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사랑만이 약입니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5 추천 수 0 2022.10.11 21:05:43
.........
사랑만이 약입니다
지금쯤 장선생님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소식이 끊기지가 언제인지조차 가물가물하니 제가 참 무심했네요. 언젠가 저를 두고서 허리가 휘도록 웃는 모습을 드물게 본다고 했지만, 장선생님이야말로 누구를 향해서든 어떤 사물을 향해서든 웃을 줄 아는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 웃음 변함없다면 여전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며 살고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장선생님이 지금까지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겐 장선생님을 잊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시골에서 목회를 하며 장선생님한테 도움을 청했던 일이 있었지요. 한 아이의 마음이 꺼져버렸을 때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야 할지 알 길이 없어 도움을 청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딱한 환경에서 살던 아이였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환경을 생각하면 그냥 눈물겹고 숨이 턱 막히는 안쓰러운 여건이었습니다. 그나마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마치 거칠게 문이 닫히듯 그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말았고, 한 순간 세상과 단절이 된 채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히고 말았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면서도 그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란 것을 그 아이는 몰랐습니다.
낯선 행동을 보이는 그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반응은 무심했고 무정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산소를 잘못 써서 그러니 이장을 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굿을 해야 한다 했고, 심지어 어떤 교우는 찬송을 부르며 그 아이를 향해 십자가 성호를 긋기도 했지요. 마음이 꺼질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둔 처방만을 내놓았습니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나이에 꽁꽁 자기 속에 갇혀버린 한 아이를 보며 아예 외면하지도 흠뻑 뛰어들지도 못하며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언뜻 마음의 질병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던 장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친절하게도 장선생님은 많은 자료와 함께 긴 답장을 보내주었지요. 답장 중에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Love is the only medicine for our broken heart.”
우리의 상한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약은 사랑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말은 나도 모르게 마음을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사랑이 약이지, 힘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되뇌곤 했답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행복한 아이라고도 했지요. 그런 병은 자기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데, 그래도 그 아이 곁에는 제가 있지 않냐는 얘기였습니다.
당시 그 말은 장선생님의 말로만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장선생님을 통해 그분이 말씀하고 있다 여겨졌으니까요.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모른 척 외면하고 싶을 만큼 벅차기도 했고, 끝이 어딘지를 모르겠는 막막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음성처럼 다가온 그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마저 마음을 접으면 정말 그의 곁엔 아무도 없게 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어쩌면 저보다도 장선생님에게 더 친숙한 이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요 며칠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쓴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렸답니다. 저자 레이첼이 20여 년 동안 암 등의 중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상담을 해주며,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유하는 심리적인 접근방식을 개발하고 그 필요성을 의사들에게 교육하는데 투신하며 있는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의 임상교수이니 장선생님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지네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책을 읽던 어느 순간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선생님 생각이 떠올랐으니 말이지요.
책을 두르고 있는 띠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이가 밤을 새워서 읽은 책이라는 광고성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 출판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거북한 부담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책을 읽으며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레이첼은 두 개의 극히 상반된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자라납니다. 레이첼은 종교 자체를 ‘인민의 아편’ 정도로 여기는 사회주의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잘 하기를 바랐습니다. 시험에서 98점을 받았을 때 아버지는 나머지 2점은 어디에 잃어버렸느냐고 항상 물었고, 레이첼은 어린 시절 내내 잃어버린 2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레이첼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이는 따로 있었습니다. 레이첼이 일곱 살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레이첼은 금요일 오후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이었던 외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외손녀를 ‘네쉬메레’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네쉬메레는 ‘사랑스러운 작은 영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히브리 신비 철학의 전통을 이어오는 카발라 학자였던 외할아버지를 통해 레이첼은 축복의 의미를 배우게 됩니다. 식탁 앞에서, 손을 씻을 때, 일몰의 시간,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을 때, 일의 시작과 끝에서 드리는 축복의 말이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일상의 삶 속에서 지극히 사소한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축복의 말을 하곤 했습니다. 어린 레이첼이 외할아버지의 집을 방문할 때에도 기도를 마친 외할아버지한테 축복부터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거룩한 분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믿으며,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분의 불씨를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축복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외할아버지의 말을 네쉬메레는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네쉬메레야, 그분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할 몫이란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축복이 필요하단다.”
축복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만남의 순간이라는 것을, 우리가 서로의 삶을 축복해줄 때 더욱더 친밀해지고 그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찾게 된다는 것을, 누군가가 우리를 축복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善)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과 불신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축복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축복은 봉사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우리의 미래는 전문적인 기술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얼마나 충실한가, 그리고 그 삶을 얼마나 축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레이첼은 외할아버지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삶의 성찰을 의사로서 자신의 일에 연관을 짓게 된 것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지만, 전문가로 살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고 인간적인 의사가 되는 것이 전문가로서 뒤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레이첼은 외할아버지가 전해준 축복의 빛 아래에서 깨닫게 됩니다.
질병과 절망으로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며, 절망 속에 감추어져 있는 몰랐던 생의 의미와 길을 함께 찾아가는 레이첼의 삶은 외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축복의 삶이었습니다. 자신을 결코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값진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삶을 신비로 바라보게 해주었던 외할아버지의 선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레이첼이 불과 일곱 살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레이첼은 어렸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짧은 것이었지만 외할아버지가 남겨준 축복의 의미가 평생토록 레이첼의 삶을 통해 풍성한 생명과 사랑으로 나눠지고 있는 것을 보며 축복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함께 축복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절망보다도 강한 것이 축복이었고, 아무리 오래가는 고통보다도 더 오래 남는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정통 유대교 랍비인 외할아버지가 레이첼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에 제 마음에 소중하게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영성생활에 중심을 이루는 것 중의 하나인 '민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누구라도 아무 때나 기도를 드릴 수 있지만 공적인 예배로서 기도를 드릴 때는 반드시 유대인 남자가 10명 이상 있어야 하는데, 10명의 남자들 모임을 민얀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는 민얀을 '내재하는 하느님'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반만년 역사 동안 박해와 유배를 거듭하던 유대인들에겐 성지마저도 옮겨 다닐 수가 있는 곳이어야 했으니까요.
