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단강의 성탄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120 추천 수 0 2002.04.23 11:10:40
.........
1891  단강의 성탄절

작은 시골마을에도 성탄이 왔다. 마을 어른 생일에도 동네 사람들을 청해 같이 밥을 먹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드님의 생일, 그냥 보낼 수가 없는 날이다.
어느날 병철씨가 자신의 세렉스 트럭을 몰고 가더니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실어왔다. 그리고는 예배당 마당 한 가운데에 내려놨다.
객토 작업을 하는 논둑에서 미리 보아두었던 돌로 포크레인이 실어주었다고 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가 없는, 넓적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였다. 성탄절에 마당에서 떡메로 인절미를 치기로 선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단다. 아직 성탄절까진 많은 날이 남았지만 병철씨는 벌써부터 성탄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석이 할머니는 쌀을 한 말 가지고 오셨다. 성탄절에 마을 사람이 드리는 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누군가가 성탄절에 쌀을 드린다면 어찌 그 쌀이 정성스럽지 않겠는가만 원석이 할머니가 전하는 쌀이 남달랐던 것은 원석이 할머니는 절에 열심인 분이기 때문이다.
방앗간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그 분도 분명 봉투를 전하셨을 텐데. "애들 과자락두 사 줘." 하시면서.
햇살 놀이방도 더는 아이들이 없어 문을 닫았고, 그나마 있던 아이들도 여러 명 전학을 가버려 남은 아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데다 교회학교 선생님이 따로 없다. 천상 성탄축하순서 준비는 아내 몫이 되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러 날 몸과 마음이 분주했다.
순서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성탄 장식을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성탄이 화려하게 들뜨는 날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었고, 올해는 더더욱 어려움을 당한 이들이 많지 않은가. 따뜻한 마음을 모아 허전함을 덮기로 했다.
만두를 빚는 날. 놀이방엔 방안 가득 사람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교우들은 물론 마을분들도 같이 모여 마음을 나누었다. 서로의 손에서 만들어 지는 모양이 제각각인 만두는 쉽게 쉽게 쟁반을 채워갔다. 남는 건 괜찮지만 음식이 모자라면 안되지, 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웃음꽃도 시들 줄을 모른다. 방안을 채워가는 만두 속엔 어느새 성탄의 기다림이 가득 담긴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우리 얼굴 예쁠씨고!>. 함께 모여 옛 물건을 만드는 시간이다. 미리 잘 추려놓았던 짚단을 들고 동네 어른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미리 꽈둔 새끼줄을 챙겨오는 분들도 있다. 짚신을 삼는 분도 있고, 일하는 소의 입을 가리는 소망을 짜는 분도 있다. 삼태기를 만드는 분이 있는가 하면 계란 꾸러미를 만드는 모습도 보인다. 오래전에 사라진 물건들, 기억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옛 시간들. 그러나 함께 모여 옛 물건을 만들다 보면 시간이 거꾸로 발걸음을 돌린듯 많은 기억들이 돌아온다. 지나가 는 시간이 보이는 듯도 하다.
모인 사람 스스로가 심사위원이 되어 제일 잘 된 물건을 뽑고 순서를 상을 드린다. 삽, 괭이, 호미, 호구, 낫 등 농기구가 상품이다. 성탄준비를 하던 아이들이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당에선 인절미를 찧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만든 떡메가 힘을 쓴다. 시루에 찐 찹쌀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두개의 떡메가 돌아가며 내리친다. 젊은 사람도 찧어보고, 어르신들도 찧어보고. 힘은 젊은이가 좋아도 장단은 어른을 못 따 른다.
모두가 둘러서서 구경을 하다 다 찧은 떡을 나누어 먹는다. 떡메로 바로 찧어 먹는 인절미의 맛이란 먹어보지 않은 이들은 짐작을 못할 맛이다.
어느새 날이 저물며 드디어 성탄축하행사. 서울서도 내려오고, 원주에서도 찾아오고, 외국인 근로자로 와있는 네팔 사람들도 찾아오고, 마을 사람들과 교우들, 작은 예배당이 가득하다.
성탄이란 본래 먼 길을 걸어 만날 사람을 사랑으로 만나는 날. 그리움으로 단강을 찾은 사람들을 고맙게 만나 함께 성탄축하의 시간을 갖는다. 뒤에 벗어놓은 신발들은 모인 사람들의 두 배. 마구 엉겨있는 모습이 보기에도 정겹다.
박수와 웃음이 이어지는 순서와 순서들. 순서를 맡은 아이들마다 이날의 기억이 평생으로 남기를. 축하순서가 끝나갈 무렵 어김없이 나타난 산타! 아이들의 눈이 별빛처럼 빛난다. "단강 엔 산타가 없어요"라는 말을 아픔으로 기억하고 해마다 단강을 산타로 찾아오는 고마운 손길. 포장된 선물보다도 빛나는 꿈을 선물하고 돌아간다.
촛불 하나씩을 밝히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마음으로 새기는 성탄의 의미와 사랑으로 나누 는 성탄 인사. 성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이천년 전 첫 성탄의 밤도 이렇지 않았을까. 적어도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11 한희철 911.말 못하는 아저씨 한희철 2002-01-02 4380
910 한희철 910.삶의 구조 한희철 2002-01-02 4333
909 한희철 909.손목시계 한희철 2002-01-02 4349
908 한희철 908.눈썰매 한희철 2002-01-02 4425
907 한희철 907.차가 한대 생겼다 한희철 2002-01-02 4363
906 한희철 906.눈오는 날 한희철 2002-01-02 4327
905 한희철 905.새댁의 환갑 한희철 2002-01-02 4393
904 한희철 904.물방아 한희철 2002-01-02 4348
903 한희철 903.개구리 한희철 2002-01-02 4369
902 한희철 902. 가족 한희철 2002-01-02 4360
901 한희철 901.할머니의 털신 한희철 2002-01-02 4349
900 한희철 900.쏜살 한희철 2002-01-02 4341
899 한희철 899.까망이 한희철 2002-01-02 4367
898 한희철 898.광철씨네 김장 한희철 2002-01-02 4369
897 한희철 897. 전화 한희철 2002-01-02 4379
896 한희철 896. 쉽지 않은 마음 한희철 2002-01-02 4378
895 한희철 895.인형 한희철 2002-01-02 4468
894 한희철 894.기르는 재미 한희철 2002-01-02 4373
893 한희철 893. 감사절 한희철 2002-01-02 4383
892 한희철 892. 자매 한희철 2002-01-02 4426
891 한희철 891.요령잡이 한희철 2002-01-02 4327
890 한희철 890.한 사람 한희철 2002-01-02 4387
889 한희철 889.우리집에 놀러와 한희철 2002-01-02 4353
888 한희철 888.꿈 한희철 2002-01-02 4378
887 한희철 887.현판 한희철 2002-01-02 4346
886 한희철 886.불쑥 한마디 한희철 2002-01-02 4382
885 한희철 885.기도가 달라졌어요. 한희철 2002-01-02 4382
884 한희철 884.생활고가 심하겠네요? 한희철 2002-01-02 4370
883 한희철 883.사랑의 초대 한희철 2002-01-02 4391
882 한희철 882.아름다운 만남 한희철 2002-01-02 4352
881 한희철 881.연민과 분노 한희철 2002-01-02 4377
880 한희철 880.이 속장님의 기도 한희철 2002-01-02 4362
879 한희철 879.남편의 환갑날 한희철 2002-01-02 4469
878 한희철 878.나침반 한희철 2002-01-02 4373
877 한희철 877.가장 더딘 걸음으로 한희철 2002-01-02 4420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