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땅거미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56 추천 수 0 2020.07.01 23:38:54
.........

l_2020012301002497900203631.jpg

캐나다 북쪽 원주민 검은 발족의 추장 까마귀 발의 노래다. “삶은 이와 같은 거라네. 어둔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 겨울 한복판에 들소가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 푸른 초원을 달려가다가 땅거미 지는 노을에 사라져가는 작은 그림자.” 들소의 코에서 훅훅 나오는 콧김이 떠오른다. 그리고 땅거미. 거대한 평지 대륙에 드리운 어스름이 그립다.
저녁의 느낌은 늘 찌릿하다. 가수 김목인은 말했다. “밤이 오기 전 하늘은 살짝 밝아져 있었다. 슈퍼 앞 평상의 아저씨는 맥주 한 컵을 들고 아이들이 게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엄마들이 아이들을 타이르는 소리. 저녁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다세대주택 골목 어딘가 드리운 저녁. 옥상에서 보이는 건너 공터의 땅거미. 개가 누런 똥을 한 덩어리 누고 뒷발질을 해대는 소리. 아직도 골목을 누비는 두부장수와 칼갈이 아저씨. 창틀과 방충망을 고치는 용달 트럭의 반복되는 스피커 소리. 장 자크 상페의 그림책에 나올 법한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달음질치며 내뱉는 소리들. 명절이 다가오면 떡 방앗간이 분주해지지. 세상이 암만 빵빵 빵집만 생겨나도 변두리는 아직 떡떡, 찰떡 시루떡 좋아하는 이들이 살지. 땅거미가 지면 검은 깨떡이 생각난다. 예전엔,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 외치고 다니던 고물상 엿장수가 해가 저물기 전에 떨이로 다 팔고, 엿장수 맘대로 가위질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엿장수의 노래가 구성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젊어서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 에구구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는 할매는 저녁밥을 짓는다. 혼자 밥 먹은 지도 수수십년은 된 거 같아. 물을 말아 먹는 밥에 김치 한 조각. 호물호물 씹지도 않고 삼킨다. 이 동네에서는 삼킨다고 안 하고 생킨다고 해. 물도 마신다가 아니라 생킨다고 하고. 어둠을 삼키는 땅거미. 현대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어스름 시간을 못 느끼고 산다. 푸른 들판을 달리는 땅거미. 내 작은 그림자. 또 당신이라는 인생. 새해에도 부디 평안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2020.01.2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065 김남준 그리스도인은 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진 자(골1:13) file 김남준 2017-08-28 94
10064 이현주 비교할 대상은 피차 아니지만 이현주 2017-08-28 212
10063 이현주 나무들의 속삭임 이현주 2017-08-28 188
10062 이현주 당신은 나의 나 이현주 2017-08-21 160
10061 이현주 누나 이현주 2017-08-21 328
10060 이현주 나는 미꾸라지 이현주 2017-08-21 106
10059 이현주 강낭콩 이현주 2017-08-21 67
10058 이현주 여기까지 이현주 2017-08-21 74
10057 이현주 모기 이현주 2017-08-21 51
10056 이현주 샛별이 뜨네 이현주 2017-08-14 69
10055 이현주 어쩌면! 이현주 2017-08-14 63
10054 이현주 그건 그렇고 이현주 2017-08-14 57
10053 이현주 출렁이고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이현주 2017-08-14 55
10052 이현주 그늘 이현주 2017-08-14 39
10051 이현주 발자국 발자국 2017-08-14 71
10050 임의진 [시골편지]매매 지지 차차 file 임의진 2017-08-09 52
10049 임의진 [시골편지]무와 무관심 file 임의진 2017-08-09 43
10048 임의진 [시골편지] 초승달과 개들 file 임의진 2017-08-09 42
10047 임의진 [시골편지]귀뚜라미 동학 file 임의진 2017-08-09 60
10046 임의진 [시골편지]아부지 다스 베이더 file 임의진 2017-08-09 66
10045 임의진 [시골편지]자장가를 부르는 집 file 임의진 2017-08-09 44
10044 임의진 [시골편지] 세가지 선물 file 임의진 2017-08-09 75
10043 임의진 [시골편지]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file 임의진 2017-08-09 63
10042 이현주 내 사랑 몽당연필 이현주 2017-08-04 65
10041 이현주 돌아가는 길 이현주 2017-08-04 74
10040 이현주 뜻이 통했다 이현주 2017-08-04 63
10039 이현주 핸드폰 이현주 2017-08-04 68
10038 이현주 사랑하는 사람아 이현주 2017-08-04 93
10037 이현주 귀여운 사람들 이현주 2017-08-04 63
10036 이현주 장작 이현주 2017-07-28 81
10035 이현주 어휴 말도 마 이현주 2017-07-28 135
10034 이현주 어머니 이현주 2017-07-28 75
10033 이현주 게다가 이현주 2017-07-28 36
10032 이현주 어쩔거나 이현주 2017-07-28 64
10031 이현주 강(江) 이현주 2017-07-28 37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