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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삼시 세끼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52 추천 수 0 2016.04.25 23: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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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이 내렸다. 잠깐이었는데 후다닥 후다닥 누군가가 지붕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늦게 잤으니 늦게 일어나야 옳았는데 그 소리에 놀라 일찍 깨나고 말았다. 배 속이 꼬르륵. 간밤 친구들을 만나 포도주로 대취하는 날이 아니면 아침밥 차리기 귀찮아서 가볍게 식빵과 커피로 대신하고는 한다. 오늘은 난데없이 밥을 지어 먹고 싶어졌다. 밥상을 코앞에 차려놓고 이발소에 붙어있던 ‘기도하는 소녀’ 그림처럼, 그렇게 기도한 뒤 밥을 먹고 싶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얹는 일은 지겨운 반복이라 투덜대곤 하는데 배고파서 밥을 지을 때는 그렇지가 않다. 밥솥 전원을 누를 때 여자 목소리로 무어라 종알거리는 기계음조차 반갑다.


한 해가 이렇게 지나고 새해가 밝아온다. 죄를 지어 감옥소에서 콩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대자유의 몸으로 흰밥을 지어 먹는 삶의 연장. 천지신명께 감사할 일이다. 가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어떨 때 행복하냐고. 갑자기 물어서 그런지 대답들이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 꼴깍꼴깍 숨넘어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답이 한 줄로 이하동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게 밥 한 끼 먹고 싶다고.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 집의 밥상은 얼마나 슬플까. 슬픈 새해일까. 세월호 이후 밥 먹을 때마다 목에 밥알이 한 번씩 걸린다. 내가 무슨 노란 리본을 옷깃에 차고 다니는 유별난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다. 부디 우리 모두 마음에 난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먹고사는 수준이 제법 높은 한국에선 재물이 있으나 없으나 밥상은 대개 비슷하다. 목사 노릇하면서 나름 있는 집 없는 집 밥을 얻어먹어 보아서 안다. 캐비어인가 캐비넷인가 상어 머시기를 먹어도 그저 한 끼 특별할 뿐 금방 질리는 것이다. 손으로 김치를 찢어 밥을 먹는 즐거움을 아는 농부들은 저 들녘을 떠나지 못한다. 올해도 농부들은 못밥을 나눠먹고 탁주를 즐길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보다 백배나 많다. 지금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는 멍청이만 있을 뿐.


임의진 | 목사·시인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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