하느님의 임재를 어디서나 경험하려는 간절함과, 하느님의 임재를 함부로(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모든 사람이 성스러운 존재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긴 것이 민얀의 의미가 아닐까 저는 짐작을 해봅니다.
이 율법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가끔 사람들은 갑자기 일을 하다가도 회당에 불리어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거나, 아기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 올리거나, 삶이 거룩하고 온전히 하느님께 달려 있음을 알려주는 많은 전례를 행할 때 10명을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때는 거리를 지나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유대인을 불러올 때도 있는데, 아무도 그런 초대를 거절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얀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렸던 레이첼은 할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물었습니다.
-꼭 남자여야 해요, 할아버지?
-여자들 10명이 모여 있을 때는 하느님이 안 계신 거예요?
-할아버지, 옛날부터 그랬으면 다 맞는 거예요?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율법에는 단지 10명의 남자라고만 씌여있다고, 원칙적인 대답을 들려줍니다. 레이첼이 외할아버지에게 "여자 10명이 모여도 하느님이 계신다고 생각할래요." 했을 때도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것이 율법에 쓰여 있는 것은 아니란다." 하고 대답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레이첼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외할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주셨던 외할아버지를 잠깐 만날 수 있는 시간, 레이첼은 외할아버지가 쓴 책 중에서 하나를 읽어드리려다가 그냥 조용히 곁에 있어 드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외할아버지의 손을 가만 잡아드렸습니다. 그 때 외할아버지는 잠깐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레이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는 너 혼자로도 10명을 다 채우는 민얀이다, 네쉬메레야."
책을 읽어오며 책의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외할아버지가 어린 레이첼에게 들려주는 "너는 너 혼자로도 10명을 다 채우는 민얀이다."라는 말을 대할 때 저도 모르게 눈이 젖고 말았습니다.
율법에 그토록 엄격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어린 손녀에게 들려주는 그 말 속에는 손녀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물론 율법에 충실하셨던 외할아버지가 이해했던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레이첼은 외할아버지가 마지막 선물처럼 남겨준 민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싶었습니다.
장선생님, 출애굽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노예냐, 자유냐 사이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항상 노예생활이냐, 알 수 없는 미지의 삶이냐 사이의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위험과 낯섦,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미지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어쩌면 외할아버지가 레이첼에게 들려준 대로 서로의 삶을 축복하는데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장선생님이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만이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라는 말을 선생님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메아리처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을 꿈꾸며 어디를 향하고 있더라도 축복을 통해 거룩함을 회복하는 민얀의 삶이 되기를 빕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할아버지의 기도>를 읽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9600 김남준 믿음의 방패 김남준 2018-03-12 115
9599 김남준 돕는 배필 file 김남준 2018-04-16 115
9598 필로칼리아 모순 마크 2015-08-01 116
9597 김남준 헌신의 삶 김남준 2015-08-26 116
9596 필로칼리아 계명 마크 2015-09-02 116
9595 필로칼리아 정념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 마크 2015-11-17 116
9594 김남준 어미 같은 교회의 사랑 김남준 2016-01-18 116
9593 이현주 빛은 이현주 2016-04-28 116
9592 이현주 포옹 이현주 2016-06-10 116
9591 김남준 마귀의 존재 이유 김남준 2018-02-01 116
9590 김남준 부부, 가정의 기초 김남준 2018-04-21 116
9589 김남준 성령 충만 사랑 충만 김남준 2020-05-27 116
9588 이현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이현주 2020-06-30 116
9587 이현주 후회와 감사 이현주 2021-04-23 116
9586 김남준 인생에는 괴로움이 있다. 김남준 2021-09-14 116
9585 김남준 결혼은 미친짓이다? 김남준 2015-04-30 117
9584 김남준 자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 김남준 2015-10-02 117
9583 김남준 어느 법학 교수 김남준 2015-10-02 117
9582 필로칼리아 어찌 그리합니까? 마크 2015-10-05 117
9581 필로칼리아 공평 마크 2015-10-08 117
9580 한희철 동행1 한희철 2015-10-12 117
9579 이현주 그대와 나 사이에 이현주 2016-06-10 117
9578 한희철 3067.그릇 한희철 2018-01-27 117
9577 임의진 [시골편지]개 돼지 염소 file [1] 임의진 2018-07-19 117
9576 김남준 고난의 흔적 김남준 2020-03-20 117
9575 필로칼리아 계명의 실천 마크 2015-05-21 118
9574 김남준 사역을 통한 부부의 연합 김남준 2015-08-14 118
9573 필로칼리아 기도하라 마크 2015-09-13 118
9572 한희철 동행2 한희철 2015-10-12 118
9571 필로칼리아 불행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마크 2015-12-02 118
9570 필로칼리아 상대방이 순종하지 않으면 마크 2015-12-12 118
9569 김남준 악의 비 실제성 김남준 2016-02-01 118
9568 이현주 참사랑은 두려움을 모른다 이현주 2016-05-30 118
9567 한희철 시인의 서점 [1] 한희철 2017-01-31 118
9566 한희철 3077.황무지 한희철 2018-02-09 118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