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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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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9 마음은 풍덩 뛰어들고 싶은데
별다른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서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숨이 턱 턱 막히도록 후텁지근한 날씨, 그나마 에어컨이 있는 집안에 있는 것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임을 알면서도 책 한 권을 끼고 집을 나섰다.
지친 몸을 푹 쉬게도 하지만 별다른 이유도 없이 길을 나서게 하는 곳, 고향이란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저수지를 건너온 바람이 시원하게 언덕 위로 오르는 솔숲,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허름한 평상이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굴참나무에 기대 앉아 책도 읽고 바람도 쐬고 물 위를 나는 물새도 바라보며 고향을 찾은 즐거움을 호젓하게 누리고 싶었다.
저수지로 향하다 생각지 않게 들르게 된 곳, 부곡초등학교였다. 어느 학교 야구부인지 타격 연습을 하고 있어 조금은 소란했지만, 그래도 한 바퀴 둘러보고 싶어 교문으로 들어섰다.
낮고 단출했던 교실이 번듯한 건물로 바뀌어 어릴 적 학교의 모습을 떠올리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전한 것들이 나무였다.
듬성듬성 선 리키다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만 해도 손을 맞잡은 듯 학교 주변을 둘러서서 날다람쥐 같은 친구들은 나무에서 나무를 건너곤 했는데, 흘러간 세월을 말해주듯 셀 수 있을 정도만이 남았다.
잎과 품이 넓은 플라타너스도 여전했다. 그늘 아래에서 뭔가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쉬는 시간마다 모여 공깃돌을 손등으로 올리던 어릴 적 친구들 모습으로 다가왔다. 피구를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운동회 날이면 저 운동장을 그리도 숨 막히게 내달렸던 것이었을까.... 생각들이 이어진다.
저수지로 가기 위해 철도박물관을 지나 굴다리로 향했을 때,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밀려왔다. 큰 비가 내리고 나면 얼마든지 맨손으로 붕어를 잡아 올리던 곳, 그러다가 기차가 지나갈 때면 얼른 자리를 피해 고갤 들고 한참을 올려다보던 곳, 저수지로 가는 철교 아래 다리가 고개를 숙여야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터널이 되어 있었다.
악취는 굴다리 안을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했다. 아니 더욱 역한 냄새가 났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무슨 냄새일까, 콘크리트 방호벽 너머에 있는 개울을 바라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저수지와 잇닿아 있는 개울, 그러나 개울은 전혀 개울처럼 보이질 않았다. 추석날 고속도로 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꼼짝없이 정체된 자동차들처럼, 물 위에는 형형색색의 부유물들이 가득 떠 있었다. 대단한 그림을 그리려는 듯 팔레트 위에 물감을 잔뜩 짜놓은 것 같았다. 부유물이 저수지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따로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곳을 개울이라 생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멀리 입북리 쪽에 높다랗게 선 아파트 단지가 낯설긴 하지만 저수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우렁과 조개를 잡고 마름을 찾던 곳, 벌거숭이로 멱을 감고 폐가 시원해지도록 얼음을 지치던 곳, 지금 생각해도 저수지는 어린 우리들을 계절마다 넉넉히 받아주던 푸근한 품이었다.
성급하게 핀 코스모스를 따라 저수지 가장자리 길을 걷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잘못 본 것일까 싶어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바라본다. 그런데 맞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저수지 물이 온통 녹색이었다. 저수지를 온통 파래가 가득 채운 듯 싶었다. 물에서는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역한 냄새도 끊이질 않았다.
숨을 끊어 쉴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걷기가 어려웠다.
한 무더기 피어난 연꽃들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질 않았다. 초록색 물 위에 붉은 빛으로 피어난 연꽃은 뭐라 비명을 질러대는 것만 같았다.
“누가 내 발목을 깨물고 있어요! 잘라 먹고 있다고요!”
냄새로부터 피하듯 마침 눈에 들어온 찻집 ‘노을이 질 때’로 들어선다. 찻집이 아니라 대피소에 드는 것 같다.
한 쪽 구석 창가 쪽 빈자리에 혼자 앉는다.
창밖을 통해 내다보는 저수지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기우는 하루해가 막 은가루를 뿌려대 듯 수면 위로 부서지는 모습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그러나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없이 착잡하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마음은 풍덩 망설일 것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데, 도대체 우리를 키워주었던 어릴 적 저수지는 어디까지 썩은 것일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서 언제 고향을 찾는다 하여도 변함없이 반가운 모습으로 맞아줄 수 있을까, 물을 이도 대답할 이도 없이 멍하니 저수지를 바라보는 마음엔 어지러운 질문들만 이어졌다. 2007.8.1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별다른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서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숨이 턱 턱 막히도록 후텁지근한 날씨, 그나마 에어컨이 있는 집안에 있는 것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임을 알면서도 책 한 권을 끼고 집을 나섰다.
