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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못하는 식물도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827 추천 수 0 2002.07.30 16: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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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말 못하는 식물도  

예배당 현관에서 예배실로 오르는 중간 계단에는 이런저런 화초들이 모여 푸른빛을 뿜어 낸다. 예배하러 오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신앙도 푸르게 살아있기를 바란다는 듯 마음껏 푸른빛을 선사한다. 전에 예배당을 사용하던 독일교인들이 키우던 것부터 새로 들여놓은 것까지 유리창이 있는 한 쪽 벽을 이름과 키가 다른 화초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화초들 중 한 쪽 구석에 유난히 큰 화초가 있었다. 화초들 사이에 별명을 지었다면 보나마나 '꺽다리'였을 게다. 야자나무를 닮은 화초가 야윈 줄기로 삐쭉 솟아올랐는데, 얼마나 솟았는지 더 이상은 천장에 닿아 자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머리 부분을 천장에 쳐박고 있는 형국이 보기에도 딱해 보였다. 그런데다가 그냥 놔두면 옆으로 쓰러지겠다 싶어 허리 한 복판을 줄로 묶어 한 쪽 벽에 고정시키고 있는 처지였다. 다른 화초들과는 달리 볼 때마다 안쓰럽게 보이고는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제안을 했다. 그 꺽다리 화초를 1층으로 내리고 계단 사이의 공간으로 자 라게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당연하게 들리는 얘기였다. 키 큰 화초를 천장에 닿도록 중간계단에 둘 것이 아니라 1층으로 내리면 아직도 여유 공간이 많아 한참을 마음껏 자랄 수가 있었다.
토요성경공부를 마치고 교우들께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가 공감, 교우 몇 분과 함께 화초를 아래층으로 옮겼다. 계단 사이로 자리를 잡아 제대로 놓으니 보기에도 좋았다. 가끔 아이들이 계단을 타고 놀아 그러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고는 했는데, 화초가 난간 일부분에 놓이니 나니 그런 걱정을 더 할 필요도 없어졌다.
자리를 잡고 나서 화초를 보니 세상에 딱한지고! 화초의 모양이 말이 아니었다. 마음껏 자라고 퍼져야 할 잎이 더 이상 천장에 막혀 자라지를 못하자 저들끼리 마구 엉겨 있었다. 잎새가 다른 잎새 속으로 들어가 이상한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선시대 궁중여인들 머리 땋은 모양 같기도 하고, 얽히고 얽혀 스스로 월계관을 만들어내는 것도 같았다.
조심스레 얽힌 것을 풀어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로 얽힌 채 많은 시간이 지나 서로 꼬고 있는 잎새를 풀어낼 때마다 어떤 것 찢어지고 어떤 건 꺾이고 했다. 그래도 암호처럼 얽힌 잎새를 모두 풀어내고 나자 잎새들도 비로소 "푸-후!"하고 막혔던 숨을 길게 토해내는 것 같았다.
"사람의 일이 얽히니 식물들도 그랬던 것 같네요."
"잎새를 편 화초처럼 우리교회의 모든 일들도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같이 일한 교우들이 한 마디씩을 했다. 얽힌 잎새를 폈다 할지라도 제대로 모양을 되찾기 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화초는 마침내 자기 모양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 동안의 모든 아픔을 딛고 주님의 교회도 주님의 교회다움을 되찾아갈 수 있기를, 얽힌 것을 풀어내는 마음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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