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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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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캐럴을 부르는 밤
얼음이 꽝꽝 얼고 콧등이 시린 밤, 사제관에 도둑이 들었대. 금인 줄 알고 구리 촛대를 들고 문을 나설 참인데, 늙은 신부가 잠에서 깨 하는 말, “감기 기운이 있는데 나가실 때 문을 꼭 닫고 가주세요. 결혼반지도 없는 사람입니다만 가져갈 게 보이던가요. 촛대는 당신의 어둠을 밝히는 데 사용하세요.” 두고두고 그 말이 생각나서 도둑은 고해소에 찾아와 신부를 다시 만났대. “신부님! 촛대를 가져왔습니다. 초를 켜고 앉으면 그림자도 부끄러운지 냉큼 숨더라고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는 거리엔 택시 대신 순록 썰매가 기다릴 것 같아. 한 선곡 음반에 ‘북노르웨이의 크리스마스’라는 즐겨 듣는 캐럴을 담기도 했다. 울면 안 돼, 짜장 안 돼, 안 돼 안 돼 뭐 그런 쿵짝짝 신나는 캐럴은 아니야. 시끄러우면 새근새근 자던 아기가 깨지. 도둑도 시끄럽게 돌아다니니까 신부님이 졸다 깬 것. 가만가만 조용한 캐럴. 듣고 있자니 밖에 함박눈도 살금살금 내리는군.
지난주 이매진 도서관에서 평화운동가이자 가수인 홍순관형이 공연을 가졌다. 제목은 ‘미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엔 고요하게 지내자고 미리미리. 이태원 참사에 하도 입막음질을 해대니 아직 애도를 시작도 못한 상태. 위로를 나누는 세밑이었으면 좋겠다. “캐럴도 한두 곡 불러야 해?” “형~ 마음대로 허세요잉” 순관형 푸닥거리 덕분인지 함박눈이 푸지고도 오지네.
어린 시절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캐럴을 처음 배웠다. 그러나 ‘연애 박사’ 형들은 통기타를 들고서 캐럴 대신 송창식의 ‘밤눈’, 이종용의 ‘겨울아이’,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누나들 앞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로 캬아악~ 교회 오빠나 누나들은 캐럴보다 가요를 훨씬 애정. 비명을 지르면서들 좋아했다. 목사님의 양떼 한 마리 두 마리 지루한 성탄 설교가 끝나면 빨랑 같이들 놀 생각뿐이었다.
임의진 목사·시인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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