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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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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에는 음흉한 생각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말하지요. 낚시 바늘을 보면 미끼 뒤편에 되꼬부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이른바 미늘인데 바로 그 미늘 때문에 고기는 걸려듭니다. 미늘이 있기 때문에 물고기는 걸려든 바늘로부터 빠져나갈 수가 없게 됩니다. 겉으론 웃지만 뒤편에 미늘을 숨긴 채 다가오는 사람이야말로 ‘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달과 별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가 그랬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면서 떡을 팔고 장에서 다녀오는 엄마를 호랑이는 잡아먹고 맙니다. 떡 하나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결국 호랑이는 엄마를 잡아먹고 맙니다. 하나씩 하나씩 빼앗기는 것이 결국은 전체를 빼앗기는 길이라는 걸 호랑이를 통해 봅니다.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외딴집에 남겨진 오누이마저 잡아먹기 위해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오누이를 찾아옵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오누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호랑이는 자기 발에 분을 바르고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지요. 아무리 아이들이라 해도 어찌 분칠을 한 호랑이 발을 엄마의 손으로 알 수가 있었는지, 호랑이 목소리를 엄마의 목소리와 혼동할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오누이가 바로 우리들일 때가 있습니다. 분칠을 한 호랑이 발을 엄마의 손으로 알고, 그럴듯한 호랑이 목소리를 엄마의 목소리로 알고 문을 여는 일은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을 보면 누가 보아도 뻔한 거짓에도 속아 넘어가니까요.
전해 내려오는 우리 속담 중에 ‘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검은 속과 화려한 비단옷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속이 검으면 검을수록 그것을 가리려는 화려함은 더욱 화려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비단옷을 입었다고 덕 있는 사람이라 당연히 생각해서도 안 되고, 허름한 옷 입었다고 당연한 듯 무시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비단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무조건 검은 속을 의심할 건 아니겠으나, 비단 옷 입고 비단 같은 말을 한다 하여서 무조건 믿을 일 또한 아닌 것이지요.
비단옷을 입어 다른 이의 마음을 어지럽히느니 차라리 무명옷을 입고 무명옷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지만, 무엇보다 비단옷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두껍게 바른 분으로 감추고 다가오는 날카로운 발톱을 행여나 엄마의 손으로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바로 그런 혼동 속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2007.5.6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달과 별이 된 오누이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가 그랬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면서 떡을 팔고 장에서 다녀오는 엄마를 호랑이는 잡아먹고 맙니다. 떡 하나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결국 호랑이는 엄마를 잡아먹고 맙니다. 하나씩 하나씩 빼앗기는 것이 결국은 전체를 빼앗기는 길이라는 걸 호랑이를 통해 봅니다.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외딴집에 남겨진 오누이마저 잡아먹기 위해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오누이를 찾아옵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오누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호랑이는 자기 발에 분을 바르고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지요. 아무리 아이들이라 해도 어찌 분칠을 한 호랑이 발을 엄마의 손으로 알 수가 있었는지, 호랑이 목소리를 엄마의 목소리와 혼동할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이야기를 이어가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오누이가 바로 우리들일 때가 있습니다. 분칠을 한 호랑이 발을 엄마의 손으로 알고, 그럴듯한 호랑이 목소리를 엄마의 목소리로 알고 문을 여는 일은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거짓에 속아 넘어가는 이들을 보면 누가 보아도 뻔한 거짓에도 속아 넘어가니까요.
전해 내려오는 우리 속담 중에 ‘속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검은 속과 화려한 비단옷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속이 검으면 검을수록 그것을 가리려는 화려함은 더욱 화려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비단옷을 입었다고 덕 있는 사람이라 당연히 생각해서도 안 되고, 허름한 옷 입었다고 당연한 듯 무시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비단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무조건 검은 속을 의심할 건 아니겠으나, 비단 옷 입고 비단 같은 말을 한다 하여서 무조건 믿을 일 또한 아닌 것이지요.
비단옷을 입어 다른 이의 마음을 어지럽히느니 차라리 무명옷을 입고 무명옷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지만, 무엇보다 비단옷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두껍게 바른 분으로 감추고 다가오는 날카로운 발톱을 행여나 엄마의 손으로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바로 그런 혼동 속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2007.5.6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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