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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이 별의 이별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699 추천 수 0 2011.06.06 12: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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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비운 사이 내 산밭에 작약 뿌리며 라벤더며 꽃나무들을 누군가 움펑 퍼갔다고, 민박집 하시는 한씨 아재가 전화기 저편에서 걱정이시다. 지난주부터 대구에서 그림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 출타했더니만 이런이런…. 등산로에 인접한 밭들엔 그런 일이 종종. 어떻게 남이 정성스럽게 가꾸는 화초나 채소를 슬쩍해 가는지 모르겠어. 아재 말씀으로는 전선도 끊어가고 배수로 철덮개도 들고가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래. 집을 비우면 온갖 근심걱정…. 작별 인사도 없이, 예고도 없이 잃어버리고 떠나가고 사라지는 친구들 땜에 마음 아프다. 그렇다고 그걸 날마다 지키고 앉아 있는 꼴도 우습고 말이야.

난 교회 예배당에서 나고 자랐다. 바다가 배를 염색하듯, 수많은 교회의 성물과 공간은 나를 염색해갔다. 특히 널따란 예배당은 놀이터로 쓰였다. 신이 우리를 찾으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술래가 되었다는 얘기는 이미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알아차렸다. 특별히 교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신들의 얘기는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었다. 나는 가위바위보엔 늘 젬병이었다. 그래 자주 술래가 되어야 했어. 숨은 동무들을 찾아내려고 구석구석 눈에 불을 켜고 뒤지는데, 어느 날 다운증후군 장애인 형이 톱밥 창고에 들어갔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똥통에 빠졌나 뒷개울에 빠졌나 부모님까지 총출동, 놀이는 그만 악몽이 되어버렸다. 기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대구 친구들과 밤새 들이부은 포도주, 퉁퉁 부은 눈을 간신히 떴다. 밤새 내가 외계 비행접시의 공짜여행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고, 기별 없이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별에 남아 있다니. 오로지 당신이 이 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야. 당신도 갑자기 이 지상에서, 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바란다. 우리의 이별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임의진|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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