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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구, 바다의 시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9 추천 수 0 2023.02.15 19: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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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배수구, 바다의 시작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이 땅에 서 있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갑자기 전해진 부음을 듣고 나면, 뉴스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웃나라 지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더욱 그렇습니다. 평범하게 반복되는 것 같아도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녁을 먹은 뒤 동네를 산책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어가고 있는 일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고, 다른 일이 없어야 가능합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는 짧아 저녁을 먹고 나면 금방 사방이 어둠입니다. 서경대 방향의 언덕길을 오르는 일은 언제나 숨이 벅찹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북한산이 마주 보이고, 산자락 안에 들어 밤을 맞는 이웃들의 집들이 보입니다.

며칠 전 서경대 아래쪽 후미진 골목길을 지날 때였습니다. 버스가 다니는 대로변에서 두어 줄을 더 벗어난 인적이 뜸한 좁은 길이었는데, 골목길을 걷다 보니 뭔가 바닥에 글씨가 적힌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다의 시작’이라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이 참으로 놀랍게 다가왔던 것은, 글씨가 적힌 곳이 작은 배수로 앞이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도로의 물이 빠지도록 만든 한 배수구를 누군가가 ‘바다의 시작’이라고 적은 것이었습니다. 따로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흔한 배수구를 바다의 시작으로 바라보다니, 그 발상의 전환이 너무나 놀라워 뭔가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분은 유쾌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배수구 덮개 옆에 그려놓은 문양이 들어옵니다. 무엇인지 확실하게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파도의 일렁임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곳이 정말 바다의 시작이라니까요, 웃으며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시작’이라는 글씨 옆에 작은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동그라미 안에는 뭔가 단순한 도안이 담겨 있었는데,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는 표지 같았습니다. 이곳은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니 여기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일은 바다를 더럽히는 일과 같다는, 그러니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는 나직하면서도 엄한 꾸중으로 다가왔습니다.

기발한 발상 앞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동그라미 안의 도안은 다른 의미로도 다가왔습니다. 혹시 수영을 금지한다는 뜻 아닐까 싶었습니다.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니 함부로 수영을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그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바로 거기가 바다임을 알리는 유쾌한 역설 아닐까 싶었습니다.

모두 사라져 더는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던 예언자가 우리 곁에 있구나 싶었고, 이런 사람을 찾아 노벨평화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골목길은 어둑하고 후미졌지만 문득 세상이 아름답고 환하게 여겨졌습니다. 

 

한희철 목사 <교차로>202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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