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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 그대들에게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6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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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97. 그대들에게

 

그대들은 올해도 어김이 없었습니다. 어김없이 때 되어 단강을 찾았습니다. 굳은 약속이 있었던 것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은 이미 약속 이상의 것이었나 봅니다. 

한결같은 삶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이때, 그대들의 한결같은 걸음은 얼마나 반갑고도 소중한 것인지요? 

하필이면 장마소식과 함께 그대들은 찾아왔습니다. 한유하게 사는 사람들에게야 긴 비가 그럴듯한 낭만의 기회일지 몰라도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겐 어렵고도 쉽지 않은 시간들입니다. 

때로 자연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해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며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곤 합니다. 장마 또한 그중의 하나인지라 우린 한동안 내리는 비를 그저 바라보며, 혹은 그냥 온몸으로 장대비를 맞으며 몇 개 물꼬를 트며 자연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결국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뿐임을 배우 게 될 겁니다. 

 

자식들도 다 떠난 사골입니다. 늙은 부모 안스러워 차마 뒤돌아서지 못하는 자식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들의 등을 떠민 것은 우리들이었습니다. 

“어여 가. 가야 살어!” 

왜 우리라고 기둥 같은 자식들과 같이 살고픈 맘 없었겠습니까만 살아보니 알겠는걸요,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이라는걸요. 쓴웃음이 납니다만 그건 억지로라도 자식들을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곡식 심고 김매고 새 쫓고, 힘에 부친 일을 하면서도 그렇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고꾸라지듯 잠에 빠져 들 때도 한결같이 떠오르는 자식들 혹은 며느리며 토끼 같은 손주들... 

회사 잘 댕기는지, 학교 잘다니며 공부 잘하는지 늙고 말라 더는 없을 것 같은 눈물이 때마다 터져 베겟님 적시는 하많은 밤을 누가 알까만 그래도 크게 아쉬워하진 않습니다. 

익숙해 지기도 했거니와 그게 우리의 몫이며 그나마 그것이 우리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가난한 우리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런 것 밖에 별로 없기도 하구요.

쏠쏠하고 허전한 이 땅에 그대들이 변함없이 찾아주니 고맙기 이를데 없습니다. 어떤 땐 막내아들 같기도 하구 큰손주 같기도 해 주책없는 줄 알면서도 ‘그대들’이라 부릅니다. 허물삼지 말고 편하게들 받아 주세요.

 

우리 몸은 우리가 알거니와 실은 병원에서도 크게 손댈것이 없는 몸들입니다. 기계도 오래되면 낡고 닳아 망가지는데, 한평생 된 일속에 내던진 우리 몸이 성하길 바라는 것은 오히려 욕심이지요. 우리 몸 우리가 알면서도 때가 되면 그대들을 찾았습니다. 아픈 몸 편하게 맡기고 누워 그대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우린 무엇보다도 친절한 손길이 그리웠습니다. 따뜻한 관심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아픈 곳이 어디냐 어떻게 아프냐 세세하게 아픈 마음으로 물을 때 어쩌면 그것으로도 족했는지 모릅니다. 

아주 어릴적,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우리에게도 어릴적이 있었지요. 우리의 아픈 몸을 쓰다듬어 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우리는 아직 기억합니다. 세월이 흘러 흘러 우리가 어머니 나이가 되었어도 어찌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손길은 말 그대로 약손이었지요. 그대들 따뜻한 손길은 어릴 적 어머니 손길 같았습니다. 아픈 몸보다도 마음을 먼저 낫게 했던 자애로운 어머니 손길 같았습니다. ‘필라멘트가 끊어지고 전류가 흐르지 않는 텅빈 전구’같았던 우리들의 몸속으로 뭐랄까요 빛 하나가 다시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봄햇살이 구석구석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구요. 정말 몸 이상으로 마음이 개운했습니다. 그대들 덕분으로 한결 좋아진 몸이지만 그대들 다녀간 뒤 또다시 일 속에 파묻히면 몸이야 도로 힘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대들에 대한 고마운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지치고 힘든 우리들의 몸과 맘을 든든하게 붙잡아 줄 것입니다. 

