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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 논농사를 짓기로 했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286 추천 수 0 2002.01.05 2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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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09. 논농사를 짓기로 했다

 

몇년전 두어해 밭농사를 하다가 항복하듯 그만둔 적이 있던지라,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두어 마지기, 흉내내기로라도 논농사를 배워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상농은 땅을 가꾸고, 중농은 곡식을 가꾸고, 하농은 잡초를 가꾼다.’했거늘, 몇 년 전 농사 경험에 비춰 보면 나는 매번 잡초한테 지고 마는 영락없는 하농, 그것도 최하농에 지나지 않았기에 논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진 생각은 대단할 것이 없었다. 그저 최하농을 면하자. 그런 것이었다. 

농부의 손이 여든여덟번 손이 가야 쌀이 된다는 힘들고 긴 여정의 쌀농사, 한번 그 길에 올라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함께 농사를 지며 농사의 어려움과 무모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씨를 뿌리는 성실함과 묵묵함을 배워보고 싶었다. 

볍씨를 넣는 일부터, 아니 못자리 흙과 모래를 마련하는 일부러 병철씨와 왕근씨의 도움을 입어야 했다. 이런저런 일정에 매이다 보니 매번 일을 같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짬이 날 때 잠깐잠깐 돕는 것이 전부였다. ‘동냥농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볍씨를 담던 날, 학교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다 함께 일을 거들어 주었다. 소리, 선아, 규성, 아름, 주현, 원석이. 아이들의 손은 얼마나 바지런하던지, 어둠이 내리도록 볍씨 담는 일은 계속되었다. 

 

모판을 논으로 옮겨 못자리를 만들던 날, 사위 일을 도우러 나온 이학기 씨가 한마디 하신다. “옛부터 논자랑 말구 모자랑 하랬어!” 

‘논자랑 하지 말고 모자랑을 하라’ 귀한 가르침이었다. 교회의 규모와 교인들 숫자 자랑 말고 굳이 자랑하려면 그들의 신앙 상태를 자랑해야 하는거구나. 그렇게 옮겨 새겼다. 

드디어 모를 내는 날, 고집부려 손모를 내 봐야지 했는데 그렇질 못했다. 논에 갈잎도 꺾어 넣고 손 모를 심어 농사다운 농사를 져 봐야지 했는데 마음뿐이었다. 마음이 간절했다면 왜 못했을까만 바쁜 일정을 핑계 삼으며 병철씨 기계손을 빌렸다. 한 다랭이 논만을 손모를 위해 비워 두었을 뿐이었다. 

모를 심고 난 며칠 뒤 논을 보러온 병철씨가 논에 물이 부족하다며 논의 물을 잘 살피라 한다. 

“논에 물이 마르면 안되나 보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농사 짓는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흉허물없는 사이. 물었더니 “그럼요. 논물은 꿈속에서도 마르면 안되요.” 하는게 아닌가. 논물은 농사꾼 꿈속에서도 마르면 안 된다. 농사꾼에게 곡식은 자식이라는 말, 자식 죽는 건 봐도 곡식 죽는 건 못 본다는 말. 농사꾼이란 그런 사람이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매번 머리 숙여 배운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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