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녹음 테이프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0 추천 수 0 2022.06.27 20:48:06
.........

Cap 2022-06-27 20-42-11-847.jpg

[시골편지] 녹음 테이프

 

소싯적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갖고 있는데, 축구를 마치고 돌아와 헐레벌떡 숨찬 목소리로 뭐라 뭐라 경기평을 해대는 소리. 축구를 사랑하는 한국 사람인 나도 한때 매일 축구를 즐겼다. 축구 종주국 영국 사람 조지 오웰의 학창 시절도 축구 얘기로 자욱하더군. 그이의 산문 가운데 ‘즐거웠던 지난날들’이란 글이 있는데, “날마다 축구는 악몽 같았다. 싸늘하고 차가운 날씨, 질척거리는 물찬 운동장과 얼굴로 돌진해오던 흙 묻은 더러운 축구공, 무릎은 피가 날 지경으로 까지고 몸집이 큰 동무들에게 작은 내 발은 밟히기 일쑤였어.” 내 녹음 테이프엔 또 교회당 마루에 누워 찬송가를 부른달지 박화목 시인의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봄노래를 부르며 노는 동무들. 젊은 어머니의 가늘고 다정한 목소리도 담겨 있어. 휴대폰 녹음 파일과는 다른, 한 장의 카세트테이프. 금은보화보다 귀한 가보가 생길 거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녹음 테이프가 등장해. 아내가 녹음해준 대본 테이프를 차에 틀어놓고, 딴청 피우다가 한번씩 대사를 따라 외는 장면들. 영화를 보다가 재즈 가수 웅산의 음반을 틀어놓은 요즘 내 차를 떠올렸어. 옛노래 다시 부르기.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카세트테이프로 듣는다면 더 좋겠단 생각을 했어.

춘추전국시대 ‘장의’라는 사람은 말솜씨가 좋았대. 노상강도를 만났는데, 만신창이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물었어. “내 혀는 괜찮소?” “말을 하시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은뎁쇼.” “그럼 되었소. 전혀 문제없어.” 말이 주는 위로와 달콤함이 있지. 말에 속고 말에 눈물 나. 말로 천만원(천냥의 물가 상승) 빚을 갚지. 못난 치들은 뒤에서 딴소리, 앞에선 정나미 없는 막말을 내뱉는다. ‘말을 왜 저따구로 하나’ 싶을 때가 있어. 녹음기는 껐지만, 가슴마다 녹음된다.

임의진 목사·시인 2022.03.17 경향신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80 이현주 슬픈 날 이현주 2020-12-13 40
11279 이현주 세상에 원... 이현주 2020-12-13 39
11278 이현주 새벽기도 이현주 2020-12-13 37
11277 이현주 갈대 이현주 2020-12-13 23
11276 이현주 어미 비둘기 이현주 2020-12-13 28
11275 이현주 문득 이현주 2020-12-06 30
11274 이현주 여기까지 왔구나! 이현주 2020-12-06 37
11273 이현주 나는 가만있는데 이현주 2020-12-06 41
11272 이현주 지금이라도 이현주 2020-12-06 29
11271 이현주 잘했다! 이현주 2020-12-06 31
11270 이현주 불멸의 다이아몬드 이현주 2020-12-06 33
11269 이현주 흐르는 개울 이현주 2020-11-28 58
11268 이현주 새소리 이현주 2020-11-28 37
11267 이현주 몇 번이나? 이현주 2020-11-28 32
11266 이현주 때로는 우주라 부르지만 이현주 2020-11-28 33
11265 이현주 험난한 길 이현주 2020-11-28 39
11264 이현주 산 속의 오케스트라 이현주 2020-11-28 30
11263 이현주 죽은 나무들 위에 이현주 2020-11-22 52
11262 이현주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이현주 2020-11-22 40
11261 이현주 누가 말리겠느냐? 이현주 2020-11-22 32
11260 이현주 내가 너를 보는 것이 이현주 2020-11-22 27
11259 이현주 성남 가는 버스 이현주 2020-11-22 31
11258 이현주 이냥 이렇게 이현주 2020-11-22 32
11257 이현주 누군가? 이현주 2020-11-15 41
11256 이현주 아서라, 마라 이현주 2020-11-15 60
11255 이현주 퉁소 이현주 2020-11-15 29
11254 이현주 고요한 현기증 이현주 2020-11-15 26
11253 이현주 영원한 오늘 이현주 2020-11-15 39
11252 이현주 오랜 이야기 이현주 2020-11-15 19
11251 임의진 [시골편지]피카 약속 file [1] 임의진 2020-11-09 52
11250 이현주 눈 깜박할 순간 이현주 2020-11-08 31
11249 이현주 소슬한 바람결에 이현주 2020-11-08 23
11248 이현주 젊은이들아 이현주 2020-11-08 22
11247 이현주 아서라 이현주 2020-11-08 18
11246 이현주 늙은 소나무 이현주 2020-11-08 26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