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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알파벳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9 추천 수 0 2023.11.06 12: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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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알파벳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 길벗들에게 이 글을 씁니다. 교인 혹은 교우라는 말을 두고 '길벗'이라 쓰는 것은 제 마음의 일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우로 만났지만 주님 안에서 한 교회를 섬기는 우리들이야말로 믿음의 벗입니다. 믿음의 벗이라 부르니 더욱 친근하고 편하고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지요? 서로를 부를 때의 호칭이야 그렇기가 어렵겠지만 마음으로는 서로가 믿음의 벗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 때 위로하고 넘어질 때 손잡아주며 함께 웃고 우는 좋은 벗, 우리가 꿈꾸고 지켜가야 할 신앙의 모습이 신앙의 벗이라는 말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여겨집니다.

때를 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오늘은 나의 길벗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라는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좋은 책을 권하는 것은 좋은 길을 소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우연한 일을 계기로 다른 이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나만의 오솔길을 발견할 때가 있고, 그 길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쉬워 좋은 벗들에게 알리는 경우가 있지요. 한 번 걸어보라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길을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가 발견한 좋은 길을 소개하곤 합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하나님을 향한 여정>도 그런 마음입니다. 좋은 길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책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을 쓴 이는 프레드릭 뷰크너(Frederick Buechner)인데, 제게도 낯선 이름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독교 작가 필립 얀시는 <내 영혼의 스승들>이라는 책에서 프레드릭 뷰크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회의론자들과 타종교인들이 가득한 회의장에 초대받아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함께 가고 싶은 13인의 영적 멘토 중의 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향한 여정>은 프레드릭 뷰크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책머리에서 "과거를 탐색하는 것은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이며, 과거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혹은 어떤 사람이 되는데 실패하고 있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뷰크너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이, 우리 또한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내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도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 귀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뷰크너의 유년 시절은 결코 밝지를 못했습니다. 밝기는커녕 '여는 문마다 코앞에서 쾅 하고 닫혀버리는'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시절, 뷰크너의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삶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 때 뷰크너의 나이 열 살, 그의 동생은 여덟이 채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신,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오. 그리고 난 틀렸어…. 프레디에게 내 시계를, 제이미에겐 진주핀을 전해 주오. 당신에게 내 모든 사랑을 남기고 가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지만, 부모님이 계신 곳이 자신의 집인 어린 자녀에게는 모든 것이 깨어지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화재로 집을 잃는 것과 같다'고 한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뷰크너는 어린 시절 집을 잃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마침 그 날은 부모님과 함께 풋볼 경기를 보러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이었는데, 그 일을 통해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던 뷰크너는 '어떤 위로의 말로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해파리가 마구 쏘아대는 밀물 때 수영하는 법과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아버지, 예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 자동차로 데려다 준 아버지, 잠을 잘 때마다 콧김을 씩씩대고 따가운 구레나룻을 볼에 비비며 뽀뽀를 해주었던 아버지, 추운 자동차 안에서 유일한 담요를 자식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신문지를 접어 코트 안에 넣으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은 '시간 이전의 때'(once-below-a-time)가 끝나고, '시간 이후의 때'(once-upon-a-time)의 시작이었습니다. 시간의 실체도 모르고 시간에 대한 관심도 없이 시간이 주는 무한한 은총만을 누리던 '시간 이전의 때'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문이 닫히듯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일어난 2차 세계대전과 군입대, 삼촌의 자살, 그는 자신의 턱에 생긴 흉터처럼 어떤 치명적인 집안의 결함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면 소름끼치는 자기암시 과정을 통해서 자신도 아버지와 삼촌처럼 생을 마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뷰크너가 바라보는 어린 시절의 시간들은 결코 어둡거나 눅눅하지만은 않습니다. 어리기에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많은 일들의 의미를 '책 틈에 끼워 우연히 보관해 온 오래된 사진'을 들여다보듯이 찬찬히 돌아보는 그의 마음은 더없이 차분하고 따뜻합니다. 오랫동안 모든 방향으로부터 온갖 바람을 맞은 나무가 결코 쓰러지지 않듯이, 어린 시절의 아픔과 슬픔, 혼란을 한 올 한 올 살피는 그의 마음결에는 넉넉한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은총이 있습니다.

강이 굽이를 돌면서 속도가 느려지거나 깊어질 때면 밑바닥으로부터의 조류가 수면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떠내려가는 나뭇잎을 가두고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게 만들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을 통해 삶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한 번에 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 것들과, 단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은 것들이 있다는 것, 그것들을 우연히 보게 되는 수도 있지만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는 순간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책 곳곳에 나오는 나직하지만 힘 있는 그의 고백들은 그가 유년에 겪은 상실과 아픔을 딛고 서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보다는 절실함을 갖습니다. 

"부자는 주머니 속의 신용카드로 자신을 위해 뭐든지 다 살 수 있기 때문에 정작 이 세상에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선물로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지 못한다. 주먹을 꼭 쥐고 있으면 그 '좋으신 하나님'에게서조차 결코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 우연인가 하나님의 뜻인가는 바른 질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론 둘 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우연한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실 수 있다. 집에서 차고까지 십만 번도 더 오간 그 길을 걸으면서도, 아니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절대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조차도 그분은 말씀하신다."

"우리 인생의 사건들이 임의적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나름대로의 형태와 방향이 있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며 어디론가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믿게 된 것은, 시간 저 너머로부터 구원의 어떤 비밀이 우연하고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우리의 시간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나를 산산이 부순 그 순간의 깨달음은 진정한 평화, 모든 이해를 초월하여 다스리는 고결한 평화는 전투에서 물러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투의 치열함에서 얻어진다는 것이었다."  

삶의 많은 순간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습니다. 먼저, 어린 뷰크너의 마음속에 꿈의 세계로 자리 잡았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입니다.  

책 속의 링키팅크 왕은 세 개의 마법 진주를 얻게 되는데, 파란 진주는 주인에게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주고, 분홍 진주는 주인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며, 하얀 진주는 주인에게 지혜롭고 유익한 조언을 해줍니다. 링키팅크가 처음으로 하얀 진주의 도움을 청했을 때 진주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세상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뷰크너의 마음에 남아 비록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도 삶을 긍정하게 만들었던 하얀 진주의 말을 우리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품이 깊어질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대목입니다. 외로운 주일날 별로 다른 할 일도 없어서 교회에 가는데 어느 날 그는 목사님의 설교 끝 부분, 본래는 설교 원고에는 들어있지 않아 분명 마지막 순간에 문득 생각해 내서 덧붙였으리라 여겨지는 말씀에 붙잡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사탄이 내민 왕관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럼에도 왕입니다. 그 이유는 그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왕관을 쓰고 또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면적인 대관식은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 가운데' 거행됩니다."

'큰 웃음'이라는 그 말 때문이었는데, 자신이 믿는 그 무엇이 지금까지의 여정 내내 숨겨져 함께 왔다는 것을, 문이 하나 새롭게 열렸다기보다는 그 문은 줄곧 열려 있었고 이제 발부리가 그 문턱에 걸렸다는 것을 그 순간 그는 알게 됩니다. 

설교 끝에 우연히 붙은 '큰 웃음'이라는 말에 그의 마음이 붙잡혔다는 것, 그 말을 들은 다음 주일 목사님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 길로 유니온 신학교를 찾아가는 것,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던 그가 목회자가 되는 것, 그렇게 어리석고 빈약해 보이는 거룩한 실낱에 우리 모두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뷰크너의 삶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알파벳으로 이해하는 뷰크너의 마음이 더없이 고맙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깊고 그윽한 고백으로, 마음이 다 담긴 선물로 다가옵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당신의 존재와 목적과 능력을 인자하게 드러내시기 위해 사용한 알파벳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히브리어의 알파벳처럼 은혜의 알파벳은 모음이 없으며, 그런 까닭에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나 장막에 싸여 있고, 신비하고, 비밀스러워서, 모든 믿음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의미를 탐구하고 모음들을 채워 넣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그 의미를 일부러 감추시려는 의도가 아니며, 육화된 말씀은 의미가 고정된 사전적 단어와는 달리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 의미는 우리가 그 의미를 열심히 찾고자 할 때에만 인생 속에서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알파벳인 인생에 모음을 채워 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라는 말을 내 믿음의 벗들과 눈물로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채워 넣는 모음에 따라 우리들의 삶은 달라지는 것,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이 고백과 눈물과 큰 웃음 가운데 드려지는 대관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확인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프레드릭 뷰크너, <하나님을 향한 여정>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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