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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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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손에는 장미꽃 한 다발. 아내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기름때 찌든 웃옷을 벗고 아내를 와락 껴안았다. “미안해. 꽃다발 말고는 생일 선물을 준비 못했어. 다만 열심히 일할게. 머잖아 부자가 꼭 될 거야.” 그러자 아내는 넉넉한 미소로 손깍지를 꼈다. “우린 이미 부잔걸 뭐. 당신이 내 곁에 있는 한 우린 부자야. 물론 언젠가 돈도 가지게 되겠지. 그러나 당신이 안 계시면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이런 대화가 오가는 가정이라면 벌써 천국이 아닐까. 평생을 죽도록 일하고도 부자가 되지 못한 농민 부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목 설장에 나가신다. 나는 골목 끝집 마당에서 장에 가시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대형마트에서 ‘스케일’있게 장을 보는 풍요로운 신세대 부부와는 다른, 저들의 가난하면서도 정 깊은 사랑이 백년토록 이어지기를 나는 기도하였다. 몸살에 걸려 며칠 아파 드러누웠더니 부엌이 아주 난장판이다. 감지 않은 내 머리칼도 하늘로 쭈뼛쭈뼛. 정신을 차리자꾸나. 먼저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깨끗이 설거지도 마쳤다. 해가 질 즈음 다시 가지고 들어와 가지런히 수저 젓가락 한 벌씩 수저통에 담으면서 생각했다. 한 벌씩 짝꿍인 우리들, 이 지구별 수저통에 담겨 살아가는 수저 젓가락인 우리들. 오늘 저녁밥상 누구하나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은 다음, 편안하고 복된 단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달동네 철거민들도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고 정든 옛집에서 온 식구가 화목한 저녁밥상을 마주했으면…. 질기게도 거론되는 운하 때문에 평온하던 강변마을마다 들쑤셔져 무너지지 않기만을…. 강변마을에 영원토록 군불 때는 저녁연기가 올망졸망 피어오르기를. 수저통에 수저 젓가락 더는 줄지 않고, 귀농한 젊은 댁엔 어린아이용 수저 젓가락도 한 벌쯤 더 늘었으면 참말 좋겠다, 올해는.
<임의진 | 시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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