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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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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작가회의 살림꾼인 김성규 시인을 만났는데 엊그제 시집 한 권이 날아왔다. 메모와 함께. 메모의 시작은 이랬다. “선생님. 난세에서의 이 만남이…”. 난세에서란 말에 피식 미소가 돌았다. 세상 걱정이 많은 시인. 누구보다도 시국을 염려하고 자유를 추구하며 연민으로 가슴이 꽉 차올라야 진짜 시인이지.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라는 그의 시집엔 동명의 시가 놓여있었는데 “깡통 속에서 서로를 밀치는 동전 소리, 장님은 복도를 걸어가며 노래하네…”. 뉴욕 다코타 아파트 근처에서 장님이 존 레넌의 ‘이매진’을 노래하는 걸 멈추어 귀하게 들었던 기억. 템스강 선착장에서 이매진을 불러주던 아이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고추밭 토마토밭에 머물 때면 농요, 노동요를 배우지 못해 이매진을 대충 부른다. 이매진을 들은 토마토가 벌써 알을 덩실하니 맺었더라.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 <방랑기>를 읽고 난 다음날 존 레넌의 출생지를 가기로 마음먹었지. “나는 숙명적인 방랑자다. 내게는 고향이 없다” 소설의 첫 구절부터 뿅~ 갔었어. 국경도 종교도 없고, 차별도 분쟁도 없는 세상. 과연 이매진을 모두 노래하면 그런 세상을 맛볼 수 있는 걸까.
외국 친구들은 내 이름을 부를 때 이매진이라 부른다. 임의진이나 이매진이나…. 여행을 떠날 때 명함도 그리 파서 지니고 다닌다. 음악과 모든 장르의 예술로부터 자유를 꿈꿨던 그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 난세에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 국경(삼팔선)도 없고, 종교(십자군)도 없는 세상. 우리나라엔 국가보안법 말고도 종교보안법이 있는 거 같아. 같은 예수를 믿는데 한쪽은 왜 그렇게 드세고 시끄러우며 탐욕스러운가. 십자군의 재림 같다. 오라는 예수는 아니 오시고 십자군이 이렇게들 재림하시어 무찌르자 공산당 무찌르자 이교도. 지겹지도 않은가봐. 카페에 앉아 감상용으로 듣는 노래가 아니라 거리에서 가슴으로 불러야 할 노래가 이매진인데. 이 난세에 꿈꿔야 마땅할 사람됨의 상상력.
임의진 목사 시인 201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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