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부채춤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46 추천 수 0 2016.06.05 08:50:27
.........

l_2015032601004045100329371.jpg

가을 운동회가 온 동네 잔치였다면 봄 운동회는 서먹한 새내기들이 학교에 정붙이는 효과 정도. 조촐했으나 빠지지 않는 게 부채춤이었다. 누나들이 여럿인 우리 집엔 새털인가 깃털인가 묶어놓은 부채들이 방마다 걸려 있었다.

무슨 부채도사 무당집도 아니고 자기 꼬리를 물고 돈다는 우주뱀 ‘오우로보로스’였던가 그것이. 이 방 저 방 부채도사들이 춤 연습한다며 난리굿이었다. 세탁기에 내 웃옷 빨래가 양팔을 벌려 회오리치듯 누나들의 부채춤은 돌고 돌다가 드넓은 학교 운동장까지 늘어졌다.

둥그렇게 펼쳐진 누나들의 부채춤 대형을 향해 축구공을 뻥 하니 날리던 드센 형아가 있었다. 이소룡의 절권도에 빠져 살던 그 형아가 참한 얼굴로 바뀌어 교회에 나타날 줄은 정녕 몰랐다. 게다가 부채춤을 훼방 놓은 일을 석고대죄까지. 말쑥한 교회 오빠로 변모하더니 부채를 펼쳐 여학생들 가슴마다 묘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중·고등부에서 ‘문학의 밤’이라는 걸 했다. 캠퍼스 커플은 싱거운 연인이고 교회에서 만난 짝이야말로 주말을 함께하는 우월한 조건 만남. 교회 오빠 동생 불 댕기는 시작점이 바로 문학의 밤이었다. 시낭송도 오래하면 지루하여 부채춤을 살짝 끼워넣었지. 엉뚱하게도 국악 대신 가스펠 테이프를 틀어놓고 하얀 겨드랑이 살을 살짝 보여주면서. 경건파 목사님은 춤이 못마땅해 시종 헛기침이었다.

화석 직전의 날개를 몸속 깊이 숨겨두고 살던 타조 같은 할머니 교인들이 이때다 싶어 무대 위로 맹돌진. 막걸리 없이도 어절씨구 궁둥이춤. 참다 못한 목사님은 폐회 기도를 서둘렀다.

문학의 밤은 드디어 연애의 밤으로! 나 같은 동생들은 엄마 찌찌나 만지며 이른 잠을 청해야 했지. 부채를 날개 삼아 도회지로 바삐 떠난 누나들. 더러는 서울로 가서 잘 살기도 했겠지만 누구는 주한미군 상대하는 양공주도 되고. 내 생전 별의별 부채춤을 다 보았으나 미국 대사님 쾌유기원 부채춤은 정말 대략난감. 같이 갑시다마는 교회 누나들 부채춤은 앙~돼요.

임의진 | 목사·시인 2015.3.2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5 임의진 [시골편지]고독과 은둔 file 임의진 2016-06-16 135
364 임의진 [시골편지]이매진, 상상력 file 임의진 2016-06-16 139
363 임의진 [시골편지]진실을 찾는 사람 file 임의진 2016-06-05 124
362 임의진 [시골편지]댄서의 순정 file 임의진 2016-06-05 97
361 임의진 [시골편지]산티아고 순례길 file 임의진 2016-06-05 101
» 임의진 [시골편지]부채춤 file 임의진 2016-06-05 146
359 임의진 [시골편지] 걱정 하나 없는 밤길 file 임의진 2016-05-31 141
358 임의진 [시골편지] 피부 색깔 file 임의진 2016-05-31 135
357 임의진 [시골편지]장서의 즐거움 file 임의진 2016-05-31 103
356 임의진 [시골편지]설국의 터널 file 임의진 2016-05-31 172
355 임의진 [시골편지] 삼시 세끼 file 임의진 2016-04-25 152
354 임의진 [시골편지] 꿩이 꿩꿩 우는 날 file 임의진 2016-04-25 243
353 임의진 [시골편지] 강철 새잎 file 임의진 2016-04-25 149
352 임의진 [시골편지] 군산 노을 file 임의진 2016-04-25 333
351 임의진 [시골편지] 옹가, 긍가, 강가 file 임의진 2016-04-25 206
350 임의진 [시골편지] 바라나시 file 임의진 2016-04-25 132
349 임의진 [시골편지] 마을 위를 날아서 file 임의진 2016-04-25 188
348 임의진 [시골편지]금은보화의 크리스마스 file 임의진 2016-04-25 143
347 임의진 [시골편지] 타오르는 불꽃 file 임의진 2016-04-21 160
346 임의진 [시골편지] 땅콩만 한 별들 file 임의진 2016-04-21 244
345 임의진 [시골편지] 보리차 끓는 소리 file [1] 임의진 2016-04-21 193
344 임의진 [시골편지] 튀밥이 내리는 날 file 임의진 2015-10-18 196
343 임의진 [시골편지]산타 오빠 산타 언니 file 임의진 2015-10-18 285
342 임의진 [시골편지]국화꽃 향기 file 임의진 2015-10-18 193
341 임의진 [시골편지]하루만 햇새 file 임의진 2015-10-18 196
340 임의진 [시골편지] 피카소, 추위와 사랑 file 임의진 2015-10-18 196
339 임의진 [시골편지] 연탄검댕이 file 임의진 2015-10-18 163
338 임의진 [시골편지]풍선과 평화 file 임의진 2015-10-10 166
337 임의진 [시골편지]샹송을 듣는 시간 file 임의진 2015-10-10 180
336 임의진 [시골편지]이상한 사람 file 임의진 2015-10-10 137
335 임의진 [시골편지]석별의 정 file 임의진 2015-10-10 336
334 임의진 [시골편지]오브리가도 file 임의진 2015-10-10 356
333 임의진 [시골편지]코흘리개 file 임의진 2015-10-10 133
332 임의진 [시골편지] 책상 위에 램프등 임의진 2014-10-26 622
331 임의진 [시골편지] 하모니카와 키스하는 법 임의진 2014-10-26 643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