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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꽃무늬 브라자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382 추천 수 0 2011.09.04 21: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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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까뒤집고 살펴보아도 칠십 고령의 할매들 뿐인지라 빨랫줄엔 브래지어, 요짝 말로 브라자가 널리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일. 가끔 며느리나 시집간 딸이나 아가씨가 다 된 손녀딸이 찾아와서 며칠 묵고 갈 때나 되어서야 그런 풍경이 가능해진다. 주평리 슈퍼에서 팥 들어간 붕어빵 아이스크림 달콩 사먹고, 어르신들 장기판에 볼만장만하다가 자전거 페달을 밟고 돌아서는데 길갓집 마당에 꽃무늬 브래지어 하나가 미동도 없이 널려있더라.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즉시 대문을 열고 등장한 그 집 마나님. 해 기울 즈음 저수지까지 운동 다니시는 그 아주머니가 맞다. 알록달록 촌티를 무한 방출하는 몸빼 차림에다가 후줄근하기 이를 데 없는 웃옷... 그런데 저기 널려있는 세련되고 섹시한 브래지어는 무어란 말이냐. 사부랑하게 빨래집게에 물린 브래지어는 마파람에 춤추며 살살 노긋해지고 있더라.

길 끝에 이르러 문득 어머니 속옷이 가물거렸다. 자신의 속옷을 손빨래하고 뒤꼍에 가만히 널어두던 풍경. 어머니의 가슴을 싸맸던 물보랏빛 브래지어... 야코죽이는 지컵도 에이치컵도 아닌 죄고만 언덕 같이 정겹던 어머니 브래지어. 엄마 젖을 물던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이제 엄마 브래지어도 엄마 냄새까지도 이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소소한 풍경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이로구나.
 
그런데 시위하다 체포된 여성들에게 자살 자해 방지 목적이라며 브래지어를 벗어 내놓으라 했다는 경찰발 황당 뉴스. 방학과 휴가철을 이용한 은밀한 성형수술 얘기. 젖줄기가 말랐으면 모르겠지만 이상 없이 콸콸 솟는대도 자기 아이에게 소젖 분말을 타 먹이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엄마들 얘기... 이런 얘기들이 요즘 브래지어에 얽힌 이야기의 전부란 게 참 서글프다.
<글·그림|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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