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토끼굴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53 추천 수 0 2020.05.24 23:56:55
.........

l_2020011601001664300136661.jpg
지질학자 토끼를 따라가는 샛강 어귀나 노출된 사암층 어디.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슬오슬 춥다. 토끼털처럼 따스한 옷을 챙겨 입고 나서야 한다. 토끼 똥이 보이면 근처에 분명히 토끼굴이 있을 거다. 토끼를 뒤에서 부르면 휙 돌아보는 까닭은 눈이 뒤에 없기 때문. 시시한 수수께끼.
시베리아 하고도 바이칼 호수에 얼음이 땡땡 얼었겠다. 용기가 대단한 토끼는 앙가라강 얼음강을 건너기도 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얼음호수를 내다보면서 꼭 토끼굴처럼 생긴 조그만 사우나 공간에 들어가 ‘바냐’를 즐긴다. 나도 러시아에 가면 종종 바냐를 해보곤 한다. 자작나무 잎사귀로 등때기와 허벅지를 자근자근 때리면서 더운 물을 뿌린다. 바냐란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 한 집에서 자작나무를 쪼개 불을 때고 바냐에 초대를 하면 주민들이 보드카와 빵과 청어조림을 들고 모이게 되는데, 어지간한 마을 대소사는 이 바냐 시간에 결정이 다 된다.
달구어진 돌덩이를 바라보며 토끼처럼 빨간 눈으로 이눔의 스키 저눔의 스키 수다를 떨어댄다. 뒤에다가 스키만 집어넣으면 무조건 러시아말 중급. 20도 30도 40도짜리 술을 나눠 마신다. 그러다보면 ‘졸도’할 수도 있다. 토끼굴 바냐를 마치고 나와 횡단열차에 오르면 출출하여 도시락 라면을 사먹게 된다. 러시아에서 ‘도시락’이라는 상표의 네모진 컵라면은 그냥 라면을 뜻하는 대명사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 도시락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기차는 24시간 따뜻한 물을 제공한다. 온수를 붓고 기다리면서 젓가락 대신 포크를 만지작거린다. 토끼가 배춧잎을 조근조근 씹듯이 라면줄기를 후루룩 쩝~ 하고서 밖을 살짝 내다보면 하얀 눈이 삽으로 퍼서 뿌리듯 내려싼다. ‘눈에 맞아서 죽어봐라’ 하는 식으로다가 마구마구 내린다. “펄펄 눈이 옵니다, 마구마구 눈이 옵니다….” 토끼굴 같은 기차칸에서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하며 어디론가 저마다들 흘러서 간다. 당신은 시방 어디로 가는 길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2020.01.1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11150 이현주 노을빛 이현주 2020-07-17 19
11149 이현주 방금 이현주 2020-07-11 38
11148 이현주 고맙다 이현주 2020-07-11 42
11147 이현주 불쌍한 사람 이현주 2020-07-11 37
11146 이현주 누구한테도 이현주 2020-07-11 18
11145 이현주 철부지 둘째 아들 이현주 2020-07-11 23
11144 임의진 [시골편지] 침 튀김 file 임의진 2020-07-11 60
11143 임의진 [시골편지] 예쁜 조약돌 file 임의진 2020-07-09 58
11142 임의진 [시골편지] 오줌싸개 file 임의진 2020-07-04 59
11141 임의진 [시골편지] 미나리 싹 file [1] 임의진 2020-07-03 97
11140 임의진 [시골편지] 잔정 file 임의진 2020-07-02 55
11139 임의진 [시골편지] 땅거미 file 임의진 2020-07-01 56
11138 이현주 허허허 이현주 2020-06-30 32
11137 이현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이현주 2020-06-30 116
11136 이현주 오늘 이현주 2020-06-30 25
11135 이현주 덕분에 이현주 2020-06-30 46
11134 이현주 떨어지는 꽃잎처럼 이현주 2020-06-30 51
11133 이현주 기침 이현주 2020-06-24 36
11132 이현주 먼저 손을 펴라 이현주 2020-06-24 68
11131 이현주 암만 봐도 이현주 2020-06-24 34
11130 이현주 핸드폰 시대 이현주 2020-06-24 40
11129 이현주 돈 세다가 이현주 2020-06-24 54
11128 이현주 금빛 화살 이현주 2020-06-24 31
11127 이현주 눈이 좁아서 이현주 2020-06-19 48
11126 이현주 늙은이들에게 이현주 2020-06-19 44
11125 이현주 젊은이들에게 이현주 2020-06-19 35
11124 이현주 그런데 이현주 2020-06-15 35
11123 이현주 알 수 없어라 이현주 2020-06-15 35
11122 이현주 이현주 2020-06-15 33
11121 이현주 나뭇잎 되어 이현주 2020-06-14 37
11120 이현주 아무도 말이 없다 이현주 2020-06-14 41
11119 이현주 안 보이는 중심 이현주 2020-06-11 37
11118 이현주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에 대하여 이현주 2020-06-11 53
11117 이현주 저마다 제 꿈에서 이현주 2020-06-09 63
11116 이현주 거참 신통하다 이현주 2020-06-09 199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