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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4. 깨진 컵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865 추천 수 0 2005.12.17 20: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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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엌을 지나가다 우연히 보니 창가에 전에 못 보던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유리컵 안에 있는 길다란 줄기 끝에 아기 손톱 같은 파란 싹이 가득 솟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앙증맞아 보였습니다. 유리컵 가득 빽빽하게 들어찬 길쭉한 줄기도 그렇고, 줄기 아래 촘촘히 뻗어난 작은 실뿌리들도 그렇고, 줄기 끝에 피어나 창 밖 구경을 하려는 듯 서로 고개를 내밀고 선 연초록빛 작은 잎새들도 그렇고, 여느 화초 못지 않게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뜻밖에도 콩나물이었습니다. 콩나물로 반찬을 하던 아내가 한 옴큼 콩나물을 집어내 유리컵에 담아 둔 것이었습니다. 컵 속에 담긴 콩나물이 계속 자라며 노랗고 둥근 머리부분이 파란 싹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콩나물을 반찬으로만 생각했던 선입견 때문이었겠지요, 콩나물의 그런 변신이 신기하고도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유리컵 속에 담긴 콩나물 화초를 본지 며칠 뒤였습니다. 그동안 콩나물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니 컵에 물이 거반 떨어져 있었습니다. 콩나물은 물만 먹고 자랄 텐데 물이 부족하여 싹이 마르겠다 싶어 바가지에 물을 떠서 컵에 부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물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채워지기는커녕 물이 다 차지도 않았는데, 물이 줄줄 밖으로 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 붓는 일을 중단하고 컵을 살펴보았습니다. 살펴보니 그도 그럴 만 했습니다. 콩나물을 담아둔 컵은 깨진 컵이었습니다. 콩나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컵 뒤쪽이 이 빠진 것처럼 깨져 있었습니다. 깨진 컵을 버리지 않고 콩나물을 담아 화병처럼 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쪽이 깨진 컵에 물을 주었으니 높이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물이 샐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컵이 깨져 있다면 깨진 컵에 물을 채울 수 있는 높이는 컵의 높이까지가 아니라 깨진 부분까지였습니다. 아무리 컵이 커도 어느 한 쪽이 깨져 있다면 결코 물을 다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비록 뒤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물을 부어보면 대번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큰그릇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쪽이 깨져 있으면 그것이 그의 한계가 됩니다. 비록 다른 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깨져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와 국가가 발전한다 하여도 어느 한 구석 생각지 못한 곳이 깨져 있다면, 그 또한 우리의 뻔한 한계가 됩니다.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들은 우리 사회의 깨어진 부분이 어떤 곳인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컵의 크기를 자랑하기에 앞서 우리의 구석자리를 살펴 혹 깨진 부분은 없는지, 있다면 그곳부터 메우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쯤엔 우리 모두 인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5.7.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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