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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삽자루 같은 사람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784 추천 수 0 2011.06.06 12: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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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왐마 어찌사쓰께라. 밴맹이라고 씨붕그리는 거시 아니고라이, 회관서 자꼬자꼬 농아리(잡담)나 허고 밍기적 놀자는 말에 잡해 있는 사이에, 어뜬 배라먹을 용천배기(나쁜 사람)가 토방독(디딤돌)에 점잖이 놓은 거슬 훔채가부렀단 말이요… 한샐팍(같은 사립문을 쓰는 이웃)서 가차이 사는 것도 아니고, 옆구랭이(옆구리)에 차고 댕기는 거시기도 아닝 게 도대체 찾을 수가 있어야재라. 훔채 묵고 숭개 묵고(숨겨 놓고) 그라고 살아서야 쓰꺼시요? 호랭이가 물어갈 놈의 영감탱. 인자 비얌때갈(뱀딸기) 나오고 밭때기 벌어묵기 전에 꼭 써금털털 헌것이라도 잊지 않고 갖다 드리께라. 쨈만 기둘리쇼잉.”

 

새로 장만한 삽 한 자루 있었는데, 내가 집을 비운 사이 현관문 쪽에 있는 걸 잠시 빌려갔다가 잃어버린 모양이시다. 자진신고 기간도 아닌데 자초지종 주욱 말씀하시는 게 소설책 한 권이다. 에고대고 이 고주망태 술망탱이야. 그런데 말발 하나는 청산유수롤세. “깨굴챙이(개구리) 튀나오고 벹발(햇살)도 참말로 거시기 좋고… 안그라요? 헤헤 그라믄 난중에 뵙시다잉.” 길 따라온 황구가 꼬리를 치며 앞장서자 아재는 여우 꼬랑지를 감추며 그 뒤를 솔솔….

삽질 정권이다 뭐다, 그놈의 토건족 때문에 죄 없는 삽이 대신 욕을 얻어먹는 시절. 그렇다고 삽이 미운 건 절대 아니다. 삽 한 자루 값이 고작 만원인데 어떤 명품 만년필은 수십만원도 넘을 걸 아마. 그래도 촌에선 펜보다는 삽이지. 삽질을 잘해야 사람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잃어버린 삽이야 아재가 새로 주시겠다니 괜찮고, 훔쳐 가신 분도 아마 댁에서 가지고 나온 줄로 착각하신 거 같고, 길 가다말고 아재가 전봇대에 오줌을 누시는데 개도 흉내내며 오줌을 눈다. 오줌을 털 때까지 재밌는 구경일세. 저 삽자루 같은 사람. 쓸데없이 강바닥에서가 아니라, 진짜 논밭에다 삽질하는 몇 안 되는 사람. 귀한 사람이라 눈에 오래오래 넣어둔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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