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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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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4 야생초 편지
독일에 와서 그 중 답답한 것이 책을 구하는 일이다. 단강에 있을 때는 책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아니 거의 유일한 취미에 가까웠다.일주일에 한 두 번 원주 시내를 나가면, 대개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동아서관'에 들르곤 했다. 원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원주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천천히 둘러보며 책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읽을 만한 책이 눈에 띄면 책을 샀는데, 서점에서 그냥 나온 날이 많지 않았으니 꾸준히 책을 산 셈이다. 내가 쓰는 용돈의 절반 이상은 그렇게 책을 사는데 들어가곤 했다. 줄곧 책을 사는 내게 아내는 '이담에 헌책방을 할거냐'고 핀잔을 줄 때도 있었지만, 그런 핀잔도 싫진 않았다. 언젠가 필요한 이들에게 책을 나누어준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것인가.
동아서관에는 잘 아는 장로님이 계셔서 들를 때마다 차 한 잔씩을 대접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장로님을 통해 책값의 일부를 감해주는 배려를 받기도 해, 이래저래 서점을 들르는 일은 일상처럼 되곤 했다.
책과 가까웠던 것은 시골에 사는 한계를 그렇게 극복하고 싶었던 발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달포 전, 부산 '기쁨의 집' 김현호 집사님이 부친 책을 받았다. 몇 권 필요한 책을 주문하였는데, 집사님이 다른 책 몇 권을 선물로 같이 보내왔다.
이렇게 멀리 떠나와 있다보니 책을 선물로 받을 때가 그 중 반갑다.
집사님이 보낸 책 중에 '야생초 편지'라는 책이 있었다.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 뒤 궁금해하던 책이었다. 시국이 어수선할 때 엉뚱하고 억울하게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2개월 동안 옥살이를 한 황대권 씨가 감옥에서 쓴 책이다. 그는 모진 고문을 받고 징벌방 생활을 하던 중 교도소 벽에 도배된 <가톨릭신문>의 천주교 순교사를 읽고선 베드로를 뜻하는 '바우'(Bau)라는 세례명으로 종교생활을 시작한다.
'야생초 편지'는 감옥에 갇힌 그가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종의 풀들을 가꾸며 그 야생초에 대해 쓴 책이다.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야생초들에 대해 비로소 갖기 시작한 관심, 갇힌 몸이 되어 그는 비로소 열린 세상을 본다. 작은 풀 한 포기에서 하늘을 보고, 천지를 보고, 삶을 본다. 그것도 찬찬히, 진득이 본다.
자유롭다는 이유로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허투루 살고 있는지, 갇힌 자의 열린 고백을 통해 절감하게 된다. (20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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