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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같은 새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9 추천 수 0 2023.02.14 19: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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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화 같은 새

우연히 알게 된 일이다. 철원에 두루미 전문가가 산다. 두루미를 만나기 위해서였는지, 그는 두루미가 찾는 철원에서 태어나 팔순을 내다보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두루미를 사진에 담아온 지가 40년이 넘었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두루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날아갔다. 비행기 값이 30만원이면 필름 값이 30만원 드는 시절이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사들인 장비도 만만치가 않다. 아파트 몇 채 값을 족히 날렸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가벼운 웃음은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떠올리게 했다.
두루미가 자기 짝과 평생을 산다는 것도, 밤에는 모두 모여 잠을 자지만 낮에는 식구끼리 먹이활동을 한다는 것도, 흰색 몸통을 가진 새가 어미고 잿빛을 띄는 것이 새끼라는 것도, 낮에 함께 있는 잿빛 두루미 두 마리는 신혼부부라는 것도 그를 통해 알았다.
두루미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루미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은 드물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눈앞에서 바라보는 두루미는 단아했고 고고했고 기품이 넘쳤다.
두루미 전문가가 찍은 사진은 이런 순간이 다 있나 싶은 사진들이었다. 두루미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보고 두루미 찍기를 포기한 경우도 여럿이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나니 도무지 그런 사진을 찍을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두루미가 모여 잠을 자는 곳 앞으로 멧돼지 몇 마리가 지나가는 사진은 쉽게 조우하기 힘든 순간이었겠다 싶었다. 추운 겨울 새벽 두루미가 내뱉는 뜨거운 숨이 막 퍼지기 시작하는 아침 첫 햇살 속으로 번지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두루미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어떻게 포착을 했을까?
일정이 겹쳐 동행을 하지 못한 아내에게 생각이 나는 대로 두루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진에서 만난 두루미가 잠자는 모습도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날이 찬 지 두루미 두 마리가 나란히 서서 자기 머리를 자기 날갯죽지에 파묻고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겨울밤을 나는 새가 두루미였다.
그런데 두 마리 모두 외발로 서 있었다. 그 대목에서 장난기가 동해 아내에게 물었다.
“두루미가 잠잘 때 왜 한 발로 서서 자는 줄 알아?”
잠시 생각하던 아내가 대답을 한다.
“잠 잘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별하려고?”
역시 아내다운 대답이었다. 두루미 전문가를 만나고 왔으니 정답을 알고 있겠다 싶었는지, 내게 답을 물었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대답을 했다.
“두루미가 한 발을 접고 잠을 자는 것은 말이야, 두 발을 모두 접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내가 싱겁게 웃는다.
두루미에 빠져 날릴 아파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두루미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래야 책이나 사진을 찾아보고, 혹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길을 나설 정도겠지만,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눈 내린 들판, 검붉은 눈과 긴 다리 긴 목 긴 부리로 서 있는 모습이 뭔가 외로워도 보이고 외로움을 벗어버린 듯도 보이는, 수묵화 같은 새를 조용히 좋아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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