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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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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문턱이라 찬바람도 불고.”
“찐덕찐덕 하든 날이 가불등만 금시 추와부러라.”
“그러게요.”
“인자 뚜꾼(두꺼운) 이불을 더퍼야 쓰거씁디다. 죽전(대밭)이나 하늘에 닿으까 저라고 구름이 노푸덴허구만이라. 바람도 선들선들 불어부리고.”
이 동네에서 얼치기 작가인 나만 빼고 다들 일찍 보따리를 싼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 할매는 시를 읊으며 파밭을 매고 나는 병이 들어 누렇게 곯은 고추밭을 갈아엎었다. 풀조차 뽑지 않고 버려둔 야생농사. 고추를 몇 개나 따먹었을까. 매운 맛을 즐기지는 않아서 누구들 따주기나 하고….
집밖에 나가면 갤러리와 찻집, 밤에는 벗들과 둘러앉아 얘기꽃. 돌아와 이곳 산골에선 정원을 돌보는 일이 주업이 된다. 낡고 해진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면 풀과 나무들이 먼저 알고 일제히 겨드랑이를 들어 올린다. 농사야 내버려두는 무농약 자생농법으로다가 내 밥상에 찬이나 간신히 건져도 되는 것이지만 정원일은 손이 이만저만 가는 일이 아니다. 숲이 우거진 이 집은 내가 집을 짓고 이사 올 때 모두 구해다 심은 나무들이다.
언제는 정원사 겸 작가 재키 베넷의 <작가들의 정원>을 읽었는데, 버나드 쇼와 찰스 디킨스, 애거사 크리스티를 비롯,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정원을 소개하고 있었다, 제라늄 꽃을 너무 사랑해서 아예 제라늄 무대라는 곳을 만들기도 했다는 찰스 디킨스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스위스 살레에서 지냈는데, 그곳의 풍경을 적은 글은 이랬다. “내 집은 나무들이 우거져 포위당했고 새들과 나비가 주인이나 진배없이 방문한다. 태양과 그림자는 벗들과 함께 오며 나무는 가지를 뻗어 초록빛깔 손을 먼저 내민다.”
진짜로 파란색 잉크로만 글을 썼다는 찰스 디킨스. 인간애를 일깨운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 그의 책은 내 거실에도 항상 꽂혀 있지. 파란색 하늘의 끝에는 노랗고 빨간 성탄별이 떠있을까. 하늘과 정원을 잃어버린 시대, 푸른 잉크가 풀어진 가을 하늘을 누가 치어다볼까. 하늘과 정원을 잃어버린 세상에 이를 되찾아 안겨주는 일이야말로 작가의 사명인지도 모르겠다.
임의진 | 목사·시인 20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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