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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없어진 학용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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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808. 없어진 학용품


쿵당쿵당. 웬일인지 녀석들 뛰노는 소리가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면 교회에 들러 숙제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러다간 뛰놀기도 한다. 참 장난이 심한 녀석들이다.
또 한참을 어질러놓고 간 것이 아닐까 싶어 예배당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이 없다.
“모두들 갔구나 싶어 그냥 나오려는데 사무실 창문이 열려있다. 열린 창문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찔했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댔고 어지러웠다.
녀석들은 사무실 창문을 타고 넘어가 캐비넷 문을 열고 있었다. 안 열리는 문을 힘으로 당겨 아래쪽이 휘 벌어져 있었고, 그리로 손을 넣어 손닿는 대로 학용품을 꺼내고 있었다.
“아니 너희들...” 더 이상 말을 못 잇고 내가 들킨 듯 당황하여 후다닥 빠져 나왔다.
문방구도 없는 작은 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학용품을 준비했다가 이런 저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가능한 넉넉하게 전하려고 노력을 해왔다. 때론 도시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것 같았고, 혹 그런 일이 교육상 어떨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계기라도 있으면 그런 일을 이유삼아 학용품을 전하곤 했고, 그것이 함께 사는 아이들을 향한 작은 애정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는데, 녀석들은 그런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실망과 심한 허탈감, 이제껏 아이들을 향해 가져왔던 관심과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
푹푹 한숨만 내쉬는 내게 이유를 들은 아내가 아이들을 만나 결정한 것이 자진반납.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가져간 것들을 반납하기 시작했다. 텅 비어버린 캐비넷에 비하면 회수된 것은 적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아이들까지. 그러고 보면 그 전에도, 또 다시 어지러운 생각.
한동안 아이들 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 어색함을 먼저 털은 건 아이들이었다. 다행인지 병인지. (얘기마을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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