지친 몸을 푹 쉬게도 하지만 별다른 이유도 없이 길을 나서게 하는 곳, 고향이란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저수지를 건너온 바람이 시원하게 언덕 위로 오르는 솔숲,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허름한 평상이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굴참나무에 기대 앉아 책도 읽고 바람도 쐬고 물 위를 나는 물새도 바라보며 고향을 찾은 즐거움을 호젓하게 누리고 싶었다.
저수지로 향하다 생각지 않게 들르게 된 곳, 부곡초등학교였다. 어느 학교 야구부인지 타격 연습을 하고 있어 조금은 소란했지만, 그래도 한 바퀴 둘러보고 싶어 교문으로 들어섰다.
낮고 단출했던 교실이 번듯한 건물로 바뀌어 어릴 적 학교의 모습을 떠올리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전한 것들이 나무였다.
듬성듬성 선 리키다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만 해도 손을 맞잡은 듯 학교 주변을 둘러서서 날다람쥐 같은 친구들은 나무에서 나무를 건너곤 했는데, 흘러간 세월을 말해주듯 셀 수 있을 정도만이 남았다.
잎과 품이 넓은 플라타너스도 여전했다. 그늘 아래에서 뭔가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쉬는 시간마다 모여 공깃돌을 손등으로 올리던 어릴 적 친구들 모습으로 다가왔다. 피구를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운동회 날이면 저 운동장을 그리도 숨 막히게 내달렸던 것이었을까.... 생각들이 이어진다.
저수지로 가기 위해 철도박물관을 지나 굴다리로 향했을 때,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밀려왔다. 큰 비가 내리고 나면 얼마든지 맨손으로 붕어를 잡아 올리던 곳, 그러다가 기차가 지나갈 때면 얼른 자리를 피해 고갤 들고 한참을 올려다보던 곳, 저수지로 가는 철교 아래 다리가 고개를 숙여야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터널이 되어 있었다.
악취는 굴다리 안을 빠져나왔는데도 여전했다. 아니 더욱 역한 냄새가 났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무슨 냄새일까, 콘크리트 방호벽 너머에 있는 개울을 바라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명 저수지와 잇닿아 있는 개울, 그러나 개울은 전혀 개울처럼 보이질 않았다. 추석날 고속도로 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꼼짝없이 정체된 자동차들처럼, 물 위에는 형형색색의 부유물들이 가득 떠 있었다. 대단한 그림을 그리려는 듯 팔레트 위에 물감을 잔뜩 짜놓은 것 같았다. 부유물이 저수지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따로 확인하지 않았으면 그곳을 개울이라 생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멀리 입북리 쪽에 높다랗게 선 아파트 단지가 낯설긴 하지만 저수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우렁과 조개를 잡고 마름을 찾던 곳, 벌거숭이로 멱을 감고 폐가 시원해지도록 얼음을 지치던 곳, 지금 생각해도 저수지는 어린 우리들을 계절마다 넉넉히 받아주던 푸근한 품이었다.
성급하게 핀 코스모스를 따라 저수지 가장자리 길을 걷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잘못 본 것일까 싶어 발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바라본다. 그런데 맞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저수지 물이 온통 녹색이었다. 저수지를 온통 파래가 가득 채운 듯 싶었다. 물에서는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역한 냄새도 끊이질 않았다.
숨을 끊어 쉴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걷기가 어려웠다.
한 무더기 피어난 연꽃들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질 않았다. 초록색 물 위에 붉은 빛으로 피어난 연꽃은 뭐라 비명을 질러대는 것만 같았다.
“누가 내 발목을 깨물고 있어요! 잘라 먹고 있다고요!”
냄새로부터 피하듯 마침 눈에 들어온 찻집 ‘노을이 질 때’로 들어선다. 찻집이 아니라 대피소에 드는 것 같다.
한 쪽 구석 창가 쪽 빈자리에 혼자 앉는다.
창밖을 통해 내다보는 저수지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롭다. 기우는 하루해가 막 은가루를 뿌려대 듯 수면 위로 부서지는 모습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그러나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없이 착잡하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마음은 풍덩 망설일 것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데, 도대체 우리를 키워주었던 어릴 적 저수지는 어디까지 썩은 것일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서 언제 고향을 찾는다 하여도 변함없이 반가운 모습으로 맞아줄 수 있을까, 물을 이도 대답할 이도 없이 멍하니 저수지를 바라보는 마음엔 어지러운 질문들만 이어졌다. 2007.8.1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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