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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꽃시계 별시계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727 추천 수 0 2011.06.06 12: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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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 땜에 치과를 댕겨오던 아짐은 마을길 포장공사로 야영장 문턱까지 올라와서야 버스에서 내렸다. 산밭에 라벤더, 페퍼민트, 로즈메리, 재스민, 제라늄을 비롯하여 쬐꼬만하게 허브 농사를 짓기 시작한 나는, 수시로 물을 주며 한나절은 장화를 신은 차림새다. 강연이나 다른 볼일로 서울을 종종 다니는 편인데, 밭작물이 마음에 걸려 또 부리나케 돌아오고는 한다.

아짐은 얼마 전에 라벤더 한 뿌리를 얻어갔고, 요새 문간방에서 그 꽃을 보고 계실 것이다. “점쟁이가 옥니박이 팔자는 징허게 사납드라등마 차말로 일평상을 철업쟁이(철부지)로 젙눈질(곁눈질)만 허다가 죽은 남팬에다 이러크롬 써금발이(변변치 못한 사람) 삭신은 아파만 싸코 말이요. 풍강치고(농악하고) 노닥질허든 젊어서가 좋았재. 인자 심알타구(힘) 한나 안남어가꼬 들뽕낭구(들뽕나무) 밑에다가 늙어죽은 괴대기(고양이) 모냥 묻어부러야 안아플랑가.” 엄살을 또 부리신다. 벚꽃이 진 뒤로 마을에 남은 하얀색은 늙고 병든 주민들의 새하얀 머리카락뿐이다. 그러나 기다려라. 꽃들이 이어서 릴레이 계주, 바통 터치를 하리니 인상파 화가의 그림 속 꽃마을은 굳이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아도 예서 다 볼 수가 있다.

집집마다 돌아가는 꽃시계. 들에도 산에도 꽃시계가 돈다. 복수초나 수선화, 매화, 동백꽃. 이른 봄꽃에 이어 다음차례 벚꽃, 살구꽃, 할미꽃, 내 산밭의 허브 꽃송이. 여름과 가을, 겨울, 그대와 파묻혀 뒹굴던 눈꽃까지…. 오늘은 무슨 꽃이 피나 마당을 내다보는 일이 중요한 일과다. 은행잔액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죽어서 그 돈 몽땅 챙겨가지고 천국에 갔다는 사람을 나는 들어본 일이 없다. 욕심 없이 꽃을 심고,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은 꽃시계와 별자리 시계만으로 인생을 가뿐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죽으면 무덤가에 사철 꽃들이 조문하고, 별들은 또 남은 자들의 가슴마다 촘촘하게 빛나리라.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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