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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0 배추를 뽑으며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524 추천 수 0 2007.12.09 19: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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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동안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니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집니다. 맑기로 하자면 숲이 많은 독일의 공기가 더 맑겠다 싶지만 마음을 시원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은 역시 내 나라 내 땅입니다.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쉬게 됩니다.
노란색이 주류를 이루는 독일의 가을에 비해 붉은 빛으로 물든 우리의 단풍에는 더욱 눈이 갑니다. 복잡하고 소란하고 어수선한 모습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 또한 정겨움으로 다가오니 역시 고국의 품이 좋지 싶습니다. 돌아올 곳으로 돌아왔으니 내 나라 내 땅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야겠지요.
모처럼 고향을 찾아 하룻밤 단잠을 잔 다음 날 아침, 가족들과 함께 밭으로 나갔습니다. 어머니가 정성스레 키우신 배추를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외진 밭에 여러 사람이 주말농장식으로 농사를 짓는 곳에 어머니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운동 삼아 재미 삼아 20여분을 걸어 밭을 찾고, 실하게 잘 자란 배추가 대견스러워 쳐다보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했는데 며칠 전 나와 보니 누군가 배추를 여러 포기 뽑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냥 뽑아간 것이 아니라 칼을 가지고 나와 다듬어 가기까지 했다니, 아예 작정을 한 일이지 싶었습니다. 실한 배추로 중간 중간 뽑아간 탓에 배추 고랑은 이가 빠진 듯이 허전해 보였습니다.
잘 자란 상치도 고스란히 없어졌고, 쑥갓과 파도 손을 타고..... 약 한 번 안 주고 정성스레 키운 작물들이 누군가의 손을 타기 시작하자 걱정이 된 어머니는 공연히 곡식으로 마음고생을 하느니 아예 조금 일찍 김장을 하시겠다며 배추를 비롯한 김장작물을 거둬들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묵직하게 잘 자란 배추는 약을 안 주어 그런지 야들야들했고, 군데군데 벌레 먹은 자국들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정겹고도 소중하게 와 닿았습니다. 배추 양 옆으로 나란히 심은 쪽파를 뽑아보니 결혼식 주례사에서 흔하게 하는 말인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파뿌리는 정말로 사람의 흰 머리카락을 영락없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두고 하필이면 백발을 파뿌리에 빗댄 옛 사람들의 해학 어린 적절함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애써 수고를 하여 키운 배추를 잃은 것이 아쉽고 아까우신지 어머니는 아쉬운 마음을 다시 한 번 털어놓았습니다. 남의 밭에서 캐온 배추로 어떻게 김치를 담가 먹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도와드리며 어머니를 위로할 겸 어려운 이웃에게 적선했다 생각하시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어려우면 남의 배추를 다 뽑아갔을까,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져가도 우리 먹을 것이 남았으니, 나눠먹는다 생각하면 이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형도 이야기를 거들었습니다.
심을 때를 놓쳤지만 그런대로 모양을 갖춘 총각무를 어머니는 대견해했습니다. 빈 땅이 아까워 못 먹으면 못 먹지 싶은 마음으로 늦게 심었는데, 제법 알맞은 크기로 무가 들었으니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그렇게 큰 것이지 싶습니다.
생각지 않았던 은총을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듯 우리 또한 어려운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흙을 만져서 그럴까요, 배추를 뽑으며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2007.11.11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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