여간 앙증맞지가 않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며 감탄을 하는데, 오리는 그것을 즐기는지 유유자적이다.
하지만 그날은 오리 새끼가 아니었다. 개울 한 복판에 작은 섬처럼 풀이 자란 곳이 있는데, 그곳에 오리가 알을 낳은 터였다. 알을 낳기 위해 오리가 찾아낸 최적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알이나 알을 품는 자신을 노리는 밤 고양이로부터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 말이다.
“저걸 어째!”
한 아주머니가 물속을 가리키며 연신 안타까워했다. 아주머니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알 하나가 물속에 빠져 있었다. 알을 품는 어미의 실수였을까, 오리 알 하나가 물속 바닥에 잠겨 있었다.
“들어가서 알을 꺼내 둥지에 넣어줘야 하나?”
아주머니가 안쓰러워하자 남편이지 싶은 분이 “너무 늦었어. 벌써 식었을 거야.” 대답을 한다. 조금만 있으면 알에서 깨어나 어미를 따라 헤엄을 칠 텐데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 여간 안타깝지가 않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쉬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영문을 모르고 걸음을 멈추는 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고는 했다.
다시 걷기 시작하는 길, 마음이 아팠다. 오리 알 하나가 물에 빠져도 저리 마음이 아픈 것을, 오리 한 마리가 부화되지 못한 것도 저리 안쓰러운 것을, 하하호호 수학여행을 가던 수많은 학생들 물에 잠긴 아픔은 어찌 된 것일까, 한 순간 도시의 골목길에서 사라진 꽃다운 젊은이들의 꿈은 어찌 된 것일까, 우리는 그 빈자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 쉽게 눈과 마음을 거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리들은 누구일까, 우리들의 비정함은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얼마나 비수 같은가, 뾰족한 못 위를 걷는 양 아픈 질문들이 이어졌다.
한희철 목사 <교차로>20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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