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2227. 복비(伏雨)는 복비(福雨)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683 추천 수 0 2005.12.21 16:55:48
.........
2227. 복비(伏雨)는 복비(福雨)다

농촌에 살며 몇 년간 벼농사를 지어본 적이 있습니다. 서너 마지기의 논에 경험 삼아 했던 흉내내기 농사였지만, 그래도 제게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벼농사를 지어보니 농사가 하늘 눈치를 살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 어려운 것이 물이었습니다. 모자라도 안 됐고, 넘쳐도 안 됐습니다. 논에 물이 어느 때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를 감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같은 마을에 사는 젊은 농사꾼에게 논물에 대해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분명하고 시원했습니다. "농사꾼은 꿈속에서도 논에 물이 마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되는 삶, 그게 농사꾼의 삶이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농사문화권 안에 있었던 우리나라로선 물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어서 비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계절마다 비에 대한 느낌도 달라, '봄비는 일비고, 여름비는 잠비고, 가을비는 떡비고, 겨울비는 술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계절마다 비를 대하는 마음이 잘 담겨있지 싶습니다.
봄에 오는 비는 일하라고 오는 비였습니다. 비가와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봄엔 거반 다였을 테니까요. 특별히 봄철엔 비가 넉넉히 와야 그 해 벼농사가 풍년이 들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봄비는 거름이다' 혹은 '봄비는 벼농사 밑천이다'라는 말도 생겨났고, 봄에 내리는 비가 풍년을 약속하다 보니 '봄비가 잦으면 동네 지어미 손이 커진다', '봄비가 잦으면 시어머니 손이 커진다' 는 말도 생겨났지 싶습니다.
봄에 비해 여름은 비교적 농한기여서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됩니다. 목침을 베고 빗소리를 들으며 낮잠에 빠져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잠이 얼마나 달았을까요. 가을에 비가 오면 햅쌀로 떡을 해먹으며 쉬고, 겨울에 비가 오면 날도 궂은데 술 생각이 나고, 그러면 친구나 이웃들과 함께 모여 술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겠지요.

비와 관련, '백중날 비가 오면 백 가지에 해롭고, 처서날 비가 오면 천 가지에 해롭다'는 말도 있습니다. '백중'과 '백 가지'가, '처서'와 '천 가지'가 어울리는 그럴 듯한 운율 안에서 특정한 때에 비가 갖는 의미를 정리한 것이 절묘합니다. 처서 때가 되면 벼이삭에 한창 꽃이 필 때인지라, 그 무렵 비가 오면 벼이삭을 쭉정이로 만들기가 십상이었습니다. '백중' 대신 '백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백 석을 감한다'는 말도 있는데, '백로' 때는 재래종 벼에 벼꽃이 필 때여서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복날 비가 오면 비에 약한 대추가 다 떨어져 대추의 고장인 충청도 청산, 보은 처녀가 부엌문 붙잡고 운다는 말이 있지만, 옛 어른들은 복비(伏雨)는 복비(福雨)라 했습니다. 한창 더울 때 비가 오면 시원하기도 하지만, 벼가 잘 자라 풍년을 기대하게 했을 테니까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삼복의 이 계절, 이 때 내리는 비를 복비(福雨)로 여겼던 옛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비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2005.7.17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41 한희철 2242. 너도밤나무 열매를 주우며 한희철 2006-01-06 3964
2240 한희철 2241. '뿔'을 좇는 세상 한희철 2006-01-06 1716
2239 한희철 2240. 엉뚱한 대화 한희철 2006-01-06 2047
2238 한희철 2239. 짧아서 아름다운 것 한희철 2006-01-06 1847
2237 한희철 2238. 웬 떡이 생기거든 한희철 2006-01-06 1654
2236 한희철 2237.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지요 한희철 2005-12-30 1717
2235 한희철 2236. '보다'와 '처럼' 한희철 2005-12-30 1697
2234 한희철 2235. 아름다운 춤 한희철 2005-12-30 1579
2233 한희철 2234 진짜는 항상 아름답다 한희철 2005-12-30 1707
2232 한희철 2233. 비꽃과 비설거지 한희철 2005-12-30 1844
2231 한희철 2232. 틈과 여유 한희철 2005-12-30 1513
2230 한희철 2231. 내가 밥상을 받지 않으면 한희철 2005-12-30 2698
2229 한희철 2230. 마음의 그레발 한희철 2005-12-30 1470
2228 한희철 2229. 우린 얼마나 같은지 한희철 2005-12-21 1636
2227 한희철 2228 원수는 원수를 부를 뿐이다 한희철 2005-12-21 1589
» 한희철 2227. 복비(伏雨)는 복비(福雨)다 한희철 2005-12-21 1683
2225 한희철 2226. 우리 손에 들린 돌멩이 한희철 2005-12-17 1617
2224 한희철 2225. 나부터 시작하자 한희철 2005-12-17 1573
2223 한희철 2224. 깨진 컵 한희철 2005-12-17 1865
2222 한희철 2223. 마지노 요새를 다녀와서 한희철 2005-12-17 2381
2221 한희철 2222.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 한희철 2005-12-17 2254
2220 한희철 2221. 독일 할머니와 무 한희철 2005-12-17 1722
2219 한희철 2220. 큰 숙제 한희철 2005-12-17 1539
2218 한희철 2219. 가장 행복한 상 한희철 2005-12-17 1573
2217 한희철 2218. 쌀 두 말로 쌀 한 말을 한희철 2005-12-17 1743
2216 한희철 2217. 별이 되는 이름 한희철 2005-12-17 1543
2215 한희철 2216. 말 한 마디 한희철 2005-12-16 1515
2214 한희철 2215. 향기로운 마음의 선물 한희철 2005-12-16 1637
2213 한희철 2214. 한사람의 박수 한희철 2005-12-16 1537
2212 한희철 2213. 아버지 한희철 2005-12-16 1588
2211 한희철 2212. 아버지의 초상화 한희철 2005-12-16 1605
2210 한희철 2211. 홀가분한 마음 한희철 2005-12-15 1534
2209 한희철 2210.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한희철 2005-12-15 1527
2208 한희철 2209. 착하게 살자고요? 한희철 2005-12-15 1565
2207 한희철 2208. 박쥐의 헌혈 한희철 2005-12-15 1565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