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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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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숨 막히는 길목
우리말을 생각하면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길에 관한 말도 있습니다. ‘건널목’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건널목이란 ‘철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 혹은 강·길·내 따위에서 건너다니게 된 일정한 곳’을 말합니다. 대개 건널목 앞에는 신호등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줍니다.
‘건널목’은 ‘건너다’라는 말과 ‘목’이 합해진 말로 짐작이 됩니다. ‘목’이라는 말이 ‘다른 곳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통로의 중요하고 좁은 곳’을 이르는 것이니, ‘건널목’이라는 말은 특정 지역이 갖고 있는 의미를 무엇 하나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가장 간결한 말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싶습니다.
‘오솔길’이라는 말은 어감부터 정겹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오솔길’이란 말도 ‘오솔하다’와 ‘길’이 합해진 말일 것입니다. ‘오솔길’을 두고도 ‘오솔하다’는 말은 익숙하지 않지만, ‘사방이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오솔길을 걸어가면 깊은 사색의 바다에 이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뒤안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늘어선 집들의 뒤쪽으로 좁게 난 길’을 뜻하지만,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고 다른 것에 가려져 있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역사의 뒤안길’ ‘인생의 뒤안길’ ‘축제의 뒤안길’ 등으로도 쓰이니까요.
외국 여행을 하는 중에 낯선 도시를 찾게 되면 큰 도로를 걷는 것보다는 그로부터 서너 걸음 물러선 곳에 있는 뒤안길을 걷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뒤안길’이라는 말은 ‘굽어서 휘어들어간 곳이 깊다’라는 ‘후미지다’의 뜻을 가진 ‘후밋길’과도 가깝게 느껴집니다.
길과 관련 말 중에 ‘길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서는 첫머리’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곳’ ‘일이나 시기가 바뀌는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길과 관련하여 우리가 그중 흔하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던 중 눈에 들어온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배당 초입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키는 작지만 품이 넓은 제법 의젓한 소나무입니다. 소나무 허리춤에는 겨울을 나는 나무에게 옷을 입힌 듯 짚을 두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 소나무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당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길고양이였습니다. 고양이는 그곳에 앉아 가만히 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뭔가를 응시하고 있었지요.
그런 고요도 흔치 않겠다 싶었습니다. ‘우수’도 지났으니 볕은 갈수록 따뜻해지고, 바람은 사뿐 가벼워지고, 아직 남아 있던 응달의 얼음장은 슬며시 자취를 감출 것이고, 고양이 바로 앞에 있는 영춘화는 함성처럼 노란 꽃들을 피워낼 것입니다.
온 몸으로 봄을 예감한 고양이는 자기 발걸음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봄을 바라보고 있었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숨 막히는 골목이 있다면, 봄이 오는 봄의 길목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교차로> 202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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