 

아무래도 올해의 농촌봉사활동은 무 뽑는 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학생들 안 왔으면 정말이지 마을의 무를 어떻게 다 뽑았을까 생각이 안될 만큼 너무도 긴요한 도움이었습니다. 미끈하게 잘 자란 무가 장마를 앞두고 썩어 들어갈 참이었는데, 그대들의 손길은 적의 총 공세를 앞둔 고립된 부대를 찾아온 원군처럼참으로 시기적절하고 고마운 손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못생긴 다리를 왜 무에다 빗대는지 모르겠다고, 몇며칠 무작업을 그대들이 농을 할 때 그 얘기가 재미있게 들렸습니다. 하기야 조선무가 아닌 미끈한 단무지 무였으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하지요. 

우리들의 삶 속에는 잘못된 선입견으로 이름다운것을 추하다 하기도 하고, 소중한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길 때도 있지요. 무를 캐보지도 않고 무조건 못 생겼다 하는 많은 사람들 처럼요. 그대들이 땀 흘림 이 땅 농촌만 해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곳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 농촌은 우리 모두의 고향이지요. 땅을 일궈 먹는 걸 지어내니 우리 모두의 뿌리가 여기에 박혀있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무다리는 무조건 못생긴 다리, 농촌을 그저 천덕꾸러기로 여기는 마음들이 안타깝습니다. 

 

내리는 장마비를 맞으며, 간간이 쏟아지는 뜨거운 볕을 맞으며 그대들은 묵묵히 일을 했습니다. 내 자식이라면 일을 말리지 않았을까 싶게 비와 악조건이었지만 그대들은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무와 마늘을 뽑고, 피살이를 하고 담배 젖순을 따느라 어느새 그대들의 손과 발은 벌겋게 풀독이 올랐지요. 밤마다 끙끙 앓으면서도 다음날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또 일을 나가고... 각자 자기 집에선 곱게 자란 귀한 자식들일텐데 잘 알면서도 모르는듯 일을 부탁하는 우리가 미안하고 안스러워 죄를 짓는 것만 같았습니다.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방학을 하면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 많을까요? 책에서 벗어나 마음껏 놀고싶기도 할거구,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할거구. 밀린 잠을 잘 수도,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요, 젊은 시절 공부를 하며 방학을 기다려 이뤄둔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대부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한 그대들로선 부모형제가 어서 보고도 싶었을 텐데요. 

그 모든일 뒤로 미뤄두고 어찌보면 아무 상관도 없는 단강을 찾아와, 자기 돈 자기가 내고 이 작고 외진 마을을 찾아와 힘들고 고된 일을 나서서 하다니요. 

누가 상주는 일도 아니요, 크게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아무러면 어떠랴 일을 하다니다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들 모습은 바보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어디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대들은 거룩한 바보들, 이 세상을 거꾸로 걷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때로 이 세상이 자기만 아는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거룩한 바보들, 나보단 다른 사람을 위해 땀을 먼저 흘릴줄 아는 바로 그대들과 같은 사람들임을 고마움으로 깨닫습니다.

 ‘상농은 땅을 가꾸고, 중농은 곡식을 가꾸고 , 하놓은 잡초를 가꾼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대들 농사일에 서툴지라도 굳어진 마음. 마음들, 사람들 마음의 밭을 일구는 상농이 되기를 빕니다.  

눈내리는 겨울쯤 편한 마음으로 다시한번들오세요. 산에 올라 산토끼도 몰고, 사랑방 화룻불에 고구마를 묻고 긴 밤 이야기도 나눕시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짚신을 어떻게 삼는지 지게는 어떻게 만드는지 정도는 알려줄 수도있을 것 같습니다. 아는게 별로 없는데다 그런 일에 젊은이들이 관심을 둘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잠을 자듯 편하게 쉬는 한계절. 또한 알맞게 밤이 길기도 하니 그런저런 일들은 좋은 시간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고맙고 든든합니다. 힘들게 농사를 짓지만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큰 사랑으로 알려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고마운 그대들을 거룩한 바보들로 기억합니다. 언제라도 좋은 삶 꾸리고 이 세상 참 주인 되기를 빕니다. 

96,6,30, 단강리 주민을 대신하여 한희철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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