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느린 강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44 추천 수 0 2020.04.08 22:41:05
.........

l_2019060601000517800043041.jpg
‘무사 앗사리드’라는 사하라 사막의 청년. 프랑스 고속기차 테제베를 탄 후일담, <사막별 여행자>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단봉낙타보다 천배는 빠르고 백마리 낙타가 늘어선 카라반만큼이나 길다. 엄청난 속도 때문에 눈앞에 어떤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현기증이 일고 심장은 더 세게 고동쳤다. 시간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더 이상 거리를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 낙타들과 사막의 침묵 한가운데 누리는 낙타들의 평화롭고 느긋한 리듬으로부터 나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열차 승객들의 조용하고도 태연한 모습이 놀라웠다.”
빠른 강물에 빠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명조차도 날름 집어삼킨다. 속도 빠른 시대에 살면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이름 없이 사라진다. 역사는 역시 ‘느린 강’에서 비롯된다. 느린 강을 따라 걷다보면 배짱 두둑하고 맷집이 센 사내를 만나게 되리. 현명하고 강인한 여인이 손을 내미는 곳.
나는 우수리스크에 와 있다. 극동의 한쪽. 우리 겨레 고려인이 마을을 이루어 살던 땅. 추위에 맞서 두꺼운 벽채를 세우고 지붕엔 기와를 구워 얹기도 했다. 장작을 집어넣는 벽난로 페치카. 온기를 나누던 겨레의 심성을 느끼게 된다. 여기 ‘수이픈강’, 옛 발해 땅 솔빈부에 흐르던 ‘솔빈강’이 흐른다. 작가 푸시킨의 동상이 있는 이 마을 귀퉁이엔 안중근과 홍범도 비석이 나란히 있다. 권총이 새겨진 비석조차 비장하여라. 하루는 느린 강가에 위치한 헤이그특사 이상설 기념비에 보드카를 뿌려주었다. 보드카는 멀리 돌고래가 뛰노는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짧은 여름, 모두들 웃통을 벗고 일광욕. 강물에 수영도 한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수영이 금지된 곳입니다.” 경찰이 물에 들어간 아가씨들을 나무라자 “아니 옷을 벗기 전에 말을 해야죠”. 경찰은 웃으며 “옷 벗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는데요”. 안중근 대장도 이 강물에 말을 세워 물 먹이고, 수영도 했을 것이다. 사랑해본 사람들이 저항도 하고 혁명도 한다. 느린 강물을 보다가 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평화롭고 느긋한, 느린 강.
임의진 목사·시인
2019.06.0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820 임의진 우주에서 온 임의진 목사 임의진 2002-02-25 11909
819 임의진 [시골편지] 단둘이 마시는 매화차 file 임의진 2009-03-04 4448
818 임의진 [시골편지]돋보기 안경 file 임의진 2007-09-10 4343
817 임의진 [시골편지]잠자리는 날아가고 file 임의진 2008-11-17 4338
816 임의진 [시골편지]꼬리연 file 임의진 2008-01-23 4268
815 임의진 [시골편지]뱀, 길다 file 임의진 2008-09-06 4266
814 임의진 [시골편지]산토끼 토끼야 file 임의진 2010-03-17 4250
813 임의진 [시골편지] ‘삶은 계란’ file 임의진 2007-01-29 4225
812 임의진 [시골편지]마중물 file 임의진 2007-11-14 4204
811 임의진 [시골편지] 복(福)그릇에 꽃 둥둥 file 임의진 2007-01-29 4198
810 임의진 [시골편지] 불어완전정복 file 임의진 2009-06-07 4190
809 임의진 [시골편지]라디오 스타 file 임의진 2009-06-07 4129
808 임의진 [시골편지]페인트 도색공 file 임의진 2007-11-14 4121
807 임의진 [시골편지]고추잠자리 file 임의진 2007-09-10 4101
806 임의진 [시골편지]열전! 노래방 file 임의진 2008-09-06 4065
805 임의진 [시골편지] 죽부인전 file 임의진 2008-09-06 4040
804 임의진 [시골편지]일곱 송이 수선화 file 임의진 2008-05-15 4040
803 임의진 [시골편지]정자에 앉아 file 임의진 2007-11-14 4028
802 임의진 [시골편지] 무덤꽃 file 임의진 2007-06-15 4014
801 임의진 [시골편지]일자무식 상팔자 file 임의진 2007-09-10 4013
800 임의진 [시골편지]비빌 언덕 file 임의진 2008-01-23 3999
799 임의진 [시골편지]볏가마니 file 임의진 2007-11-14 3993
798 임의진 [시골편지]왕따 당한 날 file 임의진 2009-06-07 3981
797 임의진 [시골편지] 해바라기 file 임의진 2007-05-04 3965
796 임의진 [시골편지] 왼편 가슴에 흐르는 인더스 강 file 임의진 2008-09-06 3963
795 임의진 [시골편지] 겨울나무 file 임의진 2007-01-29 3961
794 임의진 [시골편지]중앙 다방 file 임의진 2008-05-15 3951
793 임의진 [시골편지]봄 날씨 file 임의진 2008-05-15 3947
792 임의진 [시골편지] 루돌프 사슴코 file 임의진 2009-11-28 3945
791 임의진 [시골편지]마을회관 전시회 file 임의진 2007-05-04 3944
790 임의진 [시골편지]바지랑대 file 임의진 2007-09-10 3940
789 임의진 [시골편지]단풍 놀이 file 임의진 2008-11-17 3936
788 임의진 [시골편지] 딸기코 아저씨 file 임의진 2007-05-04 3918
787 임의진 [시골편지] 따뜻한 외등 file 임의진 2007-02-09 3911
786 임의진 [시골편지]가로수 길 file 임의진 2008-01-23 3890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