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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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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49. 도시 사람들
올해는 유별나다 할 만큼 밤이 풍년이다. 봄날 사방 밤꽃이 흐드러지더니 날씨마저 좋아 어디에나 밤이 흔하게 달렸다. 아우성을 치듯 매달린 밤들이 제철을 맞아 쩍쩍 벌어지자 곳곳에 밤이 떨어져 내린다.
투-둑 거리며 떨어지는 알밤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나무 아래 집엔 어느샌지 윤기나는 밤알들이 보기 좋게 깔린다. 청살모들이 신이 났지만 다 어디로 간 건지 이젠 청살모 보기도 어려워 누가 줍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깔려 있기가 일쑤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외지 사람들의 발걸이 끊이질 않는다. 바람 쐴 겸 나섰다가 들리는 이들도 있고, 아예 해마다 들리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승용차 여러 대를 나눠 타고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승합차에 함께 타고 오기도 한다. 물론 밤을 줍기 위해서다.
예전 같으면 밤도 한 농사라 남의 밤나무 아래엔 서로 얼씬을 안했는데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주인이 있어도 다른 농사일로 밤까지 신경을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먹을 것도 흔해져 예전처럼 남 줍는 것을 탓하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신이 났다. 모처럼 도시에서 사골을 찾아와 밤을 주으며 자연의 은총을 만끽하는 것이야 얼마나 좋고 필요하랴만, 대개는 정도를 벗어나기 일쑤다. 아무나 줍는 사람이 임자라는 투로 주워도 되냐 묻는 법도 없고, 밤을 줍는데 가리는 것도 없다. 눈엔 온통 밤뿐인지라 남의 밭에 들 가 곡식을 발로 밟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다.
많이 달렸다 싶으면 아예 나무로 올라가 모조리 털기도 한다. 그렇게 다니다 애호박이나 늙은 호박이 보이면 이게 웬 떡이냐고 뚝 따서 가방에 넣기도 한다. 무공해 곡식이라고 좋아하면서 대추, 감등 보이는 대로 맘대로 딴다.
까짓 밤 주워 가는 것까지 뭐랄 맘 없던 마을 사람들의 신경이 하나둘 곤두서기 시작한다. 농사야 일년 농산데, 그렇게 지은 농사로 일년을 먹고 살아야하는데 밤에 눈이 팔린 도시 사람들이 들어와 농작물을 밟아대고 곡식에 손을 대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조심하라 점잖게 타이르기도 하고, 나가라고 고함을 치기도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 안 맞는게 다행인데 사람들이 뭐라 하면 시골 인심도 이젠 야박해졌다고 푸념들을 한다. 남의 나무 밑에서 밤을 줍고 남의 곡식을 아무 생각 없이 따는 것은 시장을 지나가다 과일이 많다고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그냥 집어드는 일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전자제품을 파는 상점에서 값을 치르지 않고 물건을 집어들고 나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다 임자가 있는 물건이고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라고 한다면 아무런 차이가 없는 일이건만 시골을 찾는 도시인들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저, 모처럼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함께 시골을 찾아왔습니다. 어디 밤이나 도토리를 주을 곳이 없는지요?”
누구라도 마을 사람에게 먼저 묻고 가능한 주인을 만나 양해를 구한 뒤 밤값을 지불하던지 아니면 주은 밤을 주인에게 드리고 얼마를 얻든지, 그런 일이 당현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밤이 흔한 계절에 밤 한번 줍지 못하고 가을을 보내는 도시인들의 삭막함이 안스럽게 여겨지면서도, 생각 없이 찾아와 마구 짓밟고 가는 도시인들의 생각 없음을 보면 그런 생각도 이내 지워지고 만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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