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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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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줬으면 그만이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지고 마는 청천벽력보다는, 잔잔하게 여운이 이어지는 울림이 감동에 가깝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한동안 우리 마음에 나직한 감동을 일으켰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치는 일, 그럴수록 그분의 모습은 은은한 향기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열아홉 살에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진주에서 50년간 한약방을 운영한 분입니다. 지극한 정성에 따른 입소문 때문이었겠지요, 한약방은 각처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점심시간에는 빵을 나눠주기도 했다지요.
가난 때문에 하고 싶었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아픔 때문이었을까요, 이십 대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에게 남몰래 장학금을 주기 시작한 것이 한결같이 이어졌고, 사십 대에는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서 세운 학교를 나라에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지역 사회의 문화, 노동, 여성, 역사, 예술, 인권단체들을 꾸준히 지원한 것도 물론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담은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 표지는 두어 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라는 책의 부제목이 먼저 눈에 띕니다. ‘부자’ 앞에 붙을 수 있는 형용사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부자’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붙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아름다운 부자’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다른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한 노인의 뒷모습입니다. 단정한 뒷모습의 노인이 거리를 걸어갑니다. 그의 걸음새가 특이하다는 것은 뒷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화장이나 성형을 하기도 하고, 까치발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 표지에 담긴 모습은 뒷모습입니다. 따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사진이 연출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분의 마음가짐이 의도하지 않고 찍은 사진 속에 담긴 것이겠지요.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의 제목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책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스님이 눈보라가 치는 추운 겨울날 고개를 넘어 이웃 마을로 가는 중에 마주 오는 거지 하나를 만납니다. 거지의 행색을 보아하니 그냥 두면 얼어 죽겠다 싶어 발길을 멈추고 자기의 외투를 벗어줍니다.
쉽지 않은 고민 끝에 외투를 벗어줬는데 그 걸인은 당연한 듯이 옷을 받고는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스님은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어찌 고맙다는 인사 없이 갈 수 있는가 싶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여보시오.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는 해야 할 것 아니오?” 했더니 걸인이 “줬으면 그만이지, 뭘 칭찬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스님에게 큰 깨달음이 되었다는 것인데, 김장하 선생의 깨달음이 되기도 했던 것이었겠지요.
수 백억이라 짐작을 할 뿐 얼마인지조차 모를 거액을 잠시 자신에게 위탁된 돈이라 생각하며 사회로 흘려보낸 위대함이,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한 마디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교차로> 202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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