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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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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얼굴
권사님은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계셨다. 일전에 불쑥 찾아뵀을 때 집에 안 계셨고, 다음날 전화를 드리자 하필이면 평소에 잘 안 가던 마을회관에 있었다며 크게 아쉬워했던 터라, 이번엔 전화부터 드렸다. 백발을 가리기 위해서라 하셨는데, 평생 멋 내는 일과 거리가 먼 시간을 살아오신 권사님이 슬쩍 멋을 내신 듯싶었다.
격의 없는 마음으로 가는 길에 메밀묵을 샀고, 권사님과 작은 밥상에 둘러앉았다. 감사 기도를 드리는 마음이 각별하다. 귀는 어둡고 눈은 흐리고 숨은 가쁘지만, 권사님은 기도 한 마디마다 아멘을 빠뜨리지 않으셨다.
“지가 밖에 나갈 일이 있남유. 오랜만에 메밀묵을 먹으니 참 맛있네유.”
무엇보다 치아가 성치 않은 권사님을 위해 떠올린 메뉴, 권사님은 정말 맛있게 메밀묵을 드셨다. 첫 목회지 단강은 외지고 궁벽한 시골인데도 손님은 참 많았다. 때마다 권사님은 뚝딱 칼국수를 만들기도 하고, 만두를 빚기도 하셨다. 마당에 건 솥은 크기도 커서, 웬만한 손님은 그 솥이 감당을 했다. 맛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권사님이 차리는 음식은 무엇이든 맛있었다. 그렇게 받은 큰 사랑에 비하면 메밀묵은 너무도 약소하다.
“지가 대접을 해야 하는데, 대접을 받았네유.”
겸연쩍게 웃으시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하던 권사님이 봉투 하나를 건네신다. “평생 목사님께 귀한 걸 받기만 했어유. 그 땐 가진 것도 읍었구, 전할 줄도 몰랐어유. 꼭 한 번은 뭔가를 드리구 싶었어유.”
권사님께 받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물리는 손길을 어디서 힘이 나는지 권사님이 물리신다.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이 예가 아니다 싶었다. “좋은 일에 잘 쓸게요.” 권사님의 고마운 마음을 고맙게 받기로 했다. 내게 권사님은 그렇듯 부족한 사람에게 평생 사랑을 전하신 분이시다.
다시 돌아서는 시간, 권사님과 사진을 찍었다. 쭈그러진 얼굴을 뭣 하러 찍느냐고 했지만, 나란히 사진을 찍는 것을 권사님도 좋아하셨지 싶다. 어찌 권사님의 얼굴을 잊을까만 행여 흘러가는 세월 따라 지난 시간들이 가물가물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비가 오는데도 밖으로 나와 끝까지 손을 흔드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떠올리는 일에. 